▲ 민소연 기자
전대미문의 게이트가 온 나라를 집어삼키고 있다. 온갖 국정과 국민들의 삶은 마비되고, 눈과 귀는 모두 뉴스와 신문, 스마트폰으로 향한다. 이 밝은 세상에 이렇게까지 감춰왔던 것에 놀라고, 막상 꺼내고 나니 이 거대한 파급력에 또 놀란다.

이렇게 되면 이제 개봉하려던 영화들은 울상을 짓고, TV 드라마도 맥이 풀린다. 통계적으로 이러한 국가적인 추문 및 폭로, 의혹들이 난무할 땐 여행도 잘 가지 않는다. 얼마나 갈진 몰라도, 당장 올겨울 재미를 위한 무엇이든 시시할 것이다.

진실을 밝히는 것엔 찬성이지만, 아쉬운 것은 세면대 물 빠지듯 흘러버리고 마는 일들이다. 교단은 2세기를 시작하는 호된 신고식을 치르고 있고, 전 재가출가 교도의 기도로 이른바 '우주의 기운'까지도 불러온다는 마음가짐이다. 매일같이 국방부와 광화문, 성주와 김천에서는 한반도 평화와 성지수호를 위한 명상과 기도가 한껏 차가워진 아스팔트를 덥히고 있다.

간절함과는 달리 뉴스가 뉴스로 덮이고 마는 경우는 이미 있었다. 지난 9월 600여 명의 재가출가가 모여 빗속에서 연 광화문 평화명상기도는 힘과 위엄이 컸으나, 이내 경북 경주를 강타한 지진으로 크게 알려지지 못했다. 이후 매일같은 기도 역시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사건들로 아쉬움을 삼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 배워야 한다. 우리의 기도나 지진, 대통령 게이트를 통해 우리는 언론의 속성을 뼈저리게 체감할 수 있다. 이른바 4대 종단 중 하나로 국장 장례의식을 이끈 원불교는 몰라도, 국민들은 불교와 기독교, 천도교를 합쳤다는 '영세교(영생교와 다름)'는 속속 알고 있다. 대부분의 네티즌들이 사전처럼 믿는 <위키백과>의 '불교의 종파' 목록에 '신흥불교 원불교'라 나와 있는 것은 고쳐지지 않는데, 영세교 교주 최태민의 '벽에 그려놓은 동그라미'는 샅샅이 그 의미를 묻고 또 밝혀낸다.

우리를 호도하고 세뇌하기도 하지만, 언론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궁금한 것은 탐정처럼 끝까지 추적하며, 필요한 것은 누가 대가를 주지도 않지만 집요하게 구해낸다. 이렇게 구한 팩트는 공유하며,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알리고 설득하는 1인 미디어를 자처한다. 이미 언론보다 더 정확하고 친절한 개인을 너무 많이 보고 있지 않은가.

이야깃거리가 되면 공유나 홍보는 저절로 되는 시대, 결국 문제는 어떻게 도화선에 불을 붙이느냐이다. 우리도 서둘러야 한다. 이미 모두가, 세상을 움직일 독창적인 화두를 던질 누군가를 찾고 있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