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청진 교도 / 이문교당
"하섬에는 원래 우물이 있었으나 수량이 부족하였다. 이에 대산 종사께서 1961(원기46)년 7월초, 새 우물터를 잡아 주었다. 삼복더위에 10여 일간 땅을 파도 물빛이 안보여 포기했는데, 이병은, 이형원, 이순일은 물이 나올 것이라는 스승님의 말을 믿고 6일을 더 팠다. 그러나 역시 물이 나오지 않자 멈추려 하였다. 대산종사는 "내 정수리를 찍어 봐라. 피가 안 나오겠느냐"며 경책하였고, 이에 힘입어 하루를 더 파니 마침내 암반 아래서 물이 솟아올랐다. 대산종사는 이 우물을 '은생수(恩生水)'라 이름 지었으며, 은생수는 신성(信誠)을 상징하는 유적으로 손꼽힌다.

서울문인회 〈소태산문학〉이 우리의 은생수이기를 기원하며 새삼 안내글을 인용해 봤다.

예년에 비해 올 여름은 유난히 높은 기온과 열대야에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그 더위 속에서 원불교문인회 소속 서울문인회는 동인지 〈소태산문학〉을 펴냈다. 이웃종교에 비교해 길지 않은 역사와 다방면에 문화 자원도 풍부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므로 동인 문학지 하나 내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11년을 이어온 오늘날이다.

서울문인회는 봉산 이경식 초대 회장님으로부터 시작해 11년을 이어오며, 구인 선진님들의 혈심을 다해 이룬 법인절과 맞물려 해마다 8월에 책을 펴낸다.

후진으로서 원불교문학의 샘물이 되고자 한 초대 회장님의 창간호 편집 후기를 보며 그 심정을 들여다보자.

"눈 덮인 들판 길 걸어 갈 때엔 모름지기 함부로 가지를 말자. 오늘 남긴 발자취가 마침내 뒤에 오는 이의 이정표 되리니."

후기는 서산대사 시로 처음을 어렵고 조심스레 열고 있다. 어떻게든 소태산 대종사와 원불교 문인들에게 작은 보은을 하신다는 보람의식만으로 펴낸 첫 번째 책으로, 당시 너무도 간고한 가운데 내딛은 첫 발이었다.

그 후로 11년 세월이 흘렀다. 3대 회장인 여걸 임선영 회장님의 혈심 노력을 지켜보았고, 4대 김재훈 회장님의 눈물겨운 과정, 지금의 조연봉 회장님에 이르기까지 늘 가까이에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 서성거리며 떠나지 못하고 지내온 시간이었다.

외롭고 고독하며 의지할 곳 없는 고아나 다름없는 원불교 문인, 때때로 그때 처음 걸음보다야 지금이 나은 게 아닌가 하고 힘든 마음을 달래 본다. 당시에는 크게 우리 신앙 안에서도 공신력을 갖추지 못한 관계로 소태산 청소년 문학상 원고부터 상금 그리고 책에 실어야 할 원고와 편집 인쇄비 등 그 무엇도 순순히 이루어지는 게 없었다.

그 뿐 아니라, 그 선봉에 서서 애태우던 몇 대의 문인회 회장들은 이미 지쳐 쓰러져 돌아볼 힘마저 없다. 가끔은 우리 원불교 문인들이 뭉치고 만들어 가꾸어야할 〈원불교문학〉과 〈소태산문학〉에 대해, 그 정체성마저도 의심하게 되기까지 했다. 그만큼 너무나 힘들고 척박했던 토대 위에 어렵게 피워내는 한송이, 한권이었던 것이다.

불교나 천주교와 같은 이웃종교에 비교할 마음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주인이 되어 후진 양성과 일원 문화의 한 기틀을 마련해 문학의 샘물로 일원문화가 꽃이 피려면 우리 교단 안에서 관심을 가지고 재정을 살펴 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있어야 한다는 존재감이 숨 쉴 수 있도록 관심과 사랑을 기다리다 목이 마르고 허기진 상황, 그것이 바로이 지금의 원불교 문인회의 현주소다. 건재한 부모 아래 자녀가 기를 펴고 자라듯이 원불교문인회의 가장 으뜸 자식이라는 지역 서울문인회, 그 속에 필자는 장기 부회장으로 오직 선진들의 간고한 시절만을 생각하며 버티고 있다.

우리 것이 소중하다는 것은 더 강조할 필요가 없는 말이다. 일원의 횃불아래 모여든 문화는 그 무엇이라도 알뜰히 살피고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게 보살피고 공을 들여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교단2세기, 이제는 소태산 대종사의 제자로 살아 있는 예술인의 긍지를 살리고 살려야 할 때다.

맑고 밝은 문학의 은생수를 길어 올리기 위해 늦은 때란 없다. 원불교 문인들은 글을 통해 천지 보은을 하고 부모 보은을 하며 동포와 법률에 보은한다. 글을 통해 대종사와 스승들의 귀한 정신과 말씀을 세상에 전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교단이 더욱 살피고 가꾸어 주길 오직 서원하고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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