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산 굽이굽이를 물들인 단풍잎이 이렇게도 곱고 고울까. 그 색깔이 과하지도 않으면서 아쉬운 듯 수놓아 있는 모습이 귀하게 여겨진다. 고운 잎들 따라 마음도 덩달아 밝아진다.

삼밭재 마당바위 주변에도 붉은 옷을 입은 단풍나무 한 그루가 있다. 멋지게 굽어있는 모습이 그 아래에 서있으면 황홀하다. 연일 어지러운 시국에 허탈한 우리들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듯 사은님께서 주신 선물이 감사하다.

어느 로스쿨생이 말했다. 법보다는 탈법이 앞서고 사적권력이 현실을 좌지우지하는 불공정한 현실을 보니 '법을 공부해서 뭐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절망적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이 허탈감에 빠졌다. 전국적으로 100여 개가 넘는 대학이 시국선언을 하고 20만 명의 시민들이 광화문거리로 나와 촛불을 올리고 있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사회에 시민의 목소리로 자유롭게 자기의사를 표출하며 국가를 움직이고 있다. 그 움직임이 슬프지만 기쁘다. 잠들어 있는 우리의 마음을 깨우고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시민들은 새로운 삶의 방향을 희망하고 있다. 새로운 지도자를 원하고 있다. 새로운 삶은 새로운 의식으로 전환될 때 달라진다.

오랜 세월 묵인하고 눈감아 주었던 의식의 구조들이 바꿔져야 한다. 돈과 욕심 그리고 명예가 주가 되어 물질을 추구하는 삶에서 정신과 도덕 그리고 평화를 추구하는 삶으로 마음혁명이 돼야 한다.

바르지 못한 것을 바르게 고르고 잘못하는 것이 있으면 정신을 차리려 노력하고 잘한 것이 있으면 세상에 드러내야 한다.

묵은 세상을 새 세상으로 건설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음을 자각할 때 도덕과 평화를 갈구하는 마음들이 모여 도덕부활을 이루게 한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대산종사께서는 도덕이 없는 과학은 이 세상을 잿더미로 만드는 기술이 될 수 있고 도덕이 없는 물질은 죄고를 장만하는 자본이 될 수 있으며 도덕 없는 안일은 악(惡)의 온상(溫床)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물질문명이 발달되면 될수록 도덕의 손길은 더욱 간절히 요청되는 것이라고 하셨다. 도덕이 없어진 세상을 깊이 통감하며 우리가 정신 차리고 시작해야 할 일은 마음혁명이며 도덕부활인 것이다.

그렇다면 도덕이 부활된 세상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까?

대종사께서 전망품에 "지금은 대개 남의 것을 못 빼앗아서 한이요, 남에게 지지 못하여 걱정이요, 남에게 해를 못 입혀서 근심이지마는 오는 세상에는 남에게 주지 못하여 한이요, 남에게 지지 못하여 걱정이요, 남을 위해 주지 못하여 근심이 되리라. 또 지금은 대개 개인의 이익을 못 채워서 한이요, 뛰어난 권리와 입신양명을 못하여 걱정이지마는, 오는 세상에는 공중사(公衆事)를 못하여서 한이라고 하셨다."

이런 참 문명세계가 언제 될지 모르게 아득하게 느껴지나 어두운 밤이 지나가고 어느새 동방에 밝은 태양이 솟아 중천에 이르면 그 광명이 시방세계에 고루 비친다고 했으니 오늘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국제마음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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