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재 목사 / 김천 덕천교회

종교는 전쟁을 위해 있는 게 아니다. 평화를 위할 때 존재 의의가 있다. 성경에 무기를 위해 쓰일 수 있는 재료를 평화를 위한 생산 도구로 바꿀 것을 권하는 구절이 나온다. 미가서 4장 3절이다. 종교는 권력이 아니다. 평화의 도구가 돼야 한다.

사드(THAAD)란 괴물이 우리를 괴롭힌 지도 넉 달이 가까워오고 있다. 사드 배치가 암운을 드리운 것은 단지 성주군민만이 아니다. 김천시민을 거쳐 이젠 한민족 전체의 비극이 되고 있다. 국가는 있되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결정된 정책 뒤에 비선실세가 있었다는 의혹과 드러난 사실이 우리를 더욱 분노하게 만든다.

사드 반대 투쟁에 함께하면서 세계를 새롭게 보는 눈이 열렸다. 나만이 아닐 것이다. 세상은 한없이 이기주의를 부추기건만 더불어 사는 것이 참 삶이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제공한 것이 바로 이 곳, 사드 반대 투쟁 현장이었다. 참 삶에 좋은 환경은 평화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는 하루하루다.

지난 10월31일 사드 투쟁 현장을 취재하러 온 러시아 언론인 몇 사람과 관련 지역을 돌아보았다. 성주 촛불집회 현장, 원불교 정산종사 구도처와 생가 그리고 성주 롯데CC를 돌면서 발견한 것 중의 하나가 평화를 사랑하며 실천하는 원불교의 흔적들이다.

알다시피 정산종사 기념 교당과 생가 터는 사드 배치 예정지 롯데CC에 근접해 있다. 원불교도들은 사무여한(死無餘恨)의 각오로 성지를 지켜내겠다며 기도를 이어가고 있다. 짧은 안목에 사로잡혀 있다면 성지가 있는 이곳 외에 다른 지역으로 옮겨 달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인데, 원불교는 그런 이기적 투쟁 목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평화는 지엽적이 아니라 전체적일 때 가치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의 평화가 다른 곳에서는 불화가 되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원(O)으로 상징되는 원불교는 그래서 평화사상의 보수자(保守者)다. 

많이 지적되는 종교인들의 한계로 신행불일치(信行不一致)를 든다. 믿음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목회를 하는 내게도 이런 면이 없지 않아 회개하고 기도할 때가 있다. 그런 의의에서도, 나는 이번 사드 투쟁을 통해서 주위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싸움은 승리할 때 의미가 있다. 나는 우리의 사드 투쟁이 승리할 것 같다는 예감으로 기쁘게 작은 힘을 보태고 있다. 원불교 교무들을 비롯해 교도들의 헌신적인 활동도 승리의 청신호로 보인다. 그들의 평화를 위한 대승적 투쟁 방향도 승리를 확신케 하고 있다.

종교는 만인을 위한 평화의 장치다. 원불교는 1세기의 연륜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 여타 종교에 비하면 역사가 긴 편은 못되지만, 그럼에도 120만 교도를 가진 활동적인 종교로 성장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오늘날과 같은 왕성한 사회적 활동이 한몫 했을 것이다.

이는 이번 사드 투쟁을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묵언수행 하듯 묵묵히 투쟁하는 모습들, 이름 드러내는 자리가 아닌 모두가 가기를 꺼리는 곳에 맨먼저 가 있는 그들이다. 헌신하며 섬기는 일은 남한테 미룰 사안이 아니라는 마음으로 솔선하는 원불교 교도들에게서 신선함을 느꼈다. 그리고 이것은 나만이 느낀 게 아닐 것이다.

성주와 김천의 사드 투쟁 현장에서 원불교가 한 역할이 적지 않다. 그들은 불화의 씨가 잉태되지 않도록 먼저 투쟁 현장에 평화의 씨를 뿌렸다. 조직이 극단을 치달리려 할 때 중화의 씨를 뿌려 안정을 시켰다. 이러한 시간들을 통해, 원불교를 보는 이웃의 눈들이 따스해졌다는 것은 계산할 수 없는 유익이 아닐까 싶다.

선진국은 경제적 부의 축적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영역의 수준이 조화롭게 향상될 때 가능한 일이며, 그 가운데는 문화도 빼놓을 수 없다. 원불교 정산종사 탄생지와 구도처는 본래의 모습대로 보존돼야 할 귀한 문화유산이다.

전쟁 무기를 배치하기 위해 평화의 성지를 훼손하는 것은 야만인이 하는 짓이다. 아니면 전쟁 무기로 세계를 지배하겠다는 제국주의의 교만일 것이다. 평화는 무기가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따뜻함과 호혜감에 기초한 넉넉한 사랑이 가져다주는 것이다.

사드 배치 철회는 원불교 성지 수호를 위해서도 필요하고 나아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 꼭 필요하다. 반드시 철회될 것을 믿는다. 성경 로마서 12장 15절에서 예수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말씀했다. 우리 모두의 평화를 위한 원불교의 길에 끝까지 함께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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