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기현 교도 / 대구교당
언제부턴가 해마다 새해 계획을 세울때면 경산종법사의 신년법문을 주로 인용하고 있다. 시대정신을 꿰뚫는 것 같은 적절하고 절실한 주제들이 다루어지는 것들을 보면 종법사의 경륜이 느껴지는 듯 하다. 원기101년 새해에는 '초심을 실천하고 나의 삶을 축복하며 은혜를 서로 나누자'라는 법문을 내려주셨다. 특히 '나의 삶을 축복하자'는 법문은 오랫동안 열등감에 시달리며 위축된 삶을 살아온 나에게 내려주는 법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삶을 축복하자'라는 것은 나 자신을 존중하자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하고 쉬운 말이지만 종법사께서 이 법문을 굳이 신년법문으로 내려주신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나 자신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나 자신의 소중함을 모르기 때문에 주변사람들도 함께 무시하기 십상이다.

내 자신이 유일하고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존중해야만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무시한다는 것은 자신이 굳건히 발딛고 서있어야 할 토대를 자꾸만 스스로 무너트리고 있는 것과 같다. 언제 무너지고 넘어질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에서, 스스로 서있기도 위태롭고 불안한데 어떻게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나설 수 있는 용기와 여유가 생긴단 말인가? 자신을 유지하고 보호하느라 가진 에너지를 모두 써버리고 나면 주변사람들과 교류하고 어울려야할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다. 치열한 생존경쟁이 일어나는 생활속에서 나 자신을 업신여기고 무시한다는 것은 나를 위협하는 가장 무서운 적을 등에 업고 살아가는 것과 같다.

마음공부는 이러한 자기를 존중하는 기반위에서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 이러한 기반이 탄탄하지 않으면 쉽게 흔들리고, 쉽게 어리석어지며, 쉽게 글러진다. 기반이 탄탄한 사람은 어지간한 경계는 경계로 느끼지도 않는다. 기반이 허약한 사람은 필요이상으로 흔들리며, 있지도 않는 실체를 붙잡고 불안해하고 자책한다.

자기를 존중하지 않으면 혼돈의 연속일 수 밖에 없다. 자신을 존중하지않고 업신여기다보면 스스로(내부적으로) 경계를 만들어내기 바쁘다. 외부에서 다가오는 경계와 나 스스로 만들어내는 경계(열등감, 자책 등)가 뒤죽박죽 얽혀서 도대체 어떻게 취사해야하는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하는지,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이런 마음이 일어나는 것에 대한 원망심과 혼돈을 겪고있는 자신에 대한 혐오감까지 겹치면서 혼돈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다. 자신을 업신여기거나 무시하지 않으면 최소한 나스스로 만들어내는 경계는 막을 수 있다.

이렇듯 나 자신을 존중하는 것과 나 자신을 업신여기고 무시했을 때의 차이점은 크다. 자기를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의 차이는 삶의 전환점이 될 정도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종법사께서 '나의 삶을 무시하지 말고 축복하자'고 하신 것이다.

요즘 나는 나 자신을 존중하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모색중이다. 자기비하의 수렁에 빠질때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릴려고 노력한다. '나는 지고지순하다. 마치 금덩어리가 시궁창에 버려져 있든지, 황금보자기에 싸여있든지, 그 가치는 변함이 없는 것처럼 나는 온갖 경계에 흔들리고 열등감에 시달리는 나약한 존재처럼 보일지라도 나는 원래 훌륭한 사람이며 부처님이 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이다'라고. 또한 일상생활에서 나를 존중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해 보았다.

첫째, 상대방의 눈을 피하지 않는다. 시선을 회피한다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없고 위축되어 자꾸만 코너로 몰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바꿨다. 적극적으로, 도전적으로, 상대방의 시선을 응시하면서 대등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둘째, 내 기호를 주장한다. 식당에 가서 아무거나 시키지 않는다. 내가 먹고싶은 메뉴를 확실히 밝힌다. 물냉면을 먹을지 비빔냉면을 먹을지 확실히 말해줌으로써 내 자신이 먹고싶은 것을 먹게하는 것이다.

셋째, 내 생각과 판단을 믿는다. 그래서 발언을 끝까지 마무리한다. 내 생각을 믿지못하기 때문에 말을 잘 하다가도 의심이 생기기 시작하면 말을 서둘러 마무리하곤 했다. 자신감이 있어야 말에 힘이 있고 유모어도 발휘하면서 대화를 이끌어 나갈 수 있다.

넷째, 침묵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왠지 침묵이 어색했다. 잠시 있을수 있는 침묵의 상황이 오면 '나 때문에 분위기가 어색해지는건가?' 하면서 안절부절 못해했던 기억이 많다. 그럴때마다 '침묵은 금이다'라는 격언의 의미를 곰곰이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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