莽蒼淸晨適 아득하고 서늘한 새벽길
依微遠초奔 어렴풋이 먼 산봉우리는 달리네
孤烟厓內淨 외로운 연기가 언덕 안에서 깨끗하고
宿霧草頭溫 쌓인 안개는 풀끝에서 따뜻하다
早粟堪充賦 일찍 익은 곡식은 세금으로 내겠고
秋色鮮在村 가을빛은 마을에 선명하도다
信知玆土美 참으로 이 흙의 아름다움을 아노니
便欲問田園 문득 전원에게 묻고 싶네

'일찍 천안역을 떠나며(早發天安驛)'- 이승훈(李承薰 1756-1801)

참판 이동욱의 아들인 이승훈의 본관은 평창, 호는 만천(蔓川), 1783년 베이징에서 영세를 받고 한국천주교회를 창설하였다. '만천유고'가 전한다.

위 시는 시인이 따뜻한 눈길로 풍요로운 농촌을 보면서 자연의 은혜를 예찬한 시이다. 하지만 정조가 갑자기 죽으면서 터진 1794년 신유사옥 때 이승훈은 매부인 정약종 등과 함께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을 당하였다.

천주교인은 1만 여 명이, 동학군 30여 만 명이 학살당했다는데, 시대와 신분과 신앙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승훈의 막막하고 불안한, 그러나 신념을 지니는 복잡한 심리가 미묘하게 암시된 시는 '계양 가는 길(桂陽途中)'이다.

靄靄春山裡 行來逕盡迷 橋의仍石 崖斷又廻溪 소柳當村僻 幽禽怪我啼 襟前眞想在 遙望白雲低(아지랑이 아른거리는 봄 산 속에 / 가고 오는 좁은 길이 어슴푸레하고 / 다리는 기울고 돌이 막았으며 / 벼랑은 끊기고 또 산골짜기를 도네 / 성긴 버드나무에 촌락은 후미지고 / 그윽한 새는 나를 의심해 우네 / 옷깃 앞에 참된 생각이 있으니 / 멀리 흰 구름 아래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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