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현옥 교사

교도가 되기 전에 내가 원불교에 대해 아는 건 두어 가지 인상이 전부였다. 부처님 대신 둥그런 원 앞에 절하고, 하얀 저고리 검정 치마에 쪽머리를 한, 정말 눈에 띄는 차림의 성직자가 있다는 것 정도다.

그러던 내가 원불교를 만나게 된 것은 정전마음대조공부를 통해서였다. 공부를 하면서 이렇게 좋은 가르침을 준 대종사님을 평생의 이정표로 삼아 살아간다면 얼마나 든든하고 만족스러운 삶이 될까 싶어 입교를 결심하게 됐다.

나는 마음공부를 하기 전에 딱 두 사람의 교도를 만났는데, 그 두 사람이 내 마음에 원불교에 대한 고운 밑그림을 물들여주었다.

한 분은 조그만 분식집을 했다. 주메뉴는 수제비였다. 황태와 콩나물을 듬뿍 넣어 만든 시원하기 이를 데 없는 국물에 당근과 시금치를 갈아넣어 반죽을 한 주황빛, 쑥빛, 흰빛의 삼색 수제비는 야들야들하면서도 탱글탱글했다. 그런데 가격이 너무 착해서 이렇게 장사해서 이문이 남느냐고 물어보면 "귀한 몸에 들어가는 건데 재료비 아껴서 이문 남기려 하면 안 돼" 하시며 "나이 들어 일할 데가 있으니 감사하고, 맛있게 드시는 손님이 있으니 또 감사한 일이지 않냐?"고 하신다.

마음에 없으면 못 나올 말씀이다. 또 학생들이 여럿 몰려와서 딱 1인분을 시켜도, 돈이 없는 학생 사정을 알고 수제비와 깍두기를 수북이 내놓으신다. 나는 가까운 가족도 그리 못 섬기는데 뜨내기 손님까지 저리 온전하게 섬기는구나 싶으니 마음속에 따뜻한 물이 퍼지는 것 같았다. 그 교도님은 분식집을 하는 동안 남편분이 사고를 당하거나 수해를 입는 등 안 좋은 일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불평은 고사하고 담담하고 평온한 표정으로 진리가 하시는 일이니 그 뜻을 생각할 뿐이라고 말씀하시지 않는가. 그 때 내가 느끼기에는 몸은 좁은 가게 안에 있어도 마음이 자유자재하게 노닐고 계시는 듯했다.

또 한 분은 같은 학교에 근무했던 살구나무란 별명의 선생님이다. 정말 아이들에게도 교사들에게도 고향집 울타리 옆에 심어진 살구나무처럼 늘 한결같은 분이었다. 담임을 맡으면 아침 조회시간엔 아이들 하나하나와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한다. "민주야, 엊그제 너희 동생 무릎 다친 거, 이젠 다 나았니?", "오늘 주연이랑 놀러가기로 했제? 뭐하고 놀 건데?"처럼 학생들에게 일어난 크고 작은 일을 세밀히 기억하고 있다가 그것을 물어봤다.

그 뿐인가. 교실 안에 야생화 화분을 수십개 들여와 철마다 피어나는 꽃과 잎을 학생들이 즐기게 하고, 우리 옛 명절 단오를 맞이해 학생들에게 부채를 선물하기도 했다. 친절하고 자상하기도 했지만, 잘못된 행동을 하는 아이 앞에선 눈물이 쑥 빠지게 제대로 야단칠 줄 아는 교사이기도 했다. 학생들을 향한 열정과 사랑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내겐 불가사의였다. 나보다 나이도 적고, 교육경력은 훨씬 더 적었지만, 교사의 모든 덕목에서 배우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드는 살구나무 선생님도 교도였다.

이 두 분은 나에게 원불교를 거론하며 입교를 권유한 적은 없다. 그러나 나는 두 분을 좋아했고 덩달아 원불교라는 종교가 좋아보였다. 원불교도라서 저렇게 지혜롭고 사랑이 많고 정의롭고 품격 있는 사람이 된것 같았고, 원불교는 사람을 그렇게 변화시킬 힘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평생 종교없이 살던 내가 때가 왔을 때, 다른 종교가 아닌 원불교를 선택해서 입교를 결심하기가 훨씬 쉬웠던 것 같다.

이제 입교한 지 4년. 아직도 신앙심 있는 교도라고 하기엔 정말 부끄럽지만 내가 되고 싶은 교도의 모습도 그런 것이다. 나를 보고 '원불교가 참 괜찮은 종교구나' 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생기고, 나의 언행을 통해 원불교를 긍정적으로 보는 계기가 늘어났으면 한다. 남들에게 드러낼 만한 사람은 못될지라도 은은하고 아름다운 원불교 밑그림을 그리는데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마침 나는 일 년에 몇백 명의 학생을 지속적으로 만나는 교사다. 수업을 하다가 기회가 되면 나는 원불교 교도임을 밝히고 자랑스럽다는 말도 덧붙인다. 수업시간에 원학습코칭 프로그램을 축소, 적용해보기도 하고, 감사일기도 쓰도록 지도한다. 가정이나 교우관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과 상담을 할 때도 정기일기를 기재하도록 한 다음, 그것을 토대로 상담을 시작한다.

물론 이 모든 프로그램의 연원은 원불교라는 것을 부연 설명해 준다. 내가 50평생에 딱 두 분의 교도를 만났으니 아이들로서는 내가 생전 처음 보는 원불교 교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들에게 나는 원불교에 대한 인상을 좌우하는 중요한 밑그림이 될 수 있다. 지금의 우리 아이들은 원불교에 대해선 아는 것도 없고 심리적 거리도 가깝지 않겠지만, 나중에 원불교와 인연이 닿게 됐을 때, 언제 형성됐을지도 모를 좋은 인상 때문에 입교하는 일이 생겼으면 하면서 오늘의 몸가짐과 말 한 마디를 돌아본다.

 / 부산내성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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