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도광 교무 / 공군사관학교 성무교당
약속이 있어 서울에 갔었다. 용산역에서 약속 장소까지 걸어서 10분 거리라고 해서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가려고 하니 서울 지리가 익숙하지 않은 내게는 길 찾기가 쉽지 않았다. 신세대답게 스마트폰 지도앱으로 검색해서 약속장소를 찾았는데 걷다보니 15분을 넘게 헤맸다. 안 되겠다 싶어 길가에서 교통정리를 하고 있는 경찰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 결과 다시 처음부터 용산역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대답을 들었다.

약속 장소는 용산역 뒤편인데 앞쪽에서만 헤맨 것이다. 10분을 걸어 원점인 용산역으로 다시 왔다. 경찰이 알려준 데로 찾아가니 너무 쉬운 길이었다. 비록 약속시간을 조금 지나서 도착하기는 했지만 별 탈 없이 일정을 마칠 수가 있었다. 길을 잘 못 찾아 헤매기도 하고 짜증도 났지만 경찰의 도움으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정확한 길로 약속장소를 찾아간다는 것이 너무도 행복했다.

공부인으로 일생동안 살아가면서 소태산 대종사의 교법을 그대로 실천하고, 은혜세상을 찾겠다는 큰 서원과 신념을 확실하게 세우고 살아가는 것이 정말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인이라고 해서 늘 행복하고 즐거울 수는 없다. 일상을 보낼 때 별의별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하루에도 수만 가지의 경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공부인들은 일상을 헤매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경계 속에서 헤매면서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서원과 그 원점에서 목적지까지 가야겠다는 신념을 얼마나 확실하게 세우고 있느냐이다.

서원과 신념을 확실하게 세운 공부인들은 어떠한 경계를 당하여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목적지에 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 것이다.

서원과 신념이 약한 공부인들은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두려워 목적지에 가야 한다는 확신마저 없기에 큰 행복을 맛보기가 힘들 것이다. 그래서 정산종사는 대종사의 일원회상을 만났을 때에 기필코 진리 오득하기를 발원하며, 대각한 스승님의 법연을 여의지 않기를 발원하고, 부지런히 공부해 성불제중의 서원으로 영겁을 일관하라며 가장 큰 원에 대해 말씀했다.

"이 세상 여러가지 원 가운데 사홍서원은 가장 큰 원이니, 먼저 중생이 가 없으나 맹세코 제도하려는 원을 세우고, 그 원을 실현하기 위하여 번뇌를 끊임없이 끊으며, 법문을 성심껏 배우며, 불도를 영생토록 닦고 또 닦으면 결국 성불 제중의 대원을 성취하리라. 불보살과 중생의 차이가 마치 큰 나무와 돋아나는 싹 같나니, 장성하면 작은 싹도 큰 나무가 될 것이요, 꾸준히 수행하면 중생도 불보살이 되나니라.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하려고 하면 못될 일이 없고 안 하려고 하면 되는 것이 없나니, 우리는 부처와 내가 둘이 아니라는 큰 각오 아래 이 사홍서원으로 꾸준히 닦아 나아가면 못 이룰 것이 없나니라." (〈정산종사법어〉 제7권도편 6장)

이렇듯 큰 원을 세워 공부인으로 살아가면서 경계에 헤매는 것을 두려워 말고 꾸준히 수행한다면 헤매는 것 자체가 공부이며 그 목적지는 누가 뭐라고 해도 무릉도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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