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서 저술로 읽는 교사〉

▲ 프린트본 〈예전〉 표지와 속지.
원기34년(1949) 익산성지에 소태산대종사성탑이 조성됐다. 일제말기에 독립운동을 염려한 당국의 조치로 익산 외곽의 공동묘지의 임시 성탑에 안치했던 성해(聖骸)를 새롭게 조성한 성탑에 봉안한 것이다. 원기36년의 1대를 마감하는 봉찬사업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이듬해(1950년) 6.25 한국동란이 일어나 성업이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정산종사는 공산치하에서도 익산성지를 수호하면서 교서편수에 착수했으니, 그 과정을 보여주는 것에 프린트본 〈예전〉이 있다.

이는 '시창(始創) 37년판'이라 했으니, 원기37년(1952)으로 아직 '원기(圓紀)'연호를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원불교 중앙총부 발행으로 원광사의 인쇄이다. 4×6배판 220쪽으로 '출판금 희사 - 신동훈(辛東薰)·전선광(全善光)'이라 보시공덕주 이름을 적었다. 원기11년(1926) '신정예법(新定禮法)'을 발표하고, 원기20년(1935) '불법연구회예전(佛法硏究會禮典)'을 발행하여 활용하였으나, 시대변화와 교체의 확립에 따라 〈예전〉의 필요성이 증대된 것이었다. 따라서 이를 프린트본으로 제작해 활용하면서 완성형태를 갖추기 위한 작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전〉은 전권을 3편으로 나누어, 머리에 서(序)를 싣고, 제 1편 조신(操身)의 예, 제2편 가정(家庭)의 예, 제3편 교회(敎會)의 예로 구성했다. 1편은 총설, 평거의 예, 몸의 자태, 의제(衣制), 경례, 기거와 진퇴, 언어와 응대, 수수(授受)와 진철(進撤), 방문과 접우(接遇), 초대와 응초, 식사, 환영과 송별, 축하와 조위, 소개와 증답(贈答), 통신과 교통, 공중과 공용, 국민과 국제, 염치와 신의, 통론의 19장, 2편은 총설, 출생, 성년, 혼인, 회갑, 상장(喪葬), 제기(祭記), 변의(辨疑)의 8장, 3편은 총설, 법신불상 봉안, 법회, 득도, 은법결의(恩法結義), 승급, 대사(戴謝), 봉고, 특별기도, 축하, 교회장, 영모(永慕), 영모원, 대향(大享), 교의(敎儀), 변의의 16장이다. 이들 중간의 필요한 곳에 예문이 포함되어 있다.

이 프린트본 〈예전〉을 보완해 원기53년(1968) 현행 〈예전〉이 편수된 것이다. 현행 〈예전〉에서 보면, 서와 1편 조신의 예가 총서편과 통례편, 2편 가정의 예가 가례편, 3편 교회의 예가 교례편이 되고, 예문편을 별편으로 꾸민 것이다. 예는 원불교의 존재태(存在態)이므로, 실용과 격조를 갖추기 위해 지혜를 결집해 나간 선인들의 슬기가 이에 알알이 드러난다.

원광대 명예교수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