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진의 문화코드 46

▲ 허경진 교도 / 강북교당
흙은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살아있는 교육
자체로 아름다운 농부의 삶
인간의 본성 일깨워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다 흥미로운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제목은 〈논고랑 기어가기〉로 잃어버린 자투리문화를 찾아내 들려주는 이야기들로 구성된 시리즈 책이다. 이 시리즈는 사라져 가는 우리민족의 정이 담긴 문화들을 동화로 되살려 현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간접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따스한 책들이다.

이 책의 주요내용은 과거 영양이 부족해 몸에 부스럼이 많이 나던 시절 논에서 옷을 홀딱 벗고 논고랑을 기어다니면 부스럼이 없어진다는 친구의 얘기를 듣고 밤에 몰래 나가 처음에는 쭈뼛거리지만 결국 온 몸에 진흙을 바르고 논고랑을 기어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흙이 가진 생명력과 인간이 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위안감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은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듯이 어쩌면 흙은 우리에게 전부를 준다.

사실 도시에 사는 요즘 얘들, 아니 어른들도 흙을 만질 일이 많지 않다. 흙에서 나는 것들이 우리를 살리지만 그 모든 것들은 비닐에 포장되어 우리에게 제공된다. 갈수록 나빠지는 외부 환경 때문에 바깥놀이가 줄어들면서 아이들은 실내에서 플라스틱 등으로 만들어진 가짜 모래를 가지고 노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현실에 논고랑을 맨몸으로 기던 옛 문화는 어떻게 다가올까? 낯설지만 왠지 기분 좋은 느낌이다. 얼마 전 시골에 갈 일이 있었는데 고구마를 캐는 밭에서 양말까지 벗고 맨발로 흙 위를 걸은 적이 있다. 엄마품에 안긴 아기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 보드랍고 나의 모든 것을 수용해 줄 것 같은 느낌에 황홀할 정도의 기분 좋음을 느낀 적이 있다.

또 이런 경험이 있다. 몇해 전 한 중학교에서 순회교사를 할 때 나와 짝을 이룬 선생님이 과학교과를 담당하고 있어 나의 담당과목과 무관한 과학생태반을 동아리로 맡게 되었다. 첫 동아리 활동 시간 무얼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다 학교 내 풀을 찾아 도감에서 찾아보고 그 풀을 큰 종이에 붙인 뒤 풀과 관련된 시를 적어 복도에 전시하도록 했다. 아이들에게 풀을 하나씩 뽑아 오라고 시키자 처음에는 어쩔 줄 몰라 하다 학교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풀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몇몇 아이들이 흙을 깊게 파서 뿌리도 다치지 않게 가져오자 다른 아이들도 납작한 돌 등을 이용해 흙을 파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흙을 모아 두꺼비 집을 만들기도 하고 본격적으로 흙 놀이를 시작했다.

사실 내가 내어준 과제와 조금은 무관한 일들을 하고 있었지만 흙을 만지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니 그대로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교실에서는 보기 힘든 자유롭고 즐거운 모습이었다. 흙을 만지는 느낌이 이렇게 좋을 줄 몰랐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다 큰 중학생 아이들도 이러한데 어린 아이들은 흙놀이를 더 좋아할 수밖에 없다. 완벽하게 만들어진 장난감 로봇보다 흙을 뭉쳐 만든 그 무엇이 아이의 정서와 성장에 더 좋을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흙을 만지고 놀 때 지지하는 따스한 눈빛을 보내줘야 한다.

나의 어머니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흙에 무엇을 심어 키운다. 흙을 만지고 그 흙속에 씨앗을 심고 거기서 싹이 틔워 우리에게 먹일 것을 키워내는 일을 하며 무슨 생각을 할까? 그 자체로 삶을 긍정하도록 하고 생명의 소중함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육을 하고 계신다.

발전과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흙을 만질 일도 흙을 볼 일도 줄어들고 있다. 흙과 함께 한다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가까워지고 인간다운 삶을 산다는 것의 전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농부는 인간다운 삶을 실천하는 정직한 삶을 사는 분들이다. 농부의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고 우리에게 인간의 본성을 일깨워주는 살아있는 교과서이다.

온 생을 흙에 바치며 정직하고 의롭게 살아가던 한 농민이 억울하게 돌아가셨다. 그 분의 완전한 해탈천도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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