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덕권 교도 / 여의도교당
삼국유사에 〈여이설화〉가 실려 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로 알려진 신라 경문왕의 얘기다. 여러분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하고 싶을 때 어떻게 하는가? 갈대밭에 숨어서 일렁이는 바람에 날려보낼 것인가? 세상에 영원히 묻힐 비밀은 없다.

신라 제48대 경문왕은 귀가 유달리 컸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숨기고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철저하게 막고 있었다. 왕의 의관을 만드는 복두장은 이 비밀을 알고 있었지만 평생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하고 살았다. 입이 근질거렸지만 목숨이 아까워 평생 참고 산 것이다. 죽음이 가까워지게 돼서야 대나무밭에 들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 후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밭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나 순식간에 그 소문이 퍼져 나갔다. 왕은 화가 나서 대숲을 모조리 베어내고 산수유를 심게 했다. 그렇다고 비밀이 숨겨지고 진실이 묻혀 질까? 그래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는 계속 들렸다. 이 이야기는 세상에 비밀이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잠시 사람들을 속일 수는 있어도 영원히 세상을 속일 수는 없다. 어떤 비밀도 언젠가는 드러나게 마련이다. 요즘 '최순실 게이트'를 보고 이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 없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최순실 게이트를 둘러싼 권력 주변의 내놓는 답변이 막무가내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우병우와 안종범, 차은택 등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들은 한결 같이 모르쇠다. 미르-K스포츠 재단에 관한 질문일수록 그렇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라는 의심을 받는 최순실의 인사개입, 전경련을 통한 미르-K스포츠 재단의 모금, 대통령 한복과 액세서리 제공 의혹에 대해 청와대 대변인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묵살해버렸다.

우리는 긍정적 내용이면 다른 사람의 핀잔을 받으면서까지 기꺼이 공개하고 싶어 한다. 그만큼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인정받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끄럽거나 비난받을 내용은 가능하면 다른 사람에게 감추려고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비밀을 지키는 데는 그만큼 정신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그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비밀은 그 순간은 지켜낼 수 있을지 몰라도 오랫동안 지켜질 수는 없다. 시간이 문제이지 언젠가는 밝혀지게 돼 있다. 특히 요즘처럼 다양한 접촉방법과 전자통신수단이 발달한 개방된 사회에서는 비밀을 영원히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게이트에 연루된 저들이 스스로 비밀을 밝히는 것이 어떨까. 인간은 완전무결한 존재가 아니다. 그렇다면 부족한 점을 스스로 밝히고, 지금까지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모르쇠로 일관한 자물쇠를 열고 이제는 마음 편히 살아가면 안될까. 자신의 실수나 부족함을 솔직히 인정하고 겸손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존경스럽다.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다.

어느 고을에 신기한 당나귀가 있었다. 그 당나귀는 거짓말하는 사람을 가려내는 신통한 능력을 가졌다. 고을 사또는 거짓말을 할 성싶은 혐의자들을 당나귀 우리에 들어가게 했다. "나는 여기서 당나귀 울음소리를 듣겠다. 네가 모른다, 아니다 등으로 거짓말을 하면, 당나귀는 내 귀에 들릴 만큼 크게 울어댈 것이니라"

한사코 아니다 라고 우기는 최순실 게이트의 인간들을 모조리 이 당나귀 우리에 집어넣으면 어떨까? 사람들이 다 알고 지탄을 하는데 본인은 '하지 않았다, 그 태블릿 컴퓨터는 내 것이 아니다, 전혀 얼굴도 모른다' 등으로 일관하는 저자들을 당나귀 우리에 들여보내는 것이다. 그럼 당나귀가 요란하게 울어댈 것이다.

거짓말은 들통 나기 마련다. 요즘에는 심리생리 반응으로 거짓말에 대한 판정을 내린다. 사람이 중요한 생각을 하거나 말을 할 때 교감신경이 활성화된다. 특히 거짓말을 할 때는 불안, 초조, 긴장상태가 지속되는데, 신체적으로는 변화가 온다. 동공이 커지고, 땀이 많이 나고,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박동이 불규칙적으로 더 빨라지고 거칠어진다.

지금 거짓말이 공중에 떠돌고 있다. "그 사람 이름도 언론을 통해서 처음 들어보는데, 그를 어떻게 알겠는가!" "나는 태블릿 PC를 다룰 줄 모른다. 내 것이 아니다" "차명계좌니 다른 사람 이름으로 된 땅이니, 그런 거 모른다" "내가 굿을 한다고. 무슨 굿거리장단 같은 말을 하는가?"

강한 부정은 절대 긍정이다. 진실은 하늘도 알고 땅도 안다. 당나귀도 거짓말을 다 알아내는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하니 그들은 하늘이 두렵지도 않은 모양이다. 그 정도로 누렸으면 부끄러움을 알아야지. 그 부끄러움에도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우치요, 둘은 나타난 과오만 부끄러워하는 외치이며, 셋은 양심을 대조하여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내치다.

노자 〈도덕경〉53장에 '부끄러움을 아는 삶'에 대해 나와 있다.

'나에게 작은 지혜라도 있다면/ 오직 대도의 길을 걷고/ 그 길에서 벗어나는 것만을 두려워하리라./ 대도의 길은 아주 평탄하고 곧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샛길을 좋아한다./ 이것이 정부는 타락하고/ 밭은 황폐하고/ 곳간은 텅 빈 이유이다./ 화려하게 입고/ 날카로운 검을 차며/ 물리도록 먹고 마시고/ 쓰고도 남을 재산을 모으는 것은/ 도둑과 같아지는 것이다./ 남을 희생시키는 이런 호사는/ 도둑이 물건을 훔치고 자랑하는 것과 같다./ 이는 도가 아니다.'

이 세상에 비밀은 없다. 세상이 온통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쳐댄다. 민심이 천심이고, 거친 파도는 거대한 배도 뒤엎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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