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일상수행의 요법을 보다가 한 감상이 들었다.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자.' 난 얼마나 감사생활을 하고 있는가 의심이 들었다.

평소 생활할 때, 그리고 주변 모든 환경들에 대한 감사는커녕, 당연히 존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감사생활을 하지 않는 나를 발견했다. 이에 감사 생활하는 것으로 유무념을 잡아서 공부해 보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상황과 주변 인연들에 대한 감사에 그쳤다. 감사에 대한 생각이 나와 관계된 사람에 대한 것에 한정되어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변 인연들과 만날 일이, 혹은 부딪힐 일이 없으면 하나도 감사할 일이 없었다. 어느 날 문득, 아파트 주변에 피어 있는 여러 이름 모를 꽃을 보게 됐다. 매일매일 변화하고 있고, 나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주고 있음을 발견했다.

아직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이지만, 주변에 감사할 일을 스스로 찾으려는 노력하는, 아니 때로는 있는 그대로 감사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른 것 같아 그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3개월, 6개월, 1년이 되면 나에게 어떠한 변화가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많은 기대감이 든다.

가끔은 감사생활에 대한 유무념을 놓치기도 함을 인정한다. 내가 견딜 수 없는 고통이나 역경 속에 들어가게 되면 한없는 원망 생활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전과 다른 점은 이전에는 그런 상황 자체를 모르고 그냥 원망하는 마음만 가득한 채 지나갔다면, 지금은 하루를 되돌아보며 내 스스로가 '아, 오늘 이런 일이 있었구나. 내가 원망 속에 빠졌었구나'를 알아차리고 있다.

아직 교리에 대한 공부도 미숙하다. 그러나 대종사께서 이야기해 주신 사은에 대한 감사, 그리고 유정·무정의 모든 것이 부처 아님이 없다는 처처불상의 교리와 더불어 그에 대한 불공을 아니드릴 수 없다는 모든 것에 대한 불공하는 마음을 놓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사은에 대한 보은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감상이 들었다. 교리도를 펼쳐보며 특히 신앙에 대한 면을 살펴보며 '그럼, 왜 신앙문이 인과보응의 신앙문이지?' 하는 질문이 떠오른다. 법회 때 가면 교무님께 한 번 여쭤봐야겠다.

서신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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