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누갤러리는 검정지붕에 하얀 벽면, 빨간색 포인트 창틀의 건물 외관으로 영국 본차이나 포슬린을 상설전시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만추의 계절, 제각각 가을 색으로 물들었던 나뭇잎들이 바람 결에 훌훌 날아간다. 때가 되면 수분을 차단하는 떨켜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나무. 헤어짐의 자리가 저리 자연스러울 수 있다면. 충남 금산으로 향하는길, 차창 밖 나무들이 길벗이 된다.

리누, 다시 새롭게 시작한다

금산군 복수면 수목로. 그 곳에 소박하지만 단아하고 견고한 느낌의 건축물, 리누 갤러리가 있다. 검정지붕에 하얀 벽면, 빨간색 포인트 창틀의 건물 외관. 문득 몇 개의 선과 색으로 조형을 구성하는 몬드리안의조형구조가 겹쳐졌다. 건물 내부에 들어서면, 내벽도 없고 기둥도 없고 천정도 없다. 지붕과 외벽만이 건물의 안과 밖을 구분해 줄 뿐이다.

리누(ReNou)는 영어의 Re, 불어의 Nou가 합쳐져 '다시 새롭게 시작한다는 뜻'. 리누 갤러리 하종수 대표의 설명이다. 그의 표현대로 '21미터, 6미터의 전시공간'인 리누 갤러리는 영국 본차이나 포슬린을 상설전시하는 갤러리다.

하 대표가 영국에서 10여 년 거주하면서 직접 수집했던 영국 도자기들이다. 11월은 크리스마스 플래트 위주로 전시가 돼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전시교체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하 대표. 그가 소장한 영국도자기들은 그대로가 한 나라의 역사이자 기록이다. 그가 그 역사를 들려준다.

영국본차이나 역사 속으로

Madame de Pompadour (뽕빠두 공작부인), 1994년 제품이다. 12,500개의 한정 생산품 중 3,222번째 제품으로, 세계적인 포슬린 조각가 John Bromley에 의해 1994년에 탄생됐다.

Royal Worcester(로열 우스터). 물리학자이자 의학자였던 Dr. John Wall에 의해 1751년 설립된 후, 조지 3세로 부터 왕실 인증을 받아 현재까지 고급 도자기의 대명사로 알려져 왔다. 전시제품은 하단 푸른색의fretted square(뇌문무늬) stamp mark를 통해 1760년대 제품임을 알 수 있다.

▲ 고급도자기의 대명사인 로열우스터의 1760년대 작품.

제조사: Susie Cooper(수지쿠퍼), 제품명: Hyde Park(C912), 제작연대: 1960년대. 영국 근현대 도자기계의 샤넬로도 불리웠던 수지쿠퍼. 관련 직종에서 일을 하지 않는 이유로 영국왕립미술학교 입학이 좌절되자 A E Gray사에 입사해 정식 디자이너가 된다.

이후 그녀의 이름으로 된 회사를 설립 운영하면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그녀는 엘리자베스2세 여왕으로 부터 대영제국훈장(OBE, Oder of the British Empire)을 받게 된다.

제조사: Mayer & Newbold, 제품명: Opaque China, 제작년대: 1820년대. 짧은 비지니스 활동을 했던 Mayer & Newbold는 영국 도자기사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전시제품은 1820년대 생산품으로 Hydra(9개의 목을 가진 그리스 신화 속 물뱀) 손잡이와 팔각형의 몸통을 갖고 있다.

제조사: Wedgwood, 제품명: Kutani Crane (쿠타니의 두루미), 제작년대: 1980년대. 1971년~1998년 까지 27년 간 생산됐던 Kutani Crane(쿠타니의 두루미) 패턴은 일본의 이시카와현 카가시의 쿠타니에서 생산되었던 '쿠타니야키'에서 영감을 받았다. 고고한 두루미(학) 주변에 화려한 컬러의 꽃과 식물들로 장식된 이 패턴은 Wedgwood의 여러 패턴 중 가장 두드러진 패턴이다. 여전히 생산이 중단되었어도 수집가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패턴 중 하나다.

제조사: Crown Devon, 제작년대: 1930년대. 초창기 Crown Devon의 성공 요인은 식민지로 부터 유입되는 저렴한 도자제 뿐만 아니라, 당대 영국의 경쟁업체들과도 비교해도 손색없을, 경쟁력 있는 가격과 좋은품질 그리고 빼어난 디자인이었다.

특히 Kathleen Parsons를 필두로 한 Art-Deco(아르데코) 시대 그들의 디자인 방향은 지금도 콜렉션에서 매우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제품명: Willow of China, 제작년도: 1890년대. 1780년 경, 중국의 풍경을 푸른색의 농담만으로 표현했던 당대의 인기 제품으로, 주요 특징은 큰 버드나무, 소나무, 새 두마리, 누각, 물 위의 배, 다리, 다리 위의 사람들, 울타리 등 전형적인 중국풍의 산수화를 통해 이국적인 정취가 느껴지는 제품이다. 단순한 색상의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전 세계적인 스테디셀러가 됐다.

제조사: Davenport (데븐포트), 제작년대: 1810년대. 영국의 화려한 리젠시 시대를 이끌었던 George 4세를 위하여 도자기를 제조하기도 했던 Davenport의 제품들은 200년이 지난 지금에도 화려하고 가치 있는 소장품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 대표가 소장한 제품은 1810년대 영국 왕실에 납품됐던 제품이다.

▲ 리누 갤러리 하종수 대표.

복합문화공간이 되다

하 대표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대학원에서는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그는 리누 갤러리가 복합문화공간이기를 바란다. "제가 나누고 싶은 것은 저의 소장품들만이 아니라, 리누 갤러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공간입니다. 문화와 예술을 좋아하고,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모두에게 열려있는 공간입니다."

리누 갤러리에서는 두 달에 한 번씩 연주회가 열린다. 문화공연을 하고 싶어 하는 누구에게라도 그야말로 '열린 공간.' 공간의 특성상 연주자만의 무대가 따로 없다. 공간 안쪽에 준비된 피아노를 중심으로, 연주석에도, 객석에도 문턱이 없다. 한 공간 안에서 모두가 차를 마시며 공연을 즐긴다.

그는 지역에서 진행하는 '한밭 사랑애(愛)창작 가곡제'도 5년째 기획을 맡아오고 있다. 단순한 이벤트성 음악제가 아니다. 가곡을 좋아하는 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3개월간 작곡 교육을 진행하고, 그들의 삶과 내면의 이야기를 가곡에 반영한 창작 가곡제. 지역 음악계의 덕망있는 작곡가와 교수들이 뜻을 함께 하고 있고, 그렇게 장애의 편견을 뛰어넘어, '희망'과 '감동'을 함께 만들어가는 자리이다.

사람이 공간을 만든다. 그가 있는 리누 갤러리를 다시 가보고 싶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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