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칼럼

▲ 박시현 교도 /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원남교당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고 행정부의 수장으로서 광범한 권한을 행사하는 최고의 통치권자'가 국정을 그르친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온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 그를 가까이에서 보아 온 사람들, 그와 함께 정치를 해온 사람들은 여태껏 도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 하기야 지금 와서 그들을 탓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 나라 안에 버젓이 살고 있었으니 책임을 면할 수가 없다. 우리 다 같이 참회 반성하고 하루빨리 시국이 안정을 되찾고 새로운 질서가 세워지기를 바라며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데에 협력할 것을 다짐해야겠다.

얼마 전까지 우리는 정부가 북한의 연속적인 핵실험 실시에 대한 대책으로 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인 사드를 배치하기로 했다고 발표함에 따라 사드의 기능에 대한 이해가 다름으로써 국민 분열이 조장되는 분위기에 휩싸이기까지 했다. 북한의 도발적 행태에 대응한다는 명목 하에 도리어 국민들로 하여금 전쟁의 위협을 느끼게 하는 처사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기도 했다.

우리 교단에서는 '성주성지 수호'를 외치며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해오고 있다.

한편 종교가 국가 정책에 반대하는 운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옳은가를 묻는 이들도 있다. 국민의 안전한 삶을 보장해야 하는 정부의 입장에서 평화 유지에 반하는 세력을 차단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올바르지 않은 판단으로 국민으로 하여금 불안감에 휩싸이게 해서도 안 되고 국민들 사이에 서로 대립되는 입장이 생기게 해서도 안 될 일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대한민국에 배치되는 사드의 기능이 대한민국을 지켜주는 것도 인류의 평화를 지켜주는 것도 아니라는 데에 있다.

종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전 인류가 평화롭게 살도록 하자는 것이다. 종교의 이념은 국가의 이념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하겠다. 내 나라 네 나라를 구별하는 체제와 너와 내가 하나라는 이념의 세계가 공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교단에서 "사드와 성지는 공존할 수 없다, 사드는 옮길 수 있지만 성지는 옮길 수 없다"고 하는 데에도 문제가 없지 않다. 우리가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이유는 사드가 우리나라를 지켜주는 것도 아니요 인류의 평화를 지켜주는 것도 아니라는 데에 있는 것이다. 만약에 사드가 인류 평화 유지에 필요한 장치라고 한다면, 그런데 배치할 곳이 꼭 성주이어야만 한다면, 우리는 반대 운동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사드가 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먼저 안 우리에게는 바른 정보를 알려야 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구축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드 배치 반대 운동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이다. 사드 배치 반대 운동은 결국 모두가 참여하는 평화 운동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최근의 어느 설문조사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원불교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 사람들이 원불교에 관심을 가지든 안 가지든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해야 한다. 원불교가 드러나고 원불교를 알고자 하는 사람이 늘어나게 하는 길은 대형 조형물을 세우는 데에 있는 것도 아니요 대형 건물을 짓는 데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 길은 바로 우리 교도들 모두가 교법 실천을 제대로 하는 데에 있다. 설사 어쩌다가 잘못된 일이 생기더라도 지도자가 바로 책임을 지고 틀어진 일을 공의에 따라 바로잡으면 된다. 교단의 난제로 남아있는 일본 치바 법인의 건도 하루속히 해결해야 할 것이다. 미루고 뭉개서는 안 될 일이다.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이라고 규정되는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는 '돈병'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가를 새삼 실감하는 한편 지도자의 건강한 정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게 되었다. 지난 12일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민중총궐기 집회에 10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모였지만 별 사고 없이 마무리 됐다. 필자도 그 집회에 참가했기 때문에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시위 규모가 컸음에도 참가자 대부분은 침착함을 유지했다. 그만큼 시민의 질서의식이 성숙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기회였다. 앞으로 우리의 교법을 이해하고 실천하려는 의지를 갖는 사람의 수가 더 많아 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 어떤 위치에서든 공중사를 단독 처리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각자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며 자리이타 실천에 힘쓰는 우리네 희망은 밝다. "희망이 끊어진 사람은 육신은 살아 있으나 마음은 죽은 사람"이라 하셨다. 일상수행을 통하여 마음공부를 하는 우리의 마음은 분명 살아있어야 한다. 새로운 질서가 기다려지는 이때를 당해, 우리의 스승 소태산께서 가르쳐주신 용심법을 실천으로 알려야 한다. 정신의 자주성을 확립하여 물질을 선용하는 법을 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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