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 교수의 현대건축이야기

 

   
 

▲ 낙원상가는 영화·스포츠·춤·음악 등 문화 예술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주상복합 공간이다.
지하에는 구수한 청국장과 시원한 잔치국수를 먹을 수 있는 재래시장이 있고, 지상에는 자동차와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사거리가 있다. 2층과 3층에는 온갖 빛깔의 악기들이 교향악단처럼 늘어선 악기상가가 있는가 하면, 4층에는 예술 영화와 뮤지컬을 볼 수 있는 전용관이 3개나 있고, 9층부터는 빛이 가득한 중정을 품고 있는 아파트가 있다. 최신 주상복합 분양 광고가 아니다. 1968년에 지어진 낙원상가 이야기다. 한 때 3층에는 볼링장도 있었고, 4층 극장 건너편에는 유명한 카바레까지 있었다고 하니, 춤과 음악, 영화와 스포츠 등 인간의 모든 문화 예술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궁극의 주상복합이라고 할 수 있다.

낙원상가가 서있는 이곳은 원래 한옥에 둘러싸인 재래시장터였다. 주변에는 술집과 요정이 많아서 악사들의 왕래가 많았고, 광복 후에는 종로거리를 따라 나이트클럽이 들어서면서 연주자를 상대하는 악기점들이 일대에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옛날부터 먹거리와 놀거리의 중심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낙원상가가 원래 이곳에 세워지게 된 것은 서울시내 교통체증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1960년대 들어서 차량 대수가 급격하게 증가하자, 시내에 남북 방향의 도로 건설이 절실했고, 당시 국내 최고 높이의 건물인 31층짜리 삼일빌딩 계획과 더불어, 종로와 을지로를 연결하는 삼일로를 율곡로까지 연장하려 했다. 하지만 예산이 턱없이 부족했던 서울시는 묘안을 짜내는데, 조합을 대표하는 민간 기업이 건물을 지어 시에 기부체납하게 하고, 대신 기업이 낙원상가와 아파트의 분양권을 갖도록 하는 것이었다. 낙원상가는 도로 위에 지어진 건물이 아니라, 도로를 만들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며, 그렇게 지어진 건물에 다양한 삶들이 모여 마을을 만들고 살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낙원상가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종로를 오가는 사람들에게는 탑골공원 뒤쪽에 물러선 영화 간판으로, 인사동길을 오가는 관광객들에게는 동쪽을 경계 짓는 담장으로, 운현궁과 천도교 중앙대교당이 있는 북쪽에서는 시끌벅적한 건너편 동네의 소음을 지우는 방음벽으로, '익선동 한옥마을'과 함께 노인들을 위한 공간들이 모여 있는 서쪽에서는 오래된 동네를 둘러싼 성벽처럼 느껴진다.

낙원상가는 스스로 존재감을 들어내는 건물이기 보다는, 동서남북 각각의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신기한 것과 푸근한 것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담장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냥 담장이 아니라, 그 안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살아있는 담장으로써 말이다.

종종 남산의 조망을 가린다는 이유로, 주변 맥락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낙원상가를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망각하고 있는 것은, 낙원상가 덕분에 도시의 건강한 다양성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서쪽으로는 관광객과 젊음이 넘치는 인사동길, 북쪽으로는 떡집골목을 지나 구한말의 역사를 담고 있는 운현궁을 지나 북촌으로, 남쪽으로는 순대국밥 골목을 지나 삼일운동의 발상지이자 최초의 근대적인 공원인 탑골공원 그리고 북적거리는 종로로 갈 수 있다.

또한 낙원상가 지하 재래시장으로 내려가 따뜻한 국수 한 그릇을 할 수도 있고, 2층으로 올라가 잊고 있던 음악의 꿈을 다시 살려 볼 수도 있고, 4층으로 올라가 감동적인 옛날 영화 한편에 취해 볼 수도 있다. 자본의 논리에 의해 다양한 선택의 기회 자체를 잃고 있는 요즈음, 이렇게 다양한 공간과 시간 사이에서 고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다.

낙원상가는 그렇게 다양한 시공간을 나누는 건강한 경계이자, 소중한 포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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