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빛내는 정전

▲ 김준영 교무 / 벤쿠버교당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물었습니다. "대종사께서 이 시대에 살아오신다면 무슨 메시지를 줄 것 같아?" "글쎄요. 어떤 메시지를 던져 주실까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쩌면 과거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과제가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비리나 이권 다툼의 기저에는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알지 못하는 무지에서 비롯된 욕심이 자리하고 있죠.

유한한 인생을 가치있게 살아가고자 하는 진지한 성찰없이, 자신의 안위와 욕심만을 챙기며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가는 모습이 참 안타깝습니다.

도대체 '노블리스 오블리제(가진 자의 도덕적 책무)'는 어디로 간 걸까요?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어리석고 불행하게 이끌고 있는 것일까요? 대종사님은 세상이 병들었다 하셨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세상이 병이 들었으니 스스로 자각해서 함께 극복해야 함을 역설하셨던 거죠.

원기9년, 교단 초기 〈불법연구회 규약〉에 '병든 사회와 그 치료법'을 제시합니다.

그 당시 세상은 '각자가 서로 자기 잘못은 알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하는 것만 많이 드러내며, 부정당한 의뢰 생활을 하며, 지도 받을 자리에서 정당한 지도를 잘 받지 아니하며, 지도할 자리에서 정당한 지도로써 교화할 줄을 모르며, 또는 착한 사람은 찬성하고 악한 사람은 불쌍히 여기며, 이로운 것은 저 사람에게 주고 해로운 것은 내가 가지며, 편안한 것은 저 사람을 주고 괴로운 것은 내가 가지는 등의 공익심이 없는' 등의 병이 깊었죠.

그래서 그 병을 치료하는 처방으로 '자기의 잘못을 스스로 조사하며, 부정당한 의뢰 생활을 하지 말며, 지도 받을 자리에서 정당한 지도를 잘 받으며, 지도할 자리에서 정당한 지도로써 교화를 잘 하며, 자리(自利)주의를 버리고 이타주의로 나아갈 것'을 제시하고 광대무량한 낙원의 비젼을 제시하셨죠.

그 후로 90여 년이 흘렀습니다. 세상은 지금도 온통 깊은 병으로 헤어날 줄을 모르고 있죠. 남들이야 어떻게 되든 스스로의 안위만 지키면 되고, 예의와 염치를 불고하고라도 상상할 수 없는 수단과 방법으로 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하죠. 어쩌면 좋을까요?

너나 할 것 없이 마음의 힘을 키워야 합니다. 인과를 믿고 존재와 현상의 실상을 제대로 아는 지혜를 밝히고, 욕심을 줄이며, 정의를 수호하고 불의를 과감하게 떨쳐내는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실천의 힘 말이죠. 그래야 이 병든 세상이 바로 설 수 있습니다.

그렇게 스스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며, 공짜를 바라거나 의뢰생활을 하지 않고, 사소한 일에도 감사하며, 사람으로서의 소중한 가치를 지켜내야 하죠.

지도 받을 자리에서나 지도할 자리에서 이러한 도를 지켜나간다면 세상의 병은 자연스럽게 치유되고 우리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요즘 이러한 욕심을 제대로 공부하지 못해 괴로움을 겪는 일들을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병든 사회와 그 치료법',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가르침이 아닐 수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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