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선 교도 / 안암교당
이제 걸음마를 제법 잘하는 돌 지난 아이 하나가 뭐가 그리 신나는지 함박꽃을 피우며 유아실 안을 잰걸음으로 걷는다. 한 아이는 자동차모형 장난감을 이리저리 굴리기에 여념이 없다. 또 한쪽에서는 아침 일찍 준비해서 나오느라 못 먹인 아침밥을 아이에게 먹이느라 야단이다. 그 먹는 것을 보고 달려드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그 아이의 아빠는 간식을 꺼내든다.

엄마 아빠들은 아이는 아이들대로 돌보면서도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교무님 설법에 간간히 귀를 귀울이기도 하고, 모니터 스크린으로 전달되는 법회 진행에 종종 눈을 돌린다. 그러면서 아기에게 "교무님 어딨지?" 라고 묻기도 한다.

스피커과 모니터를 통해서 전달되는 법회 상황이 아니라면, 여기가 교당 내 유아실인지 아이들 놀이방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22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법회에 출석하는 나 또한 법회를 보러온 것인지 아이를 돌보러 온 것인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아이를 데리고 법회에 오는 엄마 아빠들 또한 나와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 아빠들은 매주 아이들을 데리고 법회에 온다. 그것이 마치 신성한 의무인 양.

오늘 스피커를 통해 띄엄띄엄 들었던 교무님의 설법 내용은 '주인과 손님'에 대한 것이다.

정신없는 와중에 들려온 교무님 목소리를 통해 잠시나마 '나는 주인인가 손님인가'를 가늠해본다. 이내 부끄러운 마음이 밀려온다. 마치 이 부끄러운 마음을 매번 가지기 위해 법회에 출석하는 것 같다. 매주 이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 내게 주어진 신성한 의무인 양.

청년회 활동을 하다가 결혼을 하고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갖게 됐다. 또 아이라는 이름의 생명을 내 책임으로 부여받으면서, 나는 교당의 대소사에 전보다 훨씬 등한히 하게 됐다.

나는 여력이 닿지 않음을 인정하고 그래도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아직 뭐가 뭔지도 모르는 아이를 데리고 법회에 나온다. 끈을 놓지 않음은 나의 의지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나는 이 혼돈스럽기만 한 장소인 유아실이 없었다면 아이를 데리고 법회에 나올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유아실을 통해 부여잡은 끈은, 나를 통해 아직 이 법이 마음에 닿지 못한 남편과, 아직 어리디 어린 첫째아이와 뱃속에 둘째, 그리고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시어머니, 그리고 다소 긍정적으로 바라봐주는 친정식구들로 이어져있다.

내가 청년회 다닐 당시 교무님은 유아실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무님은 유아실 공사를 하고, 유아실에 모니터와 스피커 시설을 설치했는데 그런 교무님의 모습을 나는 별 감흥없이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배려와 노고 덕에 나는 법회출석이라는 행운을 얻게 됐다. 물론 교무님의 처음 의도보다는 형편없는 유아실 모습에 가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하고 한소리를 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나는 아이들이 커서 내 손이 조금은 덜 필요하게 될 때, 또 다시 교당의 각종 대소사에 더 많은 관심과 시간을 할애하고 싶다. 청년회 활동 당시 느꼈던 은혜과 보람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워킹맘으로 직장, 육아, 집안일 3가지를 그럭저럭 해내면서 소홀해지는 나의 신앙생활에 의기소침할 때가 있었다. 더 분발하지 못함을, 나의 나약함을 자책하며 내가 신앙인인가 반문하게 되는 시간들…. 이런 생각의 바닥에는 더 분발하고 싶은 마음, 신앙인으로서 생활을 곧추 세우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나는 자책을 멈추고 그 마음을 어여삐 여기기로 했다.

전에 야심한 밤에 종종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었다. 여기 DJ의 마무리 멘트가 묘하게 인상적이고 감동적이여서 프로그램이 끝날 때쯤이면 더 찾아듣던 프로그램이였는데, 마무리 멘트의 내용이 대략 이렇다.

'오늘도 소리없이 FM 음악도시를 청취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잘자요~'

오늘은 모자랄지라도 여전히 관심과 사랑의 마음을 품고 있음을 긍정해주고, 애써 표현하지 않아도 주인과 손님 그 중간 즈음에 있는 수많은 존재를 인정해주고, 당신은 당당히 여기의 주인임을 천명해주고, 그래서 내가 있을 곳이 여기이며 내키면 언제든 주인으로 소리 내어달라고 이야기 하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 마무리 멘트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유아실.

그 소리없는 안배에 오늘도 나는 깊은 감사를 느끼며, 주인의 목소리를 낼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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