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관음 교도 / 원성교당
인연은 참으로 소중하다. 나는 원불교와의 인연이 된 지 벌써 16년째로 시어머니의 연원으로 교당에 나오게 됐다. 당시 주임교무였던 장원경 교무는 내가 교당에 나오도록 순교해줬고, 전 주임교무였던 김기성 교무는 내게 봉공회장의 직분을 주어 교당에 관심을 갖게 해줬다. 지금의 주임교무인 김원공 교무는 나를 원불교의 깊은 공부길로 이끌어주고 있다. 이렇게 인연이 된 여러 스승과 법연들이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아마 앞으로도 더 많은 인연들에게 감사할 일들이 있을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원불교와의 인연이 끊어지지 않고 여기까지 왔지만, 많은 교도들이 중간에 우리 교당과 인연이 멀어지고 말았다. 어느 단체나 시간이 지나면서 멀어지는 인연은 있기 마련이지만, 교세가 미약한 교단 현실에서 이런 현상은 다른 단체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도 입장에서는 교당 교도수가 어느 정도 안정적이어야 교당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때문에 안정적인 교도들의 출석률이 보장 됐을 때 교당에 나오는 재미가 있고 이것이 다시 교화로 연결되는 힘이 생길 것이다.

어떻게 해야 원불교와 인연이 된 교도들이 꾸준히 법회에 출석하며 항상 감사와 보은생활로 원만한 신앙인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일체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생활로 인도하는 일원법자가 되도록 인도할 수 있을까?

첫 번째로 말하고 싶은 것은 교도 한 명 한 명의 법력 증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 명의 교도를 입교시키기까지의 관심이 지속돼야 한다. 누구든 자신의 변화가 수반됐을 때 타력적 신앙인에서 자·타력 병진이 되는 신앙인이 될 수 있다. 교당은 자체적으로 여러 가지 사업들을 진행하므로 자칫 교도들이 이 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할 수도 있다. 교단 초창기에는 방언공사, 엿장수 등 어려운 사업을 하면서도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교도 1인이 교당이다'라는 생각으로 각 교도들의 공부를 점검해 때를 놓치지 말고 상시공부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이끌어 줘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교도를 교무님 한 두 분이 어떻게 일일이 챙긴단 말인가?

그렇기 때문에 소태산 대종사는 교화단 제도를 만들어 준 것이다. 우리는 교화단 운영을 실질적으로 해야 한다. 교도들의 출석률이나 재정 등 어느 정도 규모가 갖추어진 교당에서야 인재가 많아 교화단이 내실 있게 운영 되겠지만, 규모가 작은 교당에서는 교화단을 구성하고 단장·중앙을 세우기에도 벅차다. 따라서 형식만 갖춘 교화단으로는 힘이 생길 수 없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실질적인 교화단을 조직하고 이를 잘 이끌어 줄 인재를 선발해 훈련을 해야 한다. 교당에서 교화단을 조직하는 목표가 분명해야만 이런 운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범적인 교화단 운영의 선례가 만들어진다면 작은 교당이라도 탄탄하게 조직화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장·중앙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말하자면 단장·중앙 훈련이 더 현실적인 내용으로 구성돼야 한다. 훈련이 제대로 된 단장·중앙이 꾸려져 그 역할을 분명하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단장·중앙 훈련을 통해 그 역할을 확실히 인식하고 교화단을 운영하는 좋은 방안들이 공유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이 신심이 나서 자발적으로 자기역할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어야 할 것이다.

또한 공익심을 배양시키는 교당이 되어야 한다. 나는 이 공익심을 세상에 베푸는 공익심의 하나로 설명하고 싶다. 일반대중이 종교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려운 이웃에 봉사하는 모습을 크게 생각한다. 그들과 함께하며 교화할 수 있는 방편으로는 봉사와 나눔만큼 감동적인 것이 없다고 본다. 우리들의 공부가 자기를, 우리 교당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얼마나 협소한 모습이겠는가? 광대무량한 낙원건설이 목표인 우리회상이 세상에 나눔이 돼주지 못한다면 어떠한 모습으로 교화·교육·자선의 목적을 이룰 것인가?

일상수행의 요법 9조목 중 마지막 아홉 번째가 '공익심 없는 사람을 공익심 있는 사람으로 돌리자'이다. 우리 공부의 목표는 사은사요와 삼학팔조를 통해 결국은 자기라는 좁은 틀을 벗어나 하나의 자리, 일원의 진리에 합일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각 교당의 교도들이 어려운 교도, 어려운 이웃 교당에 대한 관심과 지역의 어려운 이웃에 대한 봉공활동으로 세상을 훈훈하게 만들 때, 원불교에 대한 이미지도 좋아지고 교도들도 자긍심을 가지게 돼 교화도 잘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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