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칼럼

▲ 박인건 교도/남대전교당
한국인은 참으로 위대하다. 주말마다 많은 시민들이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결국 국회에서 박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이끌어냈다. 질서있고 평화적인 촛불 민심에 대해 지구촌이 찬사를 보내고 있다. 성난 군중이 모이면 으레 과격해지는 것이 세계적인 흐름이었다. 유독 한국에서만 분노를 뛰어 넘어 광장 민주주의 축제로 승화시켰으니 그럴 만하다.

현직 대통령이 국정 농단의 주범, 피의자 신세로 전락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최순실이라는 비선 실세가 대통령 권력을 업고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며 검은돈 챙기기에 바빴다. 검찰 수사결과 박 대통령은 재단 강제모금에서부터 추가 출연 강요, 최 씨의 대기업 갈취, 청와대문건 유출에 이르기까지 사건 전반에 개입한 공범으로 적시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 학생들을 포함 304명이 차가운 바다에 갇혀 절체절명의 위기, 촌각을 다투는 순간임에도 박 대통령은 미용사를 관저로 불러 자신의 올림머리 손질을 하고 있었다. 성형이나 외모에 집착하는 듯한 대통령을 보는 국민감정이 착잡하다. 그러고도 거짓과 변명으로 남 탓만 한다. 시민들이 '이게 나라냐'고 묻고 또 묻는다. 민심은 무능한 대통령뿐만 아니라 이를 방관·비호했던 친위정치 세력에 대해서도 준엄한 심판을 내렸다.

대통령의 몰락 과정에서 호리도 틀림없이 작용하는 인과의 이치를 본다. 대종사의 가르침은 간단명료하다. 민심은 곧 천심이라고 했다. "작은 재주로 작은 권리를 남용하는 자들이여! 대중을 어리석다고 속이고 해하지 말라. 대중의 마음을 모으면 하늘 마음이 되며, 대중의 눈을 모으면 하늘 눈이 되며, 대중의 귀를 모으면 하늘 귀가 되며, 대중의 입을 모으면 하늘 입이 되나니, 대중을 어찌 어리석다고 속이고 해하리요."

예로부터 하늘의 순리에 따르면 살고, 하늘의 뜻을 거역하면 망할 것(順天者存, 逆天者亡)이라고 했다. 당태종 통치이념을 담은 '정관정요'는 임금과 백성의 관계를 '배와 물'로 비유했다. 민심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水能載舟 亦能覆舟)고 경고한다. 교수들이 지난해를 대표하는 사자성어로 '혼용무도(昏庸無道)'를 선정한 의미가 지금도 새롭다.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의 실정(失政)으로 인해 나라 전체의 도의가 송두리째 무너져버린 상태'를 빗댄 것이다.

고집과 오기로 꽉 막힌 무능한 패거리 정치, 국민을 겁주고 무시하는 1960~70년대 정치 스타일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은 오래 전부터였다. 정권 출범 초부터 당초 대선공약과 국민의 기대와는 달리 역사의 수레바퀴를 후퇴시키는 등 갖가지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보여줬다. 시대착오적인 리더십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분출됐지만 이를 끝내 무시했다. 불행을 자초한 것이다.

이제 어찌 할 것인가. 민심의 본의를 정치 제도권으로 어떻게 제대로 수렴할 것인가. 대의 민주주의와 그 절차에 대한 반성과 각성이 이 시대의 화두다.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은 그 나라의 국민 수준에 비례한다는 말이 있다. 유권자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시·도지사, 지방의원 등을 선출할 땐 후보자들의 인성·도덕성, 자질 및 전문성 등을 두루 살펴서 그 중에서 가장 나은 인물을 뽑을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는 뜻이다. 잘못 선출할 경우 그로 인한 공업은 두고두고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세상을 바꾸려면, 즉 정신개벽을 하려면 격물치지(格物致知) 그리고 그 이후 단계에 주목해야 한다. 수제치평(修齊治平)의 도(道)로 이어지는 지도자의 덕목이 중요하다. 대종사는 대각을 이룬 후 구인제자에게 최초법문을 내려줬다. 수신의 요법, 제가의 요법, 강자·약자 진화상 요법, 지도인으로서 준비할 요법으로 구성돼 있는 것은 실천적·실용적 종교로서의 면목을 그대로 보여준다. 정신개벽과 제생의세의 행동강령이다. 누구나 이해하고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살아있는 법문이다.

현대사회는 개방·소통·참여의 수단을 통해 집단지성을 눈 깜짝 할 사이에 만들어 간다. 누구나 쉽사리 지식과 정보를 창출하고 습득할 수 있고 여론을 이끄는 리더가 될 수 있다. 이번 촛불 민심에서 확인한 성숙한 시민의식은 1960년 4·19 혁명, 1987년 6월 항쟁에 비견할 만하다.

우리는 어두웠던 선천시대를 마감하고 희망찬 후천시대를 열어가는 전환점에 서 있다. 교구장협의회는 지난 8일 '국민이 주인 되는 세상을 열어가기 위한 개벽소리'라고 진단했다. 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정신개벽을 이뤄간다면 대한민국은 세계인의 정신적 지도국, 도덕의 부모국으로 성장할 수 있기에 그러하다.

저물어 가는 한 해의 끝자락이 엄중하기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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