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도량으로 다변화 꿈꾸는 교당

▲ 입구에서 바라본 수계교당 전경. 수계교당은 총부 대각전의 모형을 본따 지었으며, 현재 문화도량을 위한 입간판 설치 및 생활관·수행도량 현판 작업을 마쳤다.
삼례읍 신수로 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전북 완주군에 위치한 수계교당을 만난다. 차에서 내려 바라본 수계교당의 모습은 소박하고 꾸밈없이 아름답다. 일찍이 대종사, 정산종사, 대산종사, 좌산종사를 가까이에서 모셨던 수계교당은 가히 복 받은 교당이라 할 만하다.

초대교무 시절, 신심 깊은 창립주의 공덕으로 공들여 지은 대각전이 지금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어쩌면 옛 것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어 가는 요즘, 수계교당의 소박하면서도 여유있는 모습은 매우 신선하게 다가온다.

70여 년의 역사 속 전통을 이어오며, 최근 완주 3공단과 새 도로 공사로 도시 외곽지역 교화도 꾀하고 있는 수계교당. 이번 달은 새로운 문화 도량을 꿈꾸며 외형과 내실을 갖춰가고 있는 수계교당을 찾았다.

전 교도가 농촌박사, 명품편강

수계교당을 찾은 12월2일은 편강 작업이 한창이었다. 수계교당이 위치한 완주 봉동지역은 고려 초기 때부터 생강을 재배하기 시작한 곳으로, 육질이 단단하고 알이 크며, 향이 짙어 진상품으로 각광받았다. 몸을 따뜻하게 해 감기예방에 좋은 봉동 생강을 얇게 잘라 매운맛을 빼내고, 설탕에 졸여 건조한 제품이 바로 '편강'이다.

현재 봉동의 191농가가 73㏊의 생강을 재배, 연간 약 2000t을 생산하고 있으며, 수계교당 역시 수계농원에서 생강 농사를 짓고 전 교도가 합심해 편강을 만들고 있다.

장주현 교무는 "12월과 1월에 2번씩, 1년에 총 4번의 편강 작업을 하고 있다. 수계농원에서 1322㎡의 땅을 제공해 줘서, 생강 농사를 짓고 있다. 10월말쯤 생강을 캐고 각 집에 마련된 땅굴에 넣었다가, 12월에 꺼내서 씻고, 강판에 갈아서 설탕과 1:1 비율로 절인다"며 "그 뒤, 교당에 마련된 황토방에 하나씩 널어서 2~3일을 말려야 한다. 농사를 짓는 것이 보통이 아니지만 수계교당 편강이 '명품편강'으로 입소문이 나서 12월 초부터 주문 전화가 밀린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농촌교당이다보니 노인들이 대부분이고, 건강이 여의치 못해 허리를 못 펴거나 절뚝거리는 교도들도 많다. 그래도 편강 작업 하는 날이라고 하면 모든 일을 제쳐두고 교당으로 온다. 이제는 교도 모두가 '농업박사'가 됐다. 수계교당에서 나오는 편강 맛은 다르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마음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일심합력 편강 작업을 하는 수계교당 재가출가 교도들의 이마에는 땀 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있다. 하나하나 정성을 쏟아 만드는 수계교당의 편강. '명품편강'으로 정평이 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2일 수계교당 장주현 교무와 교도들이 명품 수계편강을 위한 생강 다듬기 작업을 하고 있다.
'예'의 향기 가득한 도량

예로부터 물 맑고 산수가 좋아 천재지변도 피해가는 복 받은 땅이라 불렸던 수계교당 교화는 과수원 경영과 함께 시작됐다. 원기26년 수계리 주민들이 밤 공부에 참가하면서 야회가 운영됐고, 원기27년 3월19일 결사존속계를 제출하고 정식예회를 보기 시작해 6월10일 전북 완주군 삼례읍 수계리 삼례과원(수계농원)내에 출장소 간판을 걸게 됐다. 6월25일 송벽조 교무가 부임해 첫 교리강습을 실시했으며, 원기30년 8월20일에는 전재동포구호사업에 김치온, 홍성중, 유서완, 이팔중행, 김재형 교도가 참여하기도 했다.

"당시 구산 송벽조 선진은 교리를 가르치며 영육쌍전의 모범을 보이셨다"고 전한 교도들은 "교리를 쉬운 말로 새겨주고, 설법을 잘해주셨다"고 회고했다.

재가출가 교도가 한 마음 한 뜻으로 환약장사와 의연금을 모았으며, 여름엔 모를 심고 정산종사가 내려준 수답 8두락을 공동 출역해 기금마련을 해 온 결과 원기34년 교당건축준비위원회가 조직돼, 원기35년 6월 교당이 완공됐다. 교당의 모습은 총부 대각전의 모형을 본따 지었으며, 원기35년 4월 초대교무로 고현종 교무가 부임했다.

원기36년 7월9일~9월4일 정산종사가 수계교당에서 신정예전을 편찬한 것은 교도들의 큰 자랑거리다.

수계교당에서 새 예전 편찬을 마친 정산종사는 "예는 원래 시대와 국토를 따라 그 형식이 한결같지 아니할 뿐 아니라, 지금은 묵은 세상을 새 세상으로 건설하는 중요한 시기라, 예의 근본 정신은 공경이요, 우리 예전의 요지는 널리 공경하고 공(公)을 존숭하자는 데 있나니라"고 말한 바 있다.

<예전>은 서(序), 조신(操身)의 예, 가정의 예, 교회의 예 등 4부로 구성돼있다. 종전의 예전에 비해, 조신의 예 총 19장이 새로 편입됐고, 가정의 예에 회갑, 천도재가 증보됐으며, 교회의 예에 봉불, 법회, 득도, 은볍결의, 대사, 봉고, 특별기도, 축하, 영모전, 영모원, 대향, 교의(敎儀)등이 새로 편입됐다.

김영연 교도는 이 시기를 회고하며 "아침마다 이슬을 받아 정산종사께 드렸다"고 말했다.

수계교당은 교당 설립 60주년을 맞아 종각 옆에 '예전편찬도량'이라는 기념석을 세웠다. <예전> 편찬 당시 정산종사가 거처하던 방을 '예당'이라고 이름 붙이고 현판도 걸었다.
▲ 7월22일 현판 작업을 마친 수계교당의 예정각.
수계교당 문화성지불사

장주현 교무는 수계교당에 부임한 뒤, '문화성지불사'에 대한 서원을 세우게 된다. 도량의 역사성을 보존하고 문화재적인 가치를 드러내고자 간절한 기도를 올렸고, 여러 교도들의 희사와 합심, 그리고 사은의 원력으로 최근 불사를 마치게 됐다.

장 교무는 "문화성지를 위해 7월9일 예전편찬도량 '금석문'과 '종' 탁본을 했고, 7월22일 종각에 예정각(禮鼎閣)이라는 현판을 걸었으며, 75년 동안 교당을 지켜왔던 소나무를 예송(禮松)이라 이름 지어 입석했다. 8월2일 종 건립의 역사와 유래, 공덕주들의 희사내용, 현판 희사자와의 인연 등을 기록해 '종각기'를 설치했다"며 "9월2일에는 교당을 안내하는 입간판을 설치하고 9월3일에는 생활관 수헐계합(岫歇溪合)과 수행도량 영육쌍전관(靈肉雙全館), 예전편찬실을 예정실(禮鼎室)로 명명해 현판으로 새겼다. 이제 수계교당은 교도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수행자들이 찾아오고 있으며, 이곳을 지나가는 여행객들도 갈 길을 멈추고 들어와 보고 싶은 곳이 됐다. 교당에 들러서 사진도 찍고, 힐링의 시간이 되도록 안내하고 있으니, 이것이 곧 교화로 이어질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9월4일 수계교당에서는 문화성지불사 마무리를 축하하는 문화법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참여한 어양교당 이승연 교도(문화사회부 원무)는 "수계교당과의 인연은 약 4년 전부터 맺어져 요즈음은 거의 1주일에 1~2번 오는 것 같다. 이 곳이 제2의 교당이 됐다"며 "오랜 역사와 유래를 알게 되자 교당의 위용과 자태가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문화재로서의 기반을 준비해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이원 교무님, 김영돈 조각가와 함께 현판 작업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소개했다.

이양전 교도회장은 "수계교당은 가장 아름다운 교당, 문화재가 많은 교당, 그리고 누구나 순례해보고 싶은 교당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건물마다 이름을 지어 현판을 붙였고, 도량의 안내문을 한글과 영문으로 기록해 세웠으니, 후에는 '지방문화재'로 선정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봉공과 교화의 물줄기가 함께하는 곳, 문화 도량으로 다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수계교당의 교화 전망이 밝게 느껴졌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