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진의 문화코드

▲ 허경진 교도/강북교당
촛불 하나의 힘 미약하지만
수없는 빛 만들 수 있어
지배층 중심 역사 벗어나
소외층 없는 문화 거듭나야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역사는 지배계층이 중심이다. 누구왕 몇 년에 어떤 일이 있었고, 무슨 장군이 무엇을 했고… 이런 식이다. 예를 들어 우리 조상의 뛰어난 주조기술을 보여주는 에밀레종도 역사책을 통해 성덕대왕 신종으로는 알고 있지만 그 뛰어난 주조술을 보여준 대장장이가 대박사 박종일이라는 사실은 잘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우리는 역사를 만들어 온 진짜 주인공들보다는 그냥 한 시대를 대표한 지배자 즉, 기득권을 중심으로 한 역사에 너무나 익숙해 있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사실이 조금은 억울하게 느껴지던 중 한 책을 통해 독특한 역사가 한명을 만났다.

그는 황제나 뛰어난 장군의 무용담 대신 묵묵히 일하는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사소한 한 줄의 기사까지 찾아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쓴 최초의 역사가 에릭 홉스봄이다. 영국의 신문 가디언지는 '수 백 년 동안 기득권에게 집중되어 있던 역사를 민중에게 돌려주었다'고 그를 평가했다. 이 평범한 사람들이 바꾼 역사에 일생을 바친 학자가 자신의 자서전 '미완의 시대'의 마지막에 남긴 구절은 다음과 같다.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포기해선 안 된다. 세상은 결코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이 말을 온 국민이 듣기나 한 듯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국민에 의한 역사가 눈에 보이게 이뤄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1항과 2항을 노래로 부르며 역사의 한 페이지를 당당하게 채우고 있다.

그 뿐 아니다. 또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라는 노래를 부르며 가장 아픈 국민을 위로하고 응원하고 있다.

언젠가부터 이 평범한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으면 촛불을 들고 모이고 있다. 촛불은 어떤 것인가? 우리는 촛불을 보면 절로 마음이 경건해지고 차분해 진다. 그리고 평화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왠지 모르게 착해지는 기분이 들게 한다.

이 촛불 하나의 힘은 미미하다. 그 빛 또한 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하나의 촛불은 무한히 퍼져나가 수 없는 빛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평화를 향한 사람들의 마음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언제나 세상의 주인공이었지만 그렇지 못했던 평범한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모여 역사의 중심이 되고 있는 모습은 '옳고 아름답다'라는 말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

23년간 스웨덴을 장기 집권한 총리 타게 에를란데스가 전쟁 후 황폐해진 나라를 모든 국민이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기 위해 택했던 방법은 모두와의 대화였다. 그는 목요일 마다 각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 저녁을 함께 먹으며 더 나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방법을 고민했다. 그에게 초대받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그가 23년간 11번의 선거에서 승리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국민 모두가 다함께 성장한다는 믿음이었다. 아이를 돌보는 여성들, 몸이 불편한 사람들, 고등 교육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고자 했다.

그의 정치이념은 '국민의 집'이었고 이 집은 모든 국민들을 위한 좋은 집이 되어야 하고 그 집에서는 누구든 특권의식을 느끼지 않으며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좋은 집은 바로 국가라고 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든 촛불의 힘으로 우리도 모두의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정말 다사다난했던 병신년 한 해가 저물고 있다. "묵은 세상과 새 세상이 바꾸이고 있나니, 낡은 것은 가고 새 것이 서는 것이 상도니라. 우리가 모두 새 사람이 되어야 하나니, 그대들이 지금 새 세상의 기운으로 몇 살이나 되었는지 살피어 보라"는 정산종사의 말씀을 되새기며 진정한 의미의 송구영신이 되기를 간절히 또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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