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칼럼

▲ 박시현 교도/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원남교당
또 한 해가 저문다. 지나온 한 해를 조용히 돌아보고 잘된 일은 칭찬하고 잘못된 일은 반성하여 보다 나은 새해, 희망찬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할 때에, 우리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 지난 4년간 저지른 저급한 일들이 매일 같이, 아니 매 시간, 낱낱이 보도되는 바람에 "기가 막힌다!"를 입에 달고 지낸다.

대통령을 두둔하는 이들은 그의 잘못이 대수롭지 않다고 하며 촛불을 들고 대통령의 하야를 외치는 이들을 나무란다. 그들은 역대 다른 정부에서도 비리는 있었고 현 대통령이 탕진한 돈의 액수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생각이 달라도 많이 다르다. 하기야 우리는 같음과 다름의 사이에서 친·불친에 얽혀 산다. 뜻이 같으면 통한다고 하고 다르면 안 통한다고 한다. 무엇인가 공유하는 것이 있는 처지에서 쉽사리 친해진다. 고향이 같다고, 출신학교가 같다고 가깝게 느낀다. 또 종교가 같다고 좋아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는 결국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가까웠다가도 멀어지고 멀었다가도 가까워지는 경우를 흔하게 본다.

어차피 우리는 다 다른 개체들이다. 궁극적 진리는 하나이나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들로서는 다 다르기 때문에 궁극적인 진리에 이르는 길을 다르게 선택할 수가 있다. 음식이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지만 어떤 특정 음식만 좋다고 주장할 수 없고, 운동이 건강을 지키는 데에 좋은 것이지만 어느 특정 운동만 좋다고 주장할 수 없다. 다른 선택으로도 같은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종교 역시 특정 종교만 좋다고 주장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 각자가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하고 사리를 원만하게 알아서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함으로써 정의를 실천하여 정의 사회를 구현하는 일이다.

우리는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 공명정대한 이념'을 정의라 하고 '의리·도리·정의에 어긋남, 옳지 못함'을 불의라 한다. 다 함께 행복한 평화로운 세상을 이룩하고자 하는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은 불의를 버리고 정의를 실행하는 것이다. 작업취사 공부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수양력을 얻고 연구력을 얻었다 할지라도 취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즉 정의 실행을 하지 못하면 수양과 연구가 물거품이 되고 만다. 온전한 취사력을 얻어야 정의를 실천하고 궁극적 진리에 합일할 수 있다. 이는 곧 일원의 체성에 합하는 것이다. 개인적 이해관계에 따라 정의와 불의를 구별하는 기준이 달라질 수는 없다. 개인의 특성이 다르고 진리에 이르는 길의 선택이 다를지라도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는 사사로운 이해관계를 넘어서 모두에게 같이 적용되는 것 아닌가.

대통령의 행적 가운데 중대한 위법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나라가 혼란에 빠졌고 시국을 안정시키는 데에 총력을 다 해야 할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입지 강화에 바쁜 모습을 보이니 국민이 열 일 제치고 나선 것인데, 그 정도의 잘못을 문제 삼느냐고 하는 이들은 도대체 어떠한 기준으로 정의와 불의를 구별하는 것일까? 역지사지하여 이해한다? 권력자에게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 야단야단할 거 없다? 잘못된 역지사지이고 바꿔야 할 생각이다. 권력자에게 주어진 권리는 의무이행을 위한 것이다. 권위도덕의 시대는 지나간 지 오래다. 지위가 높다고, 법위가 높다고 권위를 내세우는 것은 볼썽사나운 일이다. 국가나 교단의 지도자에게 필수적인 덕목은 공도정신이다. 공도정신을 발휘할 때 권위는 저절로 선다.

한 촛불집회에서는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백만 인파가 일시 소등을 함으로써 암울한 시국을 표현하고 이 나라에 어려 있던 어둠이 걷히고 광명이 찾아오리라는 희망을 상징하여 다시 점등했다. 한편, 지난 12월8일 원불교 교구장협의회는 '대통령 탄핵에 대한 원불교의 입장'을 밝히면서 '대중의 마음을 모으면 하늘마음'이 된다고 하신 대종사의 말씀을 인용하고 "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정신개벽을 이뤄간다면 대한민국은 세계인의 정신적 지도국, 도덕의 부모국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 원불교인들은 정의가 살아 숨 쉬고 민주주의가 꽃피는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하며 국민들과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우리 원불교인들은 병든 사회 치료법을 알고 있으니 부지런히 실력을 갖추어 정의 실행에 앞장 서야한다. '일원상과 같이 원만 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각자의 마음을 사용하자는 것이 곧 일원상의 수행'이라고 한 소태산의 제자로서 일원상 수행을 올바르게 함으로써 평화 세상 건설의 일꾼이 될 것을 다짐하고 인도 정의를 세우는 공도자가 많이 나와서 대명천지를 맞이하게 되기를 염원하며 두 손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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