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선학대학교 선학연구원
연구논문발표회, 정민주 교무

▲ 원기101년 여자정화단 총단회에서 여성교역자들이 정화단 선서를 하고 있다.
영산선학대학교 선학연구원은 20일'교수연구논문 발표회'를 열고 원불교 실천교학의 다양한 연구과제를 제시했다. 특히 정민주 교무가 발표한 '원불교 여자교무제도 혁신과 변화를 위한 성찰'은 원불교 2세기 교단이 반드시 극복해야 할 혁신과제 중 하나로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

그는 "100년 전 원불교가 처음 시작될 때, 이는 단순한 한 종교의 시작이 아니라 기존의 낡고 부조리한 관습과 가치관의 일대 혁신이었다"며 "소태산은 오랜 시간 이 땅에 편만했던 여성 차별적 관습과 문화를 뛰어넘은 선진적이고 개혁적인 가르침으로 여성 해방을 선도했다"고 발표를 시작했다.

그는 "그러나 지금 원불교의 여성교무제도는 일명 '정녀제도'로 고착되어져 왔다"며 "여성에게만 적용되는 관례법과 일반적인 사회 시선과 문화에서 이질감을 주는 외양에서 시대에 맞지 않는 관습과 불평등이라는 차별적인 문제에 다시 봉착했다"고 현실을 지적했다. 혁신적인 초기 교단 시절과 달리 지금 여성교무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강요되는 성속의 분리, '검정치마 흰저고리'로 상징되는 보수성,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 제한 및 심신의 구속 등 성차별성이 교단문화로 고착돼 가는 현상을 꼬집었다.

그는 '남녀권리동일'을 통한 여성해방, 기혼녀 출가 문호의 개방, '생활시불법, 불법시생활' 등 현재 여성교무제도가 소태산의 본의와 맞지 않다는 점을 짚었다.

그는 먼저 남녀권리동일에 대해 "소태산은 단순히 교리로써만 양성평등을 주장한 게 아니다"며 "교단 내 조직과 제도로써 남성과 동등한 여성의 지위와 역할을 현실화했다"고 설명했다. 소태산의 이러한 가르침은 초기교단에서 여성의 성직을 인정하는 여성교무제도를 확립할 수 있었고, 원불교 조직의 기반인 교화단 조직에서도 최상위단인 수위단 구성에 남녀를 동등하게 해 남녀공동대표를 구성하는 등 남녀 차별적 요소를 배제했다. 특히 당시는 여성에 대한 재가출가는 물론, 기혼이냐 독신이냐의 차별도 없었음을 강조했다.

이어 기혼녀 출가 문화 개방에 대해 "현재는 여성교무가 되기 위해서는 '기간제 전무출신'이 아닌 이상 미혼이어야만 지원할 수 있고, 독신 상태를 유지해야만 계속 교무직을 수행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교단 초기에는 결혼여부에 상관없이 기혼자에게도 교무의 길이 열렸다"며 소태산이 남녀불문하고 결혼에 관해서 본인 의사에 맡기도록 한 점(〈대종경〉서품18, 실시품27),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가지고서 전무출신을 할 수도 있었던 점, 특별한 발원으로 일생을 독신으로 지내는 정남정녀로도 전무출신에 임할 수 있게 한 점 등 결혼이라는 명제가 분명히 개인의 선택에 따른 것이라는 것을 밝혔다.

또한 소태산이 '정복이 있게 되면 온갖 구속을 다 당할 터인데, 너희들은 그것을 어떻게 감당하려느냐'며 정녀들의 정복 제정에 응하지 않았다는 법문을 소개하며, "소태산은 수도인이라는 이유로 별다른 표식을 외양으로 나타내는 것은 도리어 수도생활에 지장을 주고 많은 이들을 교화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여성교무제도가 가지고 있는 한계점으로 결혼제도가 남성과 여성 교역자에게 차별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점, 여성교역자 결혼 및 복장 개방화 등 시대 변화에 대한 요구와 고통의 호소에 교단적 노력이 유보되고 있는 점, 여성교역자 제복이 교단적 성격 규명없이 제정돼 시대적 개선을 무시하고 있는 점 등을 들었다.

그는 "정직한 성찰을 통해 잘못을 돌아보고, 혼란과 어려움이 예상될지라도 교법 정신으로 여자교무제도를 다시 세우는 것이 소태산의 혁신 정신을 물려받은 후진의 도리다"며 "그렇게 되었을 때 평생을 정녀로서 자부심 갖고 성직에 임하는 많은 여자 교무들을 진정으로 '교단의 유공인'으로 '공도자'로 숭배하는 길이 된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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