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교화 이야기

▲ 네팔인들은 대지진 참사를 당하고서도 생활에 여유와 한가한 마음을 유지하고 있다.
▲ 이법안 교무/사)삼동인터내셔널
지난해 4월25일, 5월12일 두 차례 네팔을 강타한 대지진 참사 당시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운 일을 겪어야만 했다. 지진 당시 나는 새삶센터 스탭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러 가는 도중이었다. 당시의 상황을 표현하자면 누군가 나를 잡고 마구 흔드는 느낌과 비슷했다. 운전대도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 타이어 펑크를 의심할 정도로 사태가 심각했다. 건장한 청년들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8명의 스탭들은 비명을 지르며 한바탕 난리가 났다. 흔들림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침착해~." 순간적인 대처였지만 내가 외친 한마디였다. 당황보다는 침착함을 먼저 선택한 나는 흔들림 속에서도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안정이 되고 나서야 스탭들은 나에게 무섭지 않았냐고 질문해 왔다. 나는 무서움보다 다른 사람들이 다치진 않았을까 걱정이 많이 된다고 했다. <대종경> 실시품 1장 법문과 당시 나의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종사 법성에서 부안 봉래정사로 오시는 도중 뜻 밖에 폭풍이 일어나 배가 크게 요동하매, 뱃사람과 승객들이 크게 소란하여 대종사 태연 정색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아무리 죽을 경우를 당할지라도 정신을 수습하여 옛날 지은 죄를 뉘우치고 앞날의 선업을 맹세한다면 천력(天力)을 빌어서 살 길이 열리기도 하나니, 여러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라" 하시니, 배에 탄 모든 사람이 다 그 위덕에 신뢰하여 마음을 겨우 진정하였던 바, 조금 후에 점점 바람이 자고 물결이 평온해졌다고 했다.

대종사의 제자로서 늘 법문을 마음에 새기고 일상생활에서 활용하고자 노력해 왔지만, 이번처럼 큰일을 당하여 마음을 안정시키고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던 체험은 없었다. 평소 법문을 봉독하거나 사경을 하면서도 크게 마음에 와 닿지 않는 법문들이 있었다. 그것은 공부의 숙련도와 깊은 연마의 부족함 때문이라 생각한다. 또한 대종사처럼 그런 지도자의 위치에 있지 않았거나 유사한 상황을 경험하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지진 사태를 통해 나는 법문과 내가 하나 되는 경험을 했다.

지난해에는 새삶센터 인근을 지나기만해도 폐허로 변해버린 마을을 흔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국제구호단체들의 도움과 조그마한 움직임들이 모여 무너져버린 건물 잔해들을 하나둘 정리해 가고 있었다. 간혹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또는 어디서 오셨나요?' 라는 질문을 받지만 나는 항상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답한다. 외국인이라는 흔적을 지우고 접근하는 것이 활동하는 데 편하기 때문이다.

현재 새삶센터 주변 마을들은 약 10%정도를 제외하고는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더 대단한 것은 웃음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심 역시 마찬가지. 나는 대지진에도 잘 버텨낸 센터 건물에서 편하게 지내고 있는데도 네팔사람들은 자신이 가꾼 우유와 채소 등을 가져다주며 나를 위로해준다.

그들에게 있어 나는 이미지는 멀쩡한 건물에서 살고 있지만 한국이라는 먼 나라에서 와서 지진이라는 좋지 않은 경험을 하게 된 사람으로 인식된다. 가끔 네팔사람들이 운전하는 것을 보면 열이 받는 경우도 있지만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네팔인들의 국민적 정서는 놀라움 그 자체다.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착한 심성을 지녔으며 대지진에도 여유롭고 한가한 마음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참사를 당하고도 웃을 수 있느냐 묻는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처한 환경보다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촛불 집회를 더 걱정해 준다. 그것이 네팔인들이 가진 손님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마음이다. 나는 그들과 오랫동안 이곳에서 웃음과 행복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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