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명과 〈정전〉

▲ 원익선 교무/원광대학교
〈대종경〉 서품에서 보듯이 원불교는 개벽의 시대를 맞아 새로운 법을 요구하는 민중들의 요구를 수렴한 종교다. 특히 소태산은 깨달음을 얻은 후, 전통불교에 대한 비판을 통해 불법의 생활화, 대중화, 시대화를 주장하며 교단을 창립했다.

서품2장에는 석가모니불에게 연원을 대고, 불법으로 주체를 삼아 완전무결한 큰 회상인 낙원세계이자 불국토를 건설하겠다고 천명했다. 3장에서는 불법이 큰 도인 이유를 성품의 원리, 생사대사, 인과의 이치, 수행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 원불교는 불교의 전통을 계승하는 종교임을 알 수 있다. 서품 15장에서는 미래의 불법은 재래와 같은 불법이 아니며, 재가출가를 막론하고 누구나 공부하는 불법이라고 한다.

결국 원불교는 불교의 교의와 사상, 역사와 문화를 계승하면서 새로운 불법으로 선도해, 새 시대의 대중을 구제하는 종교임을 알 수 있다. 이 전통과 혁신의 관계는 불·법·승 삼보를 어떻게 개혁했는가에 차이가 있다. 실제로 초기불교에서 대승불교로의 전환은 불·법·승 삼보에 대한 개혁에 기반한다. 불보(佛寶)만 보더라도 석가모니불 만이 부처가 아니라 깨달은 모든 이를 부처라고 본 혁신적인 대전환이 있었던 것이다.

원불교 또한 이 대승불교의 정신 위에서 인격적으로 완성된 성현들만을 부처로 모시는 것이 아니라 우주만물 허공법계 모두를 부처로 본다는 또 하나의 혁명적인 발상을 전개했다. 자신을 포함해 모든 존재를 이 자리에서 부처로 모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발상은 소태산과 동시대를 살다간 근대 한·일의 대표적인 불교개혁가인 한용운과 세노오 기로가, 신화화된 모든 불상들을 철폐하고, 석가모니불 한 불상만을 모시자고 한 것과 대비가 된다.

소태산은, 허수아비가 처음에는 새를 쫓는 역할을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새들도 허수아비라는 것을 안다며, 궁극적 진리의 상징으로써 일원상을 내거는 것이 타당하다고 봤다. 그리고 그것마저도 절대화하지 않고, 누구든지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일원상을 그려 자신이 사는 곳에 걸어놓고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모실 수 있다고 했다. 우주의 근원과 성현들 및 중생의 마음이 일원상으로 일치됨을 깨닫게 한 것이다.

한용운과 세노오 기로에 의한 석가모니불 통합론은, 누구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가르침이 이성과 과학의 발전으로 점점 드러나는 이 시대에 그 경험을 실제로 보여준 역사상의 부처를 대중에게 표준으로써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소태산은 한발 더 나아가 굳이 돌이나 쇠로 만들어진 불상보다는 인간을 포함한 우주 전체를 부처로 모시자고 한 것이다. 모든 세계는 진리가 인격화·불격화 된 대일여래의 나타남이라고 보고 있는 밀교의 가르침과도 유사하다. 일원상 또한 인간과 우주만유 모두를 법성, 법신, 불성의 현현으로 보고 그것을 상징한 것이다. 곳곳의 모든 존재가 부처 아님이 없으며(처처불상), 곳곳의 모든 존재에게 불공을 해야 한다(사사불공)는 교리는 여기에 근거한다. 문명 전환의 시대에 이 세계의 주인이 될 활불(活佛)의 세계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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