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광장 평화집회는 소통과 집단지성 발현
교단 재가출가 교도 소통하는 문화 정착해야

대종사는 일찍이 우리나라가 정신의 지도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대종사 당대가 광복이전이고 독립이 될지도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당시 제자들에게 이는 참으로 요원하게 들리는 말씀이었을 듯하다.

대산종사는 원기56년에 이 말씀을 다시 강조하는데, 당시가 유신헌법이 발표되던 무렵이었음을 고려하면 역시 요원한 일로 여겨졌으리라. 필자도 이 법문을 접하고, '성현이 틀린 말씀이야 하겠느냐마는, 나라꼴을 볼 때에 우리나라가 그런 나라가 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이런 일이 필자 생전에, 그것도 원기101년에 벌어졌다.

시작은 분명 암담했다. 대통령의 일탈과 이를 부추긴 많은 사람들의 전횡, 해결되지 않은 세월호 참사, 물대포에 맞아 사망한 백남기씨의 시신까지 욕보이려는 도를 넘은 만행이 온 나라를 뒤덮었고, '이게 나라냐?'라는 자조적인 탄식들이 흘러 나왔다. 그러나 이렇듯 어둠이 한창 기승을 부리는 시점부터 대한민국의 새 역사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게 된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모였고, 미적거리는 정치권과 국회를 몰아붙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버티기 전략에는 사상 최대의 인파로 국민의 의지를 보여줬고, 국회 탄핵 이후로도 추운 겨울에 매주 집회를 늦추지 않고 헌법재판소와 정치권의 마무리를 촉구하고 있다. 그런데 세계도 이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세계인들은 우선 이처럼 수많은 사람이 모인 집회가 평화적으로 마무리된 데에 놀라는 듯하다.

필자도 경험했지만 사상 최대의 인파가 몰린 12월3일 집회의 연단부근은 몇 사람만 돌출행동을 해도 큰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경찰이 거의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 상황에서 그 어떤 폭력, 안전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는 3.1 운동부터 이어온 우리 국민의 평화에 대한 의지뿐 아니라 놀라운 시민의식을 보여주는 세계적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 세계 언론들이 충분히 주목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다양한 통신수단과 각종 소모임을 통해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면서 집단지성을 발휘하는 방식으로 전체 집회가 운영되고 있는 것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던 사건이다. 과거의 정치집회가 몇몇 명망가나 정치인들에 의해 주도됐다면, 최근에는 동창회, 동호회 등의 정치색 없는 모임 구성원들끼리 의견을 교환하고 수렴해 뜻이 맞는 몇몇이 집회에 참여하는 경우가 크게 증가했다. 정치적 의견교환이 일상화된 것은 물론, 그것이 숙의와 행동으로 발전해 이어지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정치적 평등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도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제 광장에서는 대선 후보들도 다른 시민들과 동등한 발언권, 발언시간만을 배정받는다. 이는 대중들이 스스로 주권자임을 자각한데서 기인한 것도 있지만, 집회가 더 이상 세몰이 형태가 아니라 소통에 의한 의견 수렴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언급할 것이 적지 않지만, 이미 이런 것들만으로도 우리나라는 세계를 놀라게 하는 것을 넘어서서 정신의 지도국이 되기에 충분한 역량을 보여줬다.

하지만 원불교 교도임을 떠올리면 이러한 우리나라의 진전이 밝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시기에 우리나라가 정신의 지도국이 될 것을 예언해준 대종사를 교조로 모시고 있는 교단은 우리나라의 이러한 정신적 성장에 얼마나 기여했을까? 교단의 규모가 커진 만큼 교단, 교당 운영도 체계화되어 사회의 모범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교단의 양 축으로써 출가와 재가가 서로 잘 소통하며 교단을 꾸려가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최근 들어 교도의 고령화와 더불어 교도 수는 물론 출가자 수가 감소하고 있는 것이, 혹 교단의 발전 속도, 특히 교단의 운영 방식이 사회의 발전 속도에 미치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누구에게가 아니라, 나에게 자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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