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는 명예시민혁명, 사드는 서세동점(西勢東漸)의 대치점'

인터뷰 전문(全文)
본사가 은덕문화원(원장 이공현)과 공동으로 기획한 '우리시대 코드를 읽다'는 분야별 전문가와 인터뷰를 통해 사회의 트렌드를 읽고, 사안에 따른 심층 분석으로 독자들에게 새로운 지평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 첫 번째 순서로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과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역임한 한완상 박사를 만났다. 한 전 부총리는 김영삼 정부에서 통일부총리 및 대통령 특사, 김대중 정부에서 교육부총리를 지냈고, 노무현 정부 시절엔 적십자 총재를 역임했다. 특히 한 전 부총리는 한국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교육과 종교라는 가장 근간이 되는 역사의 흐름을 엮는 존재로 우리 사회 가장 존경받는 원로로 손꼽힌다. 인터뷰는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투표가 진행되던 12월9일 오전 서울 은덕문화원에서 진행됐다.
인터뷰에서 한 전 부총리는 "현재 서세동점(西勢東漸)이 끝나는 때다"며 "이 시점에서 중국과 미국이 격돌하고 있는데 그 계기가 '성주 사드배치'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한국에 사드를 배치함으로써, 대륙의 최대세력 중국과 해양의 최대 세력 미국이 격돌하는 모양새다"며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했는데, 그런 안목이 없었고,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한반도에 싸움터를 마련해 준 셈이다"고 꼬집었다.

▲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는 한반도 평화체제 완성이 결국 민주화의 완성이라고 강조했다.

- 2016년 대한민국의 촛불민심이 청와대는 물론, 여의도 국회까지 물결치고 있다. 시작은 미묘한 정치적 사건이었지만, 어쩌면 낡아빠진 기존 질서를 타파하고 새롭게 우리 시대의 패러다임을 창출해 내는 국민에 의한 혁명의 서막이 열린 느낌이다. 촛불혁명을 어떻게 보는가.
"촛불혁명, 혹은 국민혁명이고 한국적인 '명예시민혁명'이라고 생각한다. 명예혁명하면 주로 영국의 경험이 떠올리는데, 이번 촛불집회야말로 명예혁명이다. 2016년 11월~12월 촛불혁명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참여했지만 한 사람도 체포되지 않았다. 피 흘린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제일 감동적인 것은 경찰이 막아둔 차벽을 뛰어넘으려고 할 때 시위하는 여고생들이 '비폭력', '내려와' 등을 외치자 노조 계열의 젊은 남자들이 내려왔다. 내가 이 나이를 먹는 동안 시민운동, 인권 평화 노동운동을 보아왔지만 기존의 운동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운동의 지평을 열었다고 봤다. 이것을 세계 유수의 언론들이 굉장히 높게 평가한 것이다. 이런 명예혁명이 이루고자 하는 것은 헌법정신 수호다. 그동안 헌법을 읽어본 국민들이 별로 없었는데, 촛불혁명을 계기로 헌법전문을 새롭게 읽어보면 좋겠다. 다시 요약하면 헌법 정신을 구현하자는 것이 거리로 나온 수백만 명 시민(주체)들의 외침이다."

- 그런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정신을 위반했다는 것인가.
"먼저 우리나라 대통령이 취임할 때, 헌법 준수를 서약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할 때, 헌법 준수를 맹세했다. 하지만 우리 헌법을 가장 체계적으로, 조직적으로 간교하고 사득하게 위배한 장본인이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국민들이 깨닫게 됐다. 헌법의 권위를 생활 속에서 세우자는 것이 국민적인 요구이었고, 그 의식이 싹튼 것이다. 이것이 촛불혁명의 동력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님을 알려준 것 같다. 이 정신에 충실하려고 했던 젊은이들은 감옥에 갔고, 노동자는 노동운동으로 온갖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만들려고 했던 모든 세력들이 고통을 지불했다. 이번에 달랐다. 국민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는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을 언어로만 한 것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줬다. 그렇기 때문에 명예혁명이다. 지난 8년간 우리 역사는 거꾸로 갔다. 퇴행의 역사였다. 명예혁명이라 부르는 이유는 운동권이나 노동자, 노조지도자 등 조직이 한 것이 아니고, 국민 전체가 민주공화국임을, 국민이 주권자임을 평화축제 분위기 속에서 성숙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얼마나 평화롭고 아름다운 광경이었나. 4.19 혁명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피를 흘렸는가. 6.3항쟁 때도 1987년 민주화운동 때도 피의 역사로 이 땅에 민주주의를 만들어 왔다."

-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은 무엇인가.
"헌법 전문을 보면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로 되어 있다. 지금 촛불명예혁명을 부정하는 세력들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인정하지 않는다. 1948년 8월15일 이승만이 남한의 단독정부를 수립한 것을 요즘 '건국절'이라 부르며 역사를 왜곡하려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상해임시정부의 정통을 이어받은 민주공화국이다. 이것을 부정하려는 세력은 친일파 세력으로 그 사람들이 새롭게 조작하려고 하는 것이 '국정교과서'다. 둘째는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로 되어 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재임하는 동안 4.19민주의거를 지우고 싶어 했다. 재임기간 내내 집요하게 집착했다. 셋째는 '평화적 통일사명에 입각해 민족단결을 공고히 하고'라고 했지만 지난 4년간 남북관계는 어떠했나. 민족적 대단결과 평화적 통일은 이름조차 생소한 단어가 됐다. 개성공단 폐쇄나 독일 드레스덴 통일대박 등 여러 정황상 최순실의 작품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시민들은 이것들을 가슴에 품고,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과 다르게 평화적으로, 명예롭게 촛불을 들었다. 헌법 전문 마지막 조항이 기가 막히다. 우리의 자손들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며 이 헌법을 8차(1987년)에 거쳐 개정했다. 이를 우리는 '87체제'라 부르고 있다. 세월호를 통해 보면 국민의 안전을 보호 하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가. 대통령을 향한 분노를 광장에서 평화적인 시위로 표현할 줄 아는 국민이 위대했다. 이것을 보면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이렇듯 시민들이 헌법정신을 되살렸다. 하나 더 이야기 하자면, 선진국을 포함한 세계의 유수의 언론들(CNN·AFP·NEWYORK TIMES 등)이 이번 촛불혁명을 굉장히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들이 극찬하는 이유는 민주주의를 꽃 피운 자신들과 시위경향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 결국 평화적인 시위, 규모의 시위가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는 것인가.
"그렇다. 규모나 평화적인 면에서 조명을 받았다. 내가 1960년대 초 미국으로 유학 갔을 때 워싱턴에 100만명이 모였다. 마틴 루터킹 목사가 연설할 때다. 그런데 미국의 6분1 밖에 안되는 한국은 촛불집회 3번 째 만에 100만명이 넘었다. 옛날 대행진을 보면 증오심과 핏발이 솟았지만 촛불행진은 무슨 잔치를 하는 것 같았다. 유모차를 타고 온 애기부터, 자녀들과 함께 나온 가족, 어린 학생들이 새로운 시위문화를 만들었다. 특히 자녀를 데리고 나온 부모들은 변혁적인 시위 현장에 자녀들이 참여했다는 자부심을 불어넣기 위해서란다. 이 광경을 보고, 또 다시 눈물이 나면서 부끄러웠다. 평생 교수로 살았고, 교육부총리를 역임한 사람으로 공교육을 해왔다. 부실한 공교육이 부끄러웠던 것은 저 아빠 엄마들이 가르친 현장 민주주의의 힘이다. 시민들은 철저한 비폭력을 지향했다. 이번 촛불혁명에는 대학연대나 노조, 운동권 조직 등 잘 조직된 중심부 세력이 없었다. 스스로 알아서 평화적으로 행진했고, 다 알아서 하는 최고의 성숙한 민주시민을 자처했다. 내가 1970년대〈민중과 지식인〉이라는 책을 써서 수많은 학생들과 제자들을 감옥에 보냈다. 지금도 이들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산다. 당시 내 책을 읽고 의식화된 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민주화 투쟁에 나섰다. 그런데 이번 촛불집회에 나온 사람들은 우파도 좌파도 아니다. 최순실의 악령에 의해 국가가 운영됐다는 사실에 국민들이 더욱 비참했고, 자존심이 상했다. 선진국인 영국의 축구경기를 보면, 훌리건들이 경기 승패 때문에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 이에 비해 촛불집회는 철저히 비폭력적이면서 문화잔치로 즐겁게 시위에 참가했다. 우리나라의 정치의식이, 참여의식이 이 수준까지 올라왔다는 것에 놀랐다."

- 사회학 학자로 이번 촛불집회를 어떻게 봤나.
"평소 얌전했던 사람들이 시위를 할 때 '집단적 행위'를 하는 경우가 있다. 얌전한 사람이 폭도로 변화는 것을 말하는데, 집단감성이라는 것도 폭력, 폭동과 연계해 많이 쓰인다. 촛불집회를 지켜보면서 한국적 '집단지성, 집단감성'이 엄청나게 성숙했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한국 종교가 이것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평가가 뒤따라야 한다. 결론적으로 박근혜라는 정치가가 국위를 손상시키고 나라를 부끄럽게 했다면, 분노한 국민은 이를 아주 성숙하게 표현하면서 대통령이 망가뜨린 국위를 선양했다고 말하고 싶다."

- 이제 광장의 열기를 어떻게 현실로 바꿔갈 것인가.
"촛불평화행진은 끝이 아니고 시작일 뿐이다. 내가 정치인들을 만나면 촛불혁명이 정권교체로 끝나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광장의 요구는 한 정당에서 다른 정당으로 정권이 넘어가는 것으로 만족하는 수준이 아니다. 정말 새 시대를 열어달라는 의미다. 앞으로 이 나라를 이끌고 가는 지배집단은 지난 71년간의 지배집단과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 나라의 지배세력은 친일 냉전세력이었다. 이승만이 집권 이후 친일파를 정리하지 못하면서 이들에게 집권의 길을 열어줬다. 친일세력이 이 나라를 지배하려고 하니, 그 부끄러움을 지우기 위해 '반공'이라는 이념을 가지고 나왔다. 자기들의 친일을 숨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등계 형사, 친일파 지식인들이 가장 극렬한 반공주의자였던 것도 자신의 친일을 숨기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이 남한의 지배세력의 핵심으로 들어오면서 자연히 남북관계는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반공을 팔아먹어야지 자기의 정치 영향력을 유지하고, 만들 수 있었다. 이승만 때부터 반공이 국시적인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물론 5.16군사쿠데타 세력들이 근사한 언어로 반공을 국시로 삼았지만 시작은 이승만 집권부터라 할 수 있다."

- 과거 지배세력과 단절하라는 말인가.
"광복 후 71년 지배세력은 반공, 냉전세력이면서 그 뿌리는 친일이었다. 지금 여당을 이끄는 사람들이 대체로 그런 정치적 풍토에서 성장한 사람들이다. 이번에는 야당에서 누가 나오더라도 새 시대, 새 문화, 새 체제, 새 역사를 만들 크고도 깊은 비전과 철학, 정치 프로그램, 아젠다를 가지고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권교체만으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문화적 민주주의(생활화된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를 실현할 수 있는 새 시대 새 사람이 나와야 한다."

- 해방공간에서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 분단에 어떤 역할을 했나.
"먼저 남북한 통일 문제를 말하기 전에, 1945년 8월15일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이날을 해방 혹은 광복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이날 해방도 광복도 없었다는 표현이 맞다. 해방 전 8월10일 전후에 우리 조국은 이미 3.8선이 그어졌다. 내막을 요약하면 소련 스탈린이 미국, 영국, 프랑스와 힘을 합쳐서 독일 히틀러와 싸울 때는 서로 동지였다. 그런데 1945년 5월 히틀러가 죽고, 독일이 연합국에 항복하자 소련이 미국의 주적으로 등장한다. 한반도는 히틀러가 죽고 패망한지 3개월 지나서 해방을 맞지만 해방을 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이미 소련을 주적으로 지정,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 전략을 세운다. 그런 견제 과정에서 루스벨트가 스탈린에게 간청하게 되는데, 미국은 히틀러와 유럽에서 싸우고, 태평양에서 일본과 싸우려니 힘들다. 너희(소련)는 유럽이지만 동시에 유라시아에 속하지 않는가. 그러면서 태평양전쟁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뜻이었다. 사실 소련군은 세계 2차 대전에서 2,000만명이 넘는 사상자를 낼 정도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냈다."

- 그럼에도 소련이 한반도로 진격을 했다.
"스탈린은 히틀러를 패망시킨 뒤에 한번 생각해 보자고 말했다. 이후 트루먼 대통령은 포츠담회담에서 스탈린과 대화중에 엄청난 무기를 개발했다는 말을 전한다. 회담 이후 며칠 안된 8월 초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터졌다. 한번에 10만명이 죽었고, 그것으로 전쟁이 끝났다. 스탈린이 갑자기 소련과 중국의 국경을 넘어 한반도로 진격을 시작한다. 태평양전쟁도 미국과 힘을 합쳐서 승리했다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다. 의문이 드는 것은 왜 미국이 소련을 태평양전쟁에 끌어들였는가다. 이것이 분단의 시작이다. 소련군의 남하 속도가 너무 빨라 8월10일 전후에 벌써 개성 근처까지 내려왔다. 이때 미국은 너무 당황했고, 소련은 이 전쟁에 숟가락만 하나 더 올린 꼴이 됐다. 미국이 소련보고 개입하지 말라고도 할 수 없고, 어느 선에서 저지하기 위해 그은 것이 3.8선이다. 3.8선을 긋는데 5초, 30초 걸렸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급박하게 만들어졌다. 3.8선을 그어 스탈린에게 통보한 날이 8월10일이다. 미국은 이 제안을 스탈린이 안 받으면 어떻게 할까 걱정했는데, 즐겁게 받았다. 이것이 한반도 1차 분단이다."

- 2차 분단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해방공간에서 남북간 조율이 안되면서 이승만이 1948년 8월15일에 대한민국 단독정부를 수립하게 된다. 이것이 한반도의 2차 분단이다. 지금 건국절을 추진하고 있는 세력들이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라고 말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날은 건국도 아니고, 위대한 날도 아니다. 수치의 날이고 분단 고착의 날이다. 왜 분단고착의 날인가하면 북한도 한 달도 안돼 9월에 김일성이 조선인민공화국를 선포하기 때문이다. 한민족이 두 국가로 분열하는 계기가 결국 1948년 8월15일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이었다. 건국절이 아니라 역사에 정확히 기록하려면 남한 단독정부 수립의 날이 맞다. 이날이 건국절이 되려면 헌법 전문을 고쳐야 한다. 건국절이 되면 임시정부 법통과 만주에서 독립운동, 국내 독립운동, 해외 독립운동은 헛수고가 된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애국지사들은 무엇이 되나."

- 그럼 3차 분단을 한국전쟁으로 보는가.
"1950년 6.25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됐다. 3년 전쟁으로 53년 7월27일에 휴전을 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분단이 고착기에 접어들었다. 냉전체제에서 분단체제가 만들어졌고, 김일성, 이승만 독재가 통일을 점점 멀어지게 했다. 두 독재자가 분단을 이용해 장기 집권을 한 것이다. 그래서 8.15일은 경축의 날이 아닌 가슴을 치면서 자성의 날로, 분단 고착의 날로 지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정교과서를 만들어 건국절을 미화하는 것이 얼마나 반 통일적 반 평화적인가."

- 통일을 어렵게 하는 이들이 분단세력들인가.
"자기 권력의 비행과 범죄를 비판하는 종교인이나 학생, 지식인들의 막아내고, 봉쇄하기 위한 것이 '종북좌파' 이념이다. 이것을 이용해 인권을 유린해 왔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훼손되는 것은 분단을 고착해서 통일을 지연시키려는 정치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적대적 공생관계라고 〈한반도는 아프다〉에서 다뤘다. 정치 행사가 있을 때마다 북풍이 불었고, 1987년 대선 때도 그랬다. 그해 11월29일 대한항공 858기가 공중에서 폭발했고, 김현희가 김포공항을 통해 국내로 송환됐다. 이때 이번 선거도 끝났구나 생각했다. 북풍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예는 무수히 많다. 지식인들이 87체제를 굉장히 높게 평가하는데, 그것으로 끝나버렸다. 두 김 씨가 후보단일화를 못한 것도 패배의 원인이다. 민주주의의 후퇴와 남북관계 악화가 그렇게 진행돼 왔다."

- 지도자는 국민과 국제정세를 제대로 살펴야지 않나.
"헌재의 탄핵이 결정되면 대권 레이스가 시작된다. 대권 후보들이 촛불 명예혁명을 통해 국민들의 의식이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을 다시 반복할 수 있다. 국제적으로 찬사를 받는 주체들에 대한 존경심, 헌법1조 1항을 종교인들이 신앙기도문처럼 외우듯 국민에 대한 존경심을 놓지 말아야 한다. 두 번째는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위상이 상당히 높아졌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때 떨어졌지만, 서세동점으로 우리나라가 동아시아에 위치해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중심부가 됐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도 세계 중심이 유럽에서 아시아로 향하는 것을 목도했다. 그래서 중국의 굴기(屈起)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오바마가 중국을 견제하는 정책으로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Rebalancing)'를 선언한 것도 그만큼 중국이 커졌다는 증거다. 한때 미국을 위협했던 소련 체제보다 중국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옛날 소련은 군사적으로 경쟁이 됐지만 경제가 엉망이었고, 정치도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하지만 중국은 정치적인 민주주의만 없을 뿐이지 경제적으로 G2 수준이고, 군사력도 막강하다. 현재 미국은 세계의 경찰로서 400여개의 군사기지를 보유하고 있지만 이를 유지할만한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트럼프가 고립주의를 택한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 그런데 최근 가장 과격한 사람을 국방장관으로 임명 했으니 두고 볼 일이다."

- 그렇다면 서세동점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외교는 무엇인가.
"인류 역사는 300~400년 동안 서세동점의 시대였다. 서구가 산업화, 시민혁명, 새로운 교육, 과학, 지식 등이 발달하면서 세계를 지배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다 가지면서 인류의 성장을 이끌었다. 하지만 서세동점이 중국 앞에서 딱 멈춰 섰다. 이 시점에서 인류 역사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결투가 시작된다. 이 양대 세력이 대결을 하지만 결국은 해양세력이 승리해 왔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도 해양세력의 밥이 됐다. 청나라가 일본과 싸움에서 패하면서 불길한 조짐을 보이더니 꼭 10년 후 1904년 러일전쟁이 터졌다. 이 전쟁에서 승리를 한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 했다. 한일병합 경술국치를 할 때 원조 해양세력인 영국과 떠오르는 태양 미국이 일본을 도와준다. 가쓰라-태프트밀약(Taft.Katsura agreement)을 통해 '너는 한반도를 먹고, 나는 필리핀을 먹을게 서로 인정하자'는 식이다. 식민지 시대의 참 천박한 논리다. 당시 우리나라는 힘이 약한 새우였다. 그러나 2016년 아직도 우리나라가 새우인가. 아니다. 아주 머리가 좋은 돌고래 정도는 됐다. 돌핀의 대표인 대통령이 돌핀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하는데, 수치스럽게도 우리의 대통령은 돌핀이 된 것을 새우로 거꾸로 만들어 놓은 것이 '한반도 사드 배치 결정'이다."

- 성주 사드 배치가 세계 힘의 균형에 있어 그렇게 중요한가.
"사드는 북한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성주에 사드를 배치한다는 뉴스를 접하니 피가 치솟더라. 북한의 미사일 견제보다는 중국과 유라시아 쪽 러시아를 겨냥한 것으로 힘의 균형을 깨트리려는 것이다. 이것을 모른 것이 박근혜였고, 최순실이었다. 개성공단 폐쇄나 성주 사드배치도 최순실의 지령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다. 성주 사드 배치가 결정되는 순간 시진핑은 분노했을 것이다. 사드의 핵심장비 중 하나는 엑스밴드(X-BAND)레이더다. 이를 통해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기지를 다 들여다보게 된다. 미사일과 핵은 억지력이 있어서, 서로 다른 짓을 못한다. 하지만 사드가 배치되면 핵보유 국가들 간의 힘의 균형, 그들의 핵 억지력, 그들 간의 공포균형이 무너지게 된다. 그러니 시진핑이 가만히 있겠는가. 한국에 대한 압박 수위가 갈수록 더 커질 것이다. 경제적인 것은 물론 문화적인 것, 관광 등 다방면으로 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민족에게 고통을 준 사람이 이번에는 외국인 혹은 외국이 아니라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라는 것이 안타깝다. 국민으로서, 종교인으로서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서세동점의 역사적인 시점에서 한국민은 위대한 저력을 보여줬다. 근대화, 산업화 시대를 만들어 온 것도 한 개인의 힘이 아니라 위대한 국민들이 한 것이다. 사드 배치는 우리 경제성장의 열매마저 원점으로 돌린 것이고, 군사 주권을 외국 세력에게 바친 꼴이다. 사드가 들어옴으로서 우리나라의 경제, 문화, 군사 등 다방면으로 어려워졌다. 한마디로 민족의 활로가 막히게 된다."

- 사드 배치를 문명사적으로 이해하라는 말인가. 한반도 평화와도 직결된다는 뜻인가.
"그렇다. 사드 배치는 21세기에서 단순한 신 무기도입 문제가 아니라, 한 문명사적 전환기에 방향을 그릇되게 튼 심각하고 엄청나게 위험한 잘못된 결정이다. 대통령이 이것을 모르고 저지른 것이다. 헌재 탄핵 이후도 걱정이다. 야당 대권후보들이 사드배치를 안하겠다고 의사 표시를 해야 하는데, 눈치만 보고 있다. 다음 정부의 대통령은 사드뿐만 아니라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과감한 정책을 펴야 한다. 한반도 평화체제가 완성이 안되면, 민주화도 완성이 안된다. 야권 대선후보들이 이 정책에 대해 확실히 밝혀야 한다. 남북한 적대적 공생관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될 수 없다는 단호한 신념을 지녀야 한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정착 없이는 남북관계 개선과 경제, 사회복지, 민주화의 진전도 성숙하게 진행하기 어렵다는 점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이다. 이 프레임 속에서 통일문제를 풀어야 한다. 평화가 무엇인가. 평화는 무력충돌의 부재만은 아니다. 그 이상이다. 그러기에 민생이 곧 평화다. 우리나라는 빈부의 격차가 너무 크고,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민생의 평화가 없다. 정의가 없으면 평화도 없다. 그러니 평화와 경제는 항상 함께 가는 것이다. 평화와 복지도 그렇다. 하지만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들이 평화문제보다 경제문제에 더 큰 관심을 보여준다. 그 이유는 국민들의 관심 사항이 경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화와 통일을 강조하게 되면 자칫 종북 좌파로 오해를 받게 되고, 또 표가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이런 프레임을 반드시 깨는 선거가 돼야 하고, '평화가 바로 경제이고, 바로 밥이고, 바로 정의다'는 것을 내세워 표를 얻어야 한다. 보라, 평화촛불행진을 하는 저 가족들을, 저 여고생들을 누가 종북 좌파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직도 야당 정치인들은 이 프레임을 깨는데 주저하고 있다. 이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종교적인 신념과 신앙을 가진 분들이 이 프레임을 깨는데 앞장서야 한다."

- '예수가 없는 한국 교회가 많다고 이야기 한다.' 이 말은 비단 교회 뿐 아니라 이웃종교에게도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선생님이 진단하는 한국 교회, 더 나아가 한국 종교의 과제는 무엇인가.
"한국 종교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내가 몸담고 있는 기독교에 대해 말하겠다. 저서 〈예수 없는 예수교회〉를 통해 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해 놓았다. 2016년에 예수가 한국에 왔을 때 기자가 물었다. "예수님은 예수교 신자죠." "나 예수교 신자 아니야." "나는 이 땅에 따뜻한(정의) 평화를 위해 사는 사람이야" 정의와 평화는 분리될 수 없다. 정의는 평화의 몸이고, 평화는 정의의 혼이다. 예수님이 태어났던 곳은 평화의 시대가 아니었다. 핍박과 비극, 착취, 억압이 만연했던 예루살렘이었다. 병원이나 호텔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마구간에서 탄생했다. 목동들이 양을 치고 있을 때, 천사가 나타나서, 예수의 탄생을 알린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이 메시지는 간결하면서도 은총이 있다. 예수님은 하늘의 영광을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땅의 평화를 위해서 오신 것이다. 땅의 평화가 없으면, 하늘의 영광이 없다는 의미다. 땅의 평화를 가르치지 않는 종교는 하늘의 영광을 말할 자격이 없다. 그런데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땅의 평화를 작살되는 권력자들을 기쁘게 해 주고, 이들에 봉사함으로써 땅의 평화를 깼다. 결국 하늘의 영광을 깼다고 보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한국 크리스찬 아니요. 나는 예수일 뿐이오. 평화의 왕으로, 섬기러 비우려 왔소." 하나님이 육신의 몸으로 왔다는 말씀은 기독교의 귀중한 진리다. 진리의 메시지의 핵심은 평화다. 예수님의 30세 생은 비움의 삶이었다.(Kenosis) 자기 비움, 자기 부정 나를 비워서 남을 위한 삶을 살았다. 드라마틱하게 십자가에 못에 박힐 때도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용서함으로써 처형을 집행하는 구조악을 활성화 시킨 것이 아니고, 그 구조를 무릎 끓게 한 것이다."

- 예수의 비움에서 불교와 만나지는 지점이 있을 듯하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로마형법에 의해 처형당했다는 것이다. 처형을 집행하는 직책이 백부장이라고 하는데, 예수의 사형 집행 과정을 정확히 지켜봤다. 한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에 백부장은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왜 놀라는가 하면 어떻게 이렇게 우아하게 죽을 수 있는가. 저주와 분노가 나와야 하는데, 그 고통스런 순간에도 '하나님, 자기들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모릅니다. 모르니까 용서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한 것이다. 로마의 중대장은 평생 동안, 어릴 적부터 황제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메시아이고 주님이고 왕이다고 배웠다. 하나님의 자체인 황제의 영을 어긴 30대 중반의 젊은이가 원수를 용서하며 죽어가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은 것이다. 그 중대장이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다고 확신했다. 로마의 권력을 대신해서 사형을 집행했던 중대장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일 뿐 아니라 의인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예수가 게릴라를 조직해 로마와 싸웠다면, 이런 용서가 나오지 않는다. 비움의 극치라고 본다. 증오심도 버린 것이다. 악의 방식으로 악을 궤멸시키려는 그 마음을 버렸다. 여기에서 불교와 기독교가 만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비움의 철저한 실천이 감동을 주고 있다. 부활의 예수사건과 연관이 있다."

- 그럼에도 기독교인들의 오만과 독선이 사회적 문제다.
"타종교와 관계에서, 기독교는 굉장히 독선적이다.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에게로 갈 수 없다고 말한다. 한국 기독교인들이 이 말씀을 제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예수님은 죽을 때 '그 비움'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평화라고 했다. 하지만 이 말씀을 다른 종교를 배타적으로 제거하고 억압하고 하는 구실로 쓰고 있다. 내 종교가 유일한 진리요, 생명이요, 길이라고 말하는 순간, 예수님의 참 뜻은 없다고 본다. 감동적인 비움에서 진리를 육화하는 것이다. 성육신(Incarnation)은 십자가의 죽음에서 실천되고, 그 죽음의 힘으로 부활해 기적을 만들었다."

- 종교 다원주의를 존중하는가.
"종교 다원주의는 존경을 하지만 종교 혼합주의는 반대한다. 최태민이 전형적인 종교 혼합주의다. 각 종교의 마력적인 요소만 뽑아서 자기의 영달을 위해 사용했다. 다원주의는 이웃종교를 존경하고, 평화를 만들려고 한다. 최태민의 주술적 샤머니즘이 박근혜의 불행을 만들었다고 본다. 박근혜 대통령은 종교혼합주의에 휩쓸려 악한 일을 하고도 악한 것을 모른다. 주술에 의한 국정농단, 국기문란이 가슴 아프다."

- 원불교는 어떤 느낌인가.
"많은 것은 모르지만 사회 속에서, 역사 현장 속에서 자비와 은혜를 실천하는 종교로 알고 있다. 비움의 자비를 가르치는 현대화된 불교라는 느낌이 든다. 원불교의 원은 하나됨을 상징하는 것 같다. 종교의 지향점은 자발적으로 나를 비워서 모두가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원불교의 자랑은 토착적이고 성숙한 한국 불교라는 것이다. 촛불집회가 세계를 감동시키듯 원불교도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종교로 시대와 호흡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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