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당설립 반백년 우담화로 피어나다

▲ 창원교당 50주년 기념법회에 그동안 교당과 인연있는 사람들을 초청해 오랜 법정을 나눴다. 이날 무아봉공으로 헌신한 교도들에게 공로상, 창립유공인상을 수여했다.
창원교당이 창립 50주년을 맞이했다. 당시 창원에서는 원불교를 아는 사람이 드물고 형편도 넉넉하지 못해 교도 집을 떠돌다, 원기51년에 처음으로 초가를 마련하고 봉불식을 했던 교당이다. 그 시절을 추억하며 고마운 스승과 동지들을 초청해 기념 법회를 마련했다는 소식에 창원으로 향했다.

창원시 의창구 남산로 21, 대지 618㎡, 연면적 1,705㎡의 집합 건물로 지하1층, 지상 4층 중에 3,4층이 교당이다. 1,2층에는 BNK 경남은행을 비롯해 마트, 식당, 사무실 등이 들어서 있고 교당에서 임대관리하고 있다.
교당설립 반백년, 정성 담은 기념법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깨끗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교도들이 반갑게 맞이한다. 그리운 옛 동지들을 맞이하기 위한 정성은 현관에서부터 교당 곳곳에 이르기까지 아름답고 화려하게 꾸며진 장식물들에서 오롯이 드러났다. 오랫동안 정성스럽게 가꾸어 온 다육식물과 과하지 않으면서 아기자기하게 늘어뜨린 천장 장식물, 무엇보다도 한 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몇십 년 전의 빛바랜 흑백 사진들이 손님을 맞이하는 교도들의 마음을 짐작하게 했다.

교당 설립 반백년이라는 한 획을 그으면서 그동안 교당을 위해 무아봉공으로 헌신해온 교도들에게 그 고마움을 공로상에 담아 표시했다. 김중조, 김형신, 김달수, 황성보 교도가 창립유공인상을 받았고 서철원, 김달수, 한두성 교도가 역대 교도회장상을 이현정, 박병욱 교도는 특별공로상을 받았다. 역대 교무들 중에는 초대 장명신, 3대 문국선, 6대 최성양, 11대 한법인 교무가 참석해 온 교당 안이 반가움과 기쁨의 탄성으로 왁자지껄했다.

최성양 교무는 회고담에서 "현재의 번듯한 교당 건물을 들어서니 예전 고생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생활관에서 잘 때, 천장에서 쌀벌레가 얼굴 위로 뚝뚝 떨어졌다. 천장을 열어보니 박쥐 사체가 그득했다. 그리고 좁은 방 한 칸에서 유치원, 어린이, 학생, 청년, 부부 법회를 번갈아 가면서 다했다. 커튼으로 기린반, 사슴반 등으로 방을 나눠 오전에 유치원을 마치고 재빨리 청소를 한 후 오후2시에 학생 법회를 봤다"며 열악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는 "그래도 그때가 참 행복했다. 물질로는 어려웠어도 어디에도 견줄 수 없는 교도들의 끈끈한 법정이 있었다. 내 인생의 최고 전성기는 창원교당이었다"고 말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김진현 교도는 축시 '창원교당에 오면'에서 "맞잡는 손길마다 경계 허물고/마주하는 눈길에는 일원의 향기/원그리며 피운향불 진리자리 감싸는/창원교당에 오면/하늘꽈리 닮은 눈들이 산다, 마음들이 산다"고 노래했다.

따뜻하고 반갑고 정이 묻어나는 한바탕 만남의 장은 삼삼오오 모여 손잡고 웃으며 한참 동안 사진을 찍은 후에야 끝이 났다. 손님들이 떠난 후, 20여 명의 교도들이 익숙한 솜씨로 재빨리 교당을 정돈하는 모습은 누구 한 명 지시하는 사람이 없어도 일사불란하게 진행됐다. 100여 명이 왁자지껄 기쁜 잔치를 끝낸 곳이라고는 믿어지지 않게 원래의 경건한 법당으로 돌려놨다. 초대 손님을 맡은 팀, 전체 행사 경비를 마련하고 지출하는 회계 팀, 행사장을 장식하고 인쇄물을 만드는 현장 준비 팀, 기념품을 제작하고 배부하는 기념품 팀, 평소 재능을 멋진 공연으로 기부한 공연 팀 등 반백년 행사를 전체 교도가 각자 업무를 맡아 했듯이 뒤처리도 내 집 청소하듯이 알뜰살뜰 정성을 쏟는 모습에서 창원교당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 창원교당에 봉직했던 역대 교무들(왼쪽부터 장명신·문국선·최성양·한법인·신은보 교무).
15명 학생법회에서 시작된 50년

창원교당의 역사를 들려줄 교도들이 한 곳에 모여 둘러앉으니 저마다 옛 시절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어갔다.

원기51년에 장명신 초대 교무가 부임하여 초가에서 첫 법회를 봤을 때는 15명의 학생 교도로 시작됐다. 그 학생교도들이 60대로 성장해 현재 창원교당에서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후 서상동으로 이전, 다시 현재의 팔용동에 번듯한 교당을 마련하기까지 50년의 역사는 책을 써도 모자랄 만큼 교화에 대한 열정과 끈끈한 법동지와 수없는 천일기도로 일구어온 오롯한 신심이 자리잡고 있다.

장현숙 교도는 "그 당시에는 부엌도 없었고 비가 오면 방문 앞에까지 비가 들이치는 곳에 교무님이 살았다"며 "주변에 원불교 다니는 사람도 없고 해서 유지비 드리는 것도 몰랐다. 우리들은 철모르는 학생이어서 교당이 아지트였고 행복했지만 교무님들은 고생 참 많이 하셨다"고 말했다.

교도들 경제 사정은 다들 넉넉지 못해 교당 신축기금 마련을 위해 일심으로 올렸던 여러 차례의 천일기도 정성은 모든 교도가 한 마음이었다. 각자 형편에 따라 적금을 붓기도 하고 유치원을 운영할 때, 교사, 차량 운전 등을 몇 년씩 맡아하면서 월급 한 푼 받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3~4년간 진행됐던 군인 법회를 위해서는 부부회가 결성됐다. 남편들은 근처에 있는 육군 39사단 예하부대로 가서 군인들을 태워오고, 아내들은 군인을 위한 특식을 준비했다. 이렇게 거쳐 간 군인이 180여 명이고 전역 후, 고향에 돌아가 원불교를 찾아 입교했다는 연락이 오면 이제 교화의 씨앗을 뿌렸구나 하고 감사했다.

4대 강주환 교무의 원력으로 교당 내에서 비슷한 시기에 다섯 부부가 탄생한 일화는 유명하다. 한 사람이라도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는 것은 손실이라고 교도를 아끼고 아꼈던 교무의 애정이 천지은에 닿았던지 다섯 청년이 교당 내에서 신부를 찾아 부부연을 맺었다. 다섯 부부는 현재 교당에서 각자 한 몫을 단단히 함으로써 강주환 교무의 정성에 보은하고 있다.

다섯 부부 중의 한 사람인 강세인 교도는 "'은혜 확산 운동'이 공모에 당선돼 총부에서 기금을 지원받았다. 구석지고 으슥한 곳에 너도나도 갖다놓은 쓰레기로 골치를 앓고 있는 곳을 찾아 깨끗이 청소하고 꽃을 심어 가꾸면서 '자연사랑 내가먼저 원불교 창원교당'이라는 팻말을 꽂았다"며 "골목, 산 중턱, 하천 할 것 없이 지저분한 쓰레기장이 돼버린 곳을 찾아 군데군데 꽃밭을 가꿨더니 시민들이 원불교에 대해서 칭찬이 자자했다"고 전했다.

이후에도 20년째 이어오는 의창노인무료급식소 급식 봉사활동, 인근 중·고등학교 동아리활동 운영, 정기적인 하천 청소, 장학 사업 등 은혜를 심을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왔다.

50주년 맞아 우담화로 피어나길

서철원 교도회장은 "앞으로 임대 시설을 정비해 문화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다"며 "근처에 아파트가 밀집돼 있어 문화취미교실 등을 통한 교화에 노력할 예정이고, 중고교 교사로 재직 중인 교도를 중심으로 학생 교화에도 전력할 예정이다"고 계획을 밝혔다.

창원교당 이시은 교무는 "해원 상생 화합의 50주년 행사를 마치고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딛는다. 창원교당이 한마음으로 가는 작업에 힘을 모으겠다"고 힘줘 말했다.

다시 김진현 교도의 시다. "오십 년을 연명하면서/견디기엔 힘겹고, 지나치기엔 억울하고, 잊기엔 아쉬운 상처들이/아물지 않았나 봅니다/…단아한 품새로 물질을 다독이면 비로소 들리는 개벽의 함성/버리고 또버리고/비우고 또 비워야 얻어지는 일원의 진리/오십년을 맞는 창원교당에서 우담화로 피어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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