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도 직원도 다 자식 같죠"

벽돌공장 30년 세월, 힘든 경계를 당해 급작스럽게 시작한 사업이지만 그는 벽돌로 인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벽돌을 발판 삼아 지금은 레미콘 사업까지 확장시킨 그. 전국 500여 개 벽돌공장 중에 영광지역을 대표하는 (주)군서씨엔씨 조정숙(70·법명 정길) 사장. 그는 영광교당 부회장이기도 하다.

"회사를 인수하고 초반에는 시련도 많았어요. 그때 종교생활을 좀 했으면 좋았을 텐데 외떨어져 마음고생이 심었죠. 원불교를 만난 뒤로는 매일 기도해요. 별 탈 없이 하루를 보낼 수 있게 해달라고요. 그러면 마음도 편안하고 일도 잘되더라고요."

30년 전, 잘나가던 금성사(구 LG전자)를 정리하고 하루아침에 벽돌공장을 운영하려니 그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지금이야 자동화기계시스템으로 운영되지만 인수 당시에는 손으로 벽돌을 찍어내야 했다. 차츰 기계화되면서 그의 걱정은 더 늘어갔다. 기계를 다루다 보니 사고 위험으로부터 한시도 마음을 놓을 새가 없었던 것.

"한번은 직원이 기계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 버린 사고가 있었어요. 위험천만했죠. 비명소리에 달려와 보니 놀랍게도 아무런 외상도 없이 빠져나오는 거예요. 눈 뜨고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신기했어요. 그때 사은님이 보호하고 있음을 알았죠."

사업이 커질수록 그의 기도는 깊어졌다. 무거운 벽돌을 다루는 일이라 힘 센 장정들을 데리고 일을 하게 되고, 찾다 보면 외국인 노동자들을 많이 채용하게 된다는 그. 아침에 일어나면 두 손이 절로 모아지는 이유는 공사판이나 다름없는 현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다치지 않고 하루를 잘 마무리할 수 있게 돕는 것이 그의 가장 큰 책임인 탓이다.

"함께 일하는 동안에는 모두 제 식구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레미콘 회사까지 규모가 커져서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제공하지만 초기에는 매일 15인분을 제 손으로 만들었어요."

그뿐인가. 혹여 기계나 차량·인명 사고가 나더라도 모든 책임은 그에게 돌렸다. 그렇게 크게 안아 버려야 오래 함께할 식구가 되기 때문이다. 벽돌도 자기 자식 같다던 그, 그런 어머니의 마음이 제품에 대한 신뢰도를 차곡차곡 쌓아올 수 있는 힘이 됐다. 사업을 하다 보면 이익을 좇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 하지만 주야로 벽돌을 찍어내도 주문량을 다 채울 수 없었던 시절에도 그는 안전과 품질을 최우선으로 했다.

"우리 공장에서 나온 제품들은 모두 KS인증을 받았어요. 지금은 조립식, 이태리식으로 건축형태가 바뀌어 벽돌의 쓰임이 줄었지만, 예전에는 집의 골조를 거의 벽돌로 다질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죠. 아파트나 대형건축물에 쓰이는 것도 좋지만 축사나 작은 담벼락에 놓여도 자부심이 컸어요."

그렇게 꾸준히 신뢰를 쌓아온 덕에 최근에는 (주)군서씨엔씨 벽돌이 영광 국제마음훈련원 건축에 중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친환경건축물로 이미지를 구축한 국제마음훈련원은 벽돌과 콘크리트를 노출시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건축에 담아냈다. 훈련원이 완공되고 한참 뒤에야 그곳을 방문했던 그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 왼쪽부터 남편 김길성, 김정심 전 영광교구장, 조정길, 아들 김상덕.
"저희 벽돌이 그렇게 아름답게 디자인 될 줄은 몰랐어요"라는 게 그의 소감이다. 하나하나 곱게 쌓아놓은 벽돌의 모양이 은은한 조명을 받아 자연 그대로의 빛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 게다가 훈련원 건물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벽의 콘크리트도 그의 남편(김길성)과 아들(김상덕)이 운영하고 있는 (주)대양레미콘 제품이다. 낙찰부터 친환경디자인으로 설계돼 완공하기까지 그 자부심과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기운을 받아서인지 지난해 건립을 시작한 칠산대교(무안군 해제면~영광군 염산면 잇는 다리) 건축 현장에도 (주)대양레미콘 제품이 단독 낙찰되는 영광을 안았다. 국토관리청으로부터 모든 심사에서 제일 신뢰할 수 있는 기업으로 평가받은 것이다. 칠산대교는 시공사의 잘못으로 한차례 어려움은 겪었지만 현재 안전하게 건립 중이다.

"남편은 한국콘크리트공업협동조합연합회장을 20년간 해온 저의 든든한 울타리예요. 특히 기도하는 저를 늘 응원해주죠."

그 배경에는 시어머니의 생전 깊은 신앙심이 뒷받침했다. 그가 3년간 모셨던 시어머니는 기도생활과 함께 흰콩과 검은콩을 담은 주머니를 늘 넣고 다니며 유무념 공부를 해왔던 영광교당 은현명화 교도다. 남편은 "영광교당에 종각을 지을 때(현재 철거상태) 어머니가 '종각의 척추'인 철근을 대라고 말씀하셨어요. 살림이 넉넉하지 못한 때였는데 그 말씀을 받든 것이 가장 큰 효도였더라고요" 하고 회고했다.

그런 시어머니의 불심을 이어 법문사경과 기도로 적공해왔던 며느리 조정길 교도. 이제 남편도 그를 따라 신앙을 이어가겠다며 새해 다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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