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나무 애호가인 저에게 귀한 지면을 주면서 나무이야기를 써 달라는 과분한 부탁을 받고 어떤 글로 시작할까 고민하다가, 대종사의 말씀으로 시작하기로 합니다.

나무를 향한 대종사의 뜻이 가장 여실히 드러나는 말씀은 불지품20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교외 남중리를 산책하시다가 조송광 선진이 멋진 소나무들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교당에 옮겨놓고 싶다고 하는 말을들으시고, 대종사는 "그대는 어찌 좁은 생각과 작은 자리를 뛰어나지 못하였는가. 교당이 이 노송을 떠나지 아니하고 이 노송이 교당을 떠나지 아니하여 노송과 교당이 모두 우리 울안에 있거늘 기어이 옮겨놓고 보아야만 할 것이 무엇이리요. 그것은 그대가 아직 차별과 간격을 초월하여 큰 우주의 본가를 발견하지 못한 연고니라"고 하셨습니다. 자연에 어우러진 멋진 소나무를 있는 그대로 내 것처럼 사랑하신 대종사의 넉넉하고 허허로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닮아가려는 것이 저의 나무 사랑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으니까요.

위의 대종사의 예화에서도 언급되었고 지금이 한겨울인 점을 감안해서 저의 첫 번째 나무 이야기는 겨울 상록수의 대명사 소나무를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소나무는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나무가 아닐까 싶습니다. 산과 들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어떤 공원에든 가장 멋진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대부분의 아파트단지 나아가 많은 공공기관의 정원에도 심어져 있으며 조금 갖춘 단독 주택 안에도 심어져 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 모두가 그렇게 좋아하는 소나무를 얼마나 자세히 관찰해 보셨는지요. 그냥 멋지게 휘어지고 드리워진 모습만 즐기느라 소나무가 가진 특징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계시지는 않는지요?

조금 아시는 분들이라면 육지에서 만나는 적송, 바닷가에서 자주 만나는 흑송을 구분하고, 키가 큰 장송, 키 작은 반송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줄기가 희다는 귀한 백송까지 구분하는 것에 만족하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기술적으로 들어가면 한 대궁이에서 나오는 솔잎이 두 개씩이면 소나무, 다섯 개씩이면 잣나무 그리고 세 개씩이면 리기다소나무라는 것을 알면 더욱 뿌듯하시겠지요.

세종시 호수공원 소나무 위로 떠오른 해돋이 사진.

그렇지만 저는 한 걸음 더 나가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나무들을 조금씩 더 관찰해 보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특징들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소나무와 잣나무가 어떻게 더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봅시다. 소나무 솔방울은 모두 동그란 편인데 잣나무 솔방울은 조금 길쭉하지요. 전통 잣나무처럼 우람한 솔방울도 스트로브잣나무의 가느다란 솔방울도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광대 교정에 있는 키 작은 섬잣나무도 크고 길쭉한 열매를 달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등걸이 갈라지는 모양이 다릅니다. 소나무 등걸 모양은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이라는 애국가 구절 속에 잘 나타나듯이 거북등걸처럼 넓고 깊게 갈라집니다. 잣나무는 생선 비늘이 벗겨지듯이 갈라지거나 드문드문 가늘게 균열이 가는 정도이지요. 나무 전체 실루엣을 보면, 소나무는 자라면서 아래 가지를 떨어뜨려 버리고 꼭대기에만 가지와 나뭇잎을 유지하는데 잣나무는 상당히 커서도 아래 가지를 유지합니다. 그래서 제법 멀리서도 저는 이 두 나무를 구분해 내기도 합니다.

이런 차이들을 발견하고 나면 그 나무들에 대한 사랑도 커지고 다른 궁금증도 더 커집니다. 왜 같은 소나무인데 적송의 등걸은 붉은 빛을 띠게 될까, 우리나라의 전통 소나무가 그렇게 멋진데 왜 품위가 떨어지는 리기다소나무를 많이 심었을까, 그리고 왜 서양에서는 소나무와 잣나무를 모두 파인트리라고 통일해 부르는데 우리는 이들을 구분할까 등의 의문들 말입니다. 모두들 한번 생각해 보시지요.

정초이고 하니까 제가 작년 3월 세종시에서 근무하면서 아침 산책을 하다가 찍은 세종시 호수공원의 해돋이 사진 속의 멋진 몇 그루 소나무들을 보여드립니다.

/화정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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