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층 고층아파트에 사는 교도 가정은 항온성으로 인해 여름은 시원하고 한겨울에도 거의 난방을 않고 지낸다. 봄꽃이 사계절 연달아 피니 여기가 천상이로구나 싶었다. 높이 오를수록 천상이라 할수 있을까, 천상은 어디쯤에 있고 어떻게 생겼을까, 죽어서 가는 곳일까, 살아서도 갈수 있을까?

지상, 지하, 천상계를 크게 33개로 설정한 과거 인도인들의 사유는 참 어마어마하다. 인간·축생의 세계야 알겠는데 그 나머지는 불가사량이다. 인간, 축생, 아귀, 수라, 지옥이라는 5개의 지상과 지하계에다 28개의 천상계를 더해 33천이 있다고도 하고, 수미산을 중심으로 수직 33천, 도리천을 중심으로 수평 33천이 있다고도 하는데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

33천의 보다 더한 세부 도표를 보고 있노라면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허나 안다 한들 뭐하겠는가. 어차피 안다고 갈수 있는 곳도 아니니 말이다. 비행기를 타고도 갈수가 없고, 우주선을 탄다고 갈 수도 없고, 그 무슨 수단으로도 갈 길이 없다.

실력있는 공부인 있는 바로 그곳이 천상계이니, 부질없는 공상으로 힘빼지 말고 어서 마음 실력이나 갖추라는 대종사의 말씀이다. 실력있는 공부인이 되는 필수적인 첫 관문은 견성이다. 모든 하늘은 견성으로부터 열려가는 것이니 우선 견성부터 하고 볼일이다.

아직 글자도 못 깨친 어린아이가 글 깨칠 생각은 않고 공연히 박사를 어찌할까 걱정하고 논하는 격이라고나 할까. 먼저 글이나 깨칠 일이지. 초등 과정부터 단계별로 진급하다보면 저절로 도달할 것을. 견성후 성불의 과정에 천상계는 비로소 보여지고 열려지는 것이지, 언어와 사량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도 가늠할 수도 없는 세계다.

키가 유난히 큰 사람한테 우스갯소리로 그곳 공기는 좀 어떠냐 묻곤 한다. 대부분 크고 높은 것에 대한 선망이 있긴 하다지만, 천상으로 갈수록 키가 크다 하니 작은 것도 서러운데 어쩌란 말씀인가. 마음실력과 키높이, 의복의 가벼움은 비례하는 동의어다. 도력이 높으면 정신이 맑고 가벼워 걸림없는 천상계를 맛볼 수 있다.

요즘 겨울용 다운점퍼들은 거짓말 좀 보태 종이 한 장 든 것처럼 가볍다. 옷이건 신발이건 노트북이건 보다 가벼우면서 최고의 성능을 내는 초경량 고성능이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화두다. 공부인의 화두도 같다. 초경량 마음은 고성능과 직결된다.

행복과 불행의 결정적 요인이 마음 무게다. 마음속 불필요한 것들을 빨리 비우는 사람이 초경량의 마음으로 최고성능을 내게 된다. 걱정, 섭섭, 미움, 질투, 불안, 자만, 자책 등이 마음을 구속하고 무겁게 하여 능력을 저하시킨다. 마음에 힘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심각한 일도 가볍게 처리할 능력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작고 하찮은 말이나 일들도 크고 무겁게 만들어 주위 사람과 자신을 다치게 하고 구속한다.

마음은 본래 허공처럼 텅 비어있으니, 원래 그대로 비워두면 모든 능력이 나옴과 동시 덤으로 평화가 주어진다. 무엇이나 가볍게 처리하는 신기술로 노상 본성에서 노닐수 있다면 그가 곧 마음실력이 탁월한 천인이다. 천인들이 산다는 천상계 그곳, 죽어서 갈일이 아니라 살면서 누릴 일이다.

/송도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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