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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갤러리 12 -광주 비움 박물관
작은갤러리 12 -광주 비움 박물관
  • 이여원 기자
  • 승인 2017.01.13
  • 호수 18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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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흘린 민초들의 정직한 삶의 모습들'
▲ 비움박물관 1층은 인문학 강의 등 모임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사방이 전시관으로, 주로 짚이나 나무로 만든 생활도구와 민예품들이 수천 점이다.
▲ 비움박물관 이영화 관장.
마당·부엌·대청·안방·사랑방·장례 문화 총망라한 민속품 2만여 점, 40여 년간 모아 전시
정직한 삶의 모습 담고 있는 옛 것들, 우리 문화의 근본이 되어 살아났으면 하는 바람


'애초부터 작가의식이 있었던 것도, 역사의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선조들의 삶을 배운 대로 설치하려 했으나 많이 부족하군요. 못난 놈이나 잘난 놈이나 꼭 줄 서야 한다고 아우성이기에 앞서거니뒤서거니 두서없이 세웠습니다. 땀 흘린 민초들의 정직한 삶의 모습들을 두루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비움박물관 이영화 관장이 자신의 마음을 '쑥쓰러움'으로 대변한 글이다.

비어있는 아름다움, '비움'박물관

광주광역시 대의동 비움박물관. 비어있는 아름다움이란 뜻의 비움박물관에는 풀뿌리 농민들과 서민들이 실제로 사용했던 물품 2만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땀 흘린 민초들의 정직한 삶의 모습들'을 담고 있는, 수 만 가지의 우리네 살림살이들. 버림받고 사라지는 옛 것들이, 한 여인의 손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어 다시 되살아난 것이다.

한 여인, 비움박물관 이영화 관장. 화장기 없는 그의 얼굴은, 올해 일흔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꾸밈없이 아름답다. 꾸미지 않아서 아름다운, 진정한 아름다움을 일깨우는 그다.

1970년 무렵, 그는 전북 순창 산골에서 광주로 유학을 왔다. 결혼 후 잠시 시댁인 전남 곡성에 머물렀는데 '버려지는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수집품 1호는 시증조할아버지가 사용했던 서류함과 담배함, 안경집, 일제강점기에 만든 봉초였다. 박물관 2층 '선비' 공간에 전시된 물건들이 그때 모은 것들이다.

그 시절 농촌 사람들의 마음은 자꾸만 도시로 향했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됐고 초가집들이 허물어졌다. 그리고 기계가 들어왔다. 속도에 내몰린 사람들은 '쓸모없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가차 없이 내다버렸다. 농촌의 급속한 기계화를 보면서 그는 "사람들이 다시는 이 물건들을 만들지 않겠구나. 이렇게 아무 보답 없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의 집에 차곡차곡 '쓸모없다'고 버려지는 물건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비움박물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전시품이 있다. 어른 키만 한 독은 주둥이에 판자를 얹고 볼일을 보던 '똥항아리'다. 옆에는 똥을 퍼 날랐던 '똥장군'이 지게 위에 올려져 있다. 그는 "농경시대 화장실 문화인 '똥항아리'는 과학적이었던 우리 선조들의 삶이 응축된 물건이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밥 먹고 싼 똥을 '똥항아리'에 모아 뒀다가 베어온 꼴 등에 뿌려 두엄을 만들어 농작물을 키우고, 다시 그것을 먹고 똥을 싸는 것은 '지구에 해악을 끼치지 않는 생명문화'라는 것이다.
▲ 4층은 봄의 공간으로 여성이 사용했던 물건들이 전시돼 있다. 일일이 수를 놓은 베개자수는 그대로가 한 폭의 '민화'다. 천장 선반 밑 서까래처럼 설치돼 있는 베개자수 또한 '단청'을 보는 듯 하다.

세월의 장터에 담긴 사계절

똥항아리 전시를 시작으로 박물관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는 '세월의 장터'다. 1층부터 4층까지는 사계절을 테마로 구성했다. 박물관은 5층 옥상부터 1층까지 이어진 계단을 통해 가운데가 비어있는 구조. 무등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5층 옥상에는 장독대가 펼쳐져 있다. 여기서부터 차분히 내려오면서 사계절을 관람하면 된다.

4층 '봄'은 주로 여성이 사용하던 물건들이다. 목단 무늬가 들어가 있는 '목단단지',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떡살, 실을 잣던 물레, 물동이 등을 볼 수 있다. 일일이 수를 놓아 잠자리를 풍요롭게 했던 베개자수들은 그대로가 한 폭의 '민화'다. 천장 선반 밑 서까래처럼 설치돼 있는 베개자수 또한 '단청'을 보는 듯 아름다움의 극치다.

3층은 '여름'의 공간이다. 땀 흘려 농사짓는 계절, 농사의 숭고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나무 곡괭이, 부채, 술병 등 뙤약볕 아래 농군들의 땀내 나는 물건들이 있다. 농부들의 힘의 원천이었던 '고봉밥'을 담아냈을 막사발들을 대하면 저절로 숙연해진다.

2층 '가을'은 수확에 필요한 농기구부터 곡식을 보관하던 항아리, 소쿠리, 바가지들이 먼저 보인다. 종이로 빚은 항아리부터 깨진 것을 다시 꿰맨 헌 바가지에 이르기까지 쓰임새는 같아도 어딘가 모양이 다르고, 크기가 다르다. 가마솥이 걸려 있는 부뚜막과 살강이 있는 정제도 야무진 이관장의 손끝을 가늠하게 한다. 선비들의 공간도 있어 소박하고 정감 있는 책상과 문방구들을 볼 수 있다.

1층은 한겨울 농한기에 사람들이 둘러앉았던 사랑방이다. 전시를 둘러본 이들이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자 모임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50여명이 앉을 수 있는 이곳은 시 낭송회, 세미나, 인문학 강의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사랑방을 중심으로 사방이 전시관이다. 주로 짚이나 나무로 만든 생활도구와 민예품들이 수천 점이다. 전시관 곳곳, 이 관장이 전시물들에 대한 생각을 담아 직접 쓴 시들도 보는 이의 마음을 이끈다.

40여 년 동안, 시간 켜켜이 모아온 '버려진 것들', 그것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데만 6년, 또 그 '버려진 것들'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줄 세워' 보여줄 공간을 짓는 데만 2년, 그렇게 이 관장의 반평생을 공들여 자리한 비움박물관.

"숙명처럼 아직 살아남은 우리 민속품들을 주워 모아 닦고 또 닦아주면서 아름다움의 자유는 계량을 초월한다는 걸 가만히 깨달았습니다. 부디 우리문화의 근본이 되어 살아났으면 합니다." 그가 나직이 들려주는 목소리, 깊고 깊은 울림이 된다.  

▲ 가을 수확에 필요한 농기구부터 곡식을 보관하던 항아리, 소쿠리, 바가지 등 각종 물건들.
▲ 장례문화를 보여주는 물건들 위로 제 쓰임을 다하고 닳고 닳아 둥글해진 주걱들이 매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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