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서 저술로 읽는 교사〉

▲ 〈원불교성가집〉 1의 표지와 속지.
시가(詩歌)는 삶의 품격이요 여운(餘韻)이다. 정산종사는 "풍류로 세상을 건지리라. 성가 속에 진리가 담겨 있으니 그 가사를 새기며 경건히 부르라"(〈정산종사법어〉유촉편17)고 했다. 원불교 시가의 극점에 성가가 위치함을 드러낸다.

그러면 원불교의 시가의 원류를 무엇이며, 그것이 성가로 탄생된 과정은 어떠한가? 말할 나위없이 그 원류는 교조 소태산 대종사 대각(大覺開敎, 1916)과 관련한 법문, 그 흥취를 담은 〈법의대전〉(1917)이나 〈회성곡〉(1920) 등이다. 원기9년(1924) 익산총부를 건설하여 공동생활을 시작하고 창간한 기관지 〈월말통신〉(1928)이 문예의 성격을 띠고, 일본제국의 교단해체 움직임에 대응하여 발행한 〈회원수지〉(1936)에는 '불법연구회 회가'(성가 120장)가 실린다.

마침내 원기49년(1964)을 전후하여 성가제작에 교단적인 역량을 기울이며, 그 중심에 이공전(凡山 李空田, 1927-2013) 종사가 있어 이를 주도한다. 그리하여 이루어진 첫 작품이 〈원불교성가집(圓佛敎聖歌集)〉제1집으로, 신국판 100쪽의 석판인쇄본이다. 원불교 중앙총부 간행이라 적혀 있고 판권사항은 나타나지 않지만, 정황으로 보면 중앙총부 편, 원광사 발행으로 추정된다. 이를 〈교단연표제정 기초조사자료집〉(2009)에서는 원기38년(1954) 발행으로 정리하고 있지만, '정산종사조가'(1962)와 현 성가곡 '오대양 육대주를(해외포교환송가)'이 원기48년(1963) 11월 박광전(崇山 朴光田, 1915-1986)종사 일행의 '세계불교도대표 파견환송가'로 지어졌던 점이 이를 증명한다.

이 〈성가집〉은 '교가'를 비롯해 40곡과 '중앙선원가' 등 부록 9곡을 담았다. 먼저 악보를 싣고 말미에 가사를 모아서 실었다. 악보는 한글이며, 가사는 국한문 혼용으로 가사내용의 전달을 쉽게 했다. 전체적인 성격을 보면 '법신불찬송가, 석존찬송가, 대종사찬송가, 종법사찬송가, 산회가, 결제가' 등 의식에 쓰이는 곡이 주를 이룬다.

교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각종 제도가 정비되면서 이에 따른 의식에 성가를 포함하게 됐고, 이를 위해 우선적인 성가를 마련했음이 드러난다. 이를 바탕으로 오늘날의 다양한 성가가 마련돼 재가출가 교도들의 풍류를 북돋고 있다. 되돌아보니 50년이 훌쩍 지난 학생회 때 법회에서 사용하기 위해 밤새워 G펜으로 전지를 채워넣던 고운 추억의 책장이다.

<원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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