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서 저술로 읽는 교사〉

▲ 〈종교계〉 의 표지와 속지.
원기50년(1965)대를 전후한 교단은 사회적 위상의 제고에 명운을 건다. 원기47년(1962) 종법사에 취임한 대산종사는 당해년에 〈원불교교전〉(〈정전〉·〈대종경〉)의 결집을 시작으로 9종 교서를 속속 탄생시킨다. 개교반백년 기념사업회(원기49년)를 발족시키고, 교단의 제도와 교리의 체계화를 이루면서 교세의 확장을 도모하게 된다. 학생회와 청년회 활동이 활발해지고, 원광대학교에서 대학생종교제(1966)가 열려 '종교간 이해의 모임'이 활성화 됐으니, 교단이 종교계에 참여한 모습이 그려진다.

사회적으로는 원기46년(1961) 5.16 군사구테타 이후 제5공화국의 강력한 통치체제가 이루어지면서 '조국근대화'가 사회적인 이념이 되었던 시대다. 도시화가 가속화 되면서 각종 문화운동이 강화되는 가운데, 교단에서 종교문화계를 대상으로 창간한 잡지가 〈종교계(宗敎界)〉이다. 원기50년 2월에 창간호를 내고 9월까지 이어졌다. 서울사무소 소장인 이운권(高山 李雲捲, 1914-1990) 종사가 발행인, 사무국장이었던 이은석(閑山李恩錫, 1925-1982) 교무가 주간을 맡아 주도하였다. 그러나 의욕있게 발행했던 해에 폐간이 되었으니, 커다란 계획에 비하여 면밀한 대책을 갖추지 못했던 것으로, 반성이 뒤따랐다.

표지에는 '종교인 종교이론의 공동광장'이라 붙였다. 성격은 창간호의 5대 특집에서 잘 드러난다. '대중과 종교'·'종교와 사회참여'·'종교인의 자세'·'종교인의 공동과제'·'6대종교인의 대화'가 그것이다. 종교의 사회참여, 민중에 대한 종교인의 과제, 그리고 당시 대화에 나선 가톨릭·개신교·불교·원불교·유교·천도교의 대화와 협력문제이다. 3호의 '하나의 세계로 간다'·'종교인의 사회적 책임'등이 같은 흐름이다.

이 〈종교계〉는 교단에 준 영향이 크다. 한국사회에 있어서 원불교의 정체성, 종교간의 이해와 협력운동 등이 그러하다. 이공전(凡山李空田, 1927-2013)·황온순(八陀圓黃淨信行, 1903-2004))·류병덕(如山柳基現, 1930-2007) 종사 등 교단인물의 종교계 활동이 활발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당시 6대 종교간의 대화가 오늘날 한국종교인협의회로 발전했다. 이를 지도 권면하던 대산종사의 '진리는 하나'표어(반백년기념대회)가 갖는 시대적 배경도 여기에 있다.

<원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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