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갑작스런 명예퇴직과 음주
법문사경하며 부부갈등 회복해

▲ 진귀은 교도/익산교당
원불교에 대한 첫 기억은 추운 겨울날 밤, 어머니가 교당에 기도하러 간다며 나를 데리고 간 날이다. 원기58년 나는 입교했다. 청년회 시절, 교당 주무님이 멋진 청년이라고 소개해 준 사람과 전생의 인연으로 알고 결혼해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교당에 잘 나갔지만, 아이가 생기면서 점점 나가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결국 육아와 살림 그리고 바쁘다는 핑계로 교당에 다니지 않았다. '사십대가 되면 꼭 나가리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막상 사십대가 되어도 선뜻 나가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결혼할 때는 전생에 인연이라 믿었던 남편이 '선연이 아니라 악연이었나?' 싶을 정도로 감당하기 힘든 사건이 눈앞에 다가왔다. IMF 때이다. 언론사에 다니던 남편은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권고사직을 받고 명예퇴직을 했다. 너무도 갑작스런 상황에 막막해 하고 있는데 남편은 퇴직금을 모두 주식에 투자했다. 행운은 우리에게 손 들어주지 않았다. 퇴직금은 바닥이 났고, 나라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직장 구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였다. 남편이 이곳저곳을 전전했고, 집안 사정은 점점 안 좋아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인을 위해 집을 담보로 한 빚보증이 잘못돼 법원에서 차압고지서가 날아왔다. 남편은 마음에 상실과 절망으로 평소 즐겨 마시던 술을 더 즐겨 마시게 됐다.

그때 나는 빚 독촉과 아이들 교육비, 생활비 때문에 집에서는 하숙을 하고 집 옆에 작은 가계를 얻어서 미용실을 운영하게 됐다. 한 몸으로 두 가지 일을 하다 보니 몸과 마음은 지쳐갔다. 남편과의 대화는 늘 싸움으로 이어졌고, 남편은 싸움을 핑계로 술을 더 마시는 악순환이 계속 됐다.

그때 시어머니가 열반을 하게 됐다. 남편은 49일 천도재를 지내는 동안 '어머니를 잘 못 모셨다'는 죄책감에 빠져 더욱 더 술을 즐겨마셨다. 오죽하면 내가 "당신은 어째서 365일 중에 366일을 술 마시냐?"고 할 정도였다. 남편은 매일매일 술 없이는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모습을 보며 몸도 마음도 지친 나는 결혼 초에 생각했던 '남편과는 전생의 선연이겠지!' 했던 생각은 온데 간 데 없고 원망과 갈등이 깊어졌다.

나는 시어머니의 49재를 계기로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나가지 않았던 교당에 다시 다니며 인터넷 법문사경도 시작했다. 법문사경을 할 때는 현실의 모든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나 평온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 작은 행복을 위해 좌선과 심고, 그리고 기도를 대신해 법문사경을 계속했다. 사경한 단락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내 가슴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이렇게 법문사경을 하면서 '법문 속에 내 인생의 길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 순간 암흑 같았던 세상이 환해지는 것 같은 즐거움으로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또 날이 밝아오는 줄도 모르고 밤잠을 설치며 사경했다. 그동안 해온 어떤 일보다 더 즐겁고, 기쁘고, 가슴 뿌듯한 희열을 느꼈다.

법문사경을 시작한 후로는 남편과의 의견대립이 있으면 전날 사경한 법문이 떠올라 남편에 대한 원망과 질책이 다 내 마음속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남편에게 법문사경을 권유하고 경계를 대할 때마다 돌리는 공부, 평정심을 잃었을 때는 서로 깨우쳐 주는 공부를 했다. 그러다 보니 남편과의 갈등을 빚는 횟수가 점점 줄고 부정적인 마음이 긍정적인 마음으로 돌려졌다.

또 하나는 남편의 말에는 무조건 "예"라고 대답해보자고 유무념을 정했다. 하지만 그 짧은 한마디가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왜 나만 남편의 말에 무조건 따라야 하는지 자존심이 상하고 억지 부리는 남편을 대할 때면 자괴감이 들었다. 나는 남편과의 관계를 개선하고자 함께 원음합창단에 들어가게 됐다. 합창단에서는 기존의 노래를 편곡해서 부르는데 정말 멋진 곡이 탄생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거기서 힌트를 얻었다. 그냥 "네" 할 것이 아니라 "아! 예~~!" 하고 노래하듯이 대답하기로 유무념을 정하고 실천하니 시간이 갈수록 남편도 좋아했다. 남편을 대할 때마다 긍정적인 마음이 생기면서 우리 부부의 관계는 점점 회복됐다. 내가 바뀌니 남편도 술을 끊기로 다짐하고 사경도 하고 교당도 열심히 다녔다. 인과의 이치는 호리도 틀림이 없었다. 남편은 금주에 성공했고 우리는 다시 행복을 되찾을 수 있었다.

또 하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고 받을 때, "여보세요" 대신 "사랑합니다"라고 답해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머릿속에는 떠오르는데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혹여 "사랑합니다" 하고 전화를 받으면 남편은 잘못 전화한 줄 알고 착각해 끊기도 했다. 그렇게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더니 지금은 남편이 먼저 "사랑합니다" 하고 말해준다.

남편이 법호 받는 날에는 영생을 함께 하고 싶은 당신이라는 편지글을 읽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다음 생에도 남편과 더 좋은 인연으로 만나지기 위해 오늘도 주옥같은 법문을 새긴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