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칼럼

▲ 김동명 교도/계룡교당
어려울 때 의지할 대상 있으면 행복

법동지, 교당, 원불교가 의지할 대상



몇 해 만에 신정절 새벽 타종식에 참석했다. '마음에 공들이고, 일에 공들이고, 사람에 공들이자'는 경산종법사 신년법문은 한 해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던 나에게 단순 명쾌한 답을 줬다.

아울러 '늘 행복하세요'라는 사회자의 신년 인사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국가적으로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지난해였지만, 개인적으로도 부침이 심했던 한 해를 보내며 새해 목표를 '행복'으로 정한 탓이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며 행복의 의미를 따라 가다보니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부터 행복학, 행복경제학, 행복산업 등등 행복이라는 단어는 내 주변에 차고 넘쳐 있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행복도시, 행복마을, 행복주택에 살면서 가끔은 가족 행복캠프에도 다니지만 별로 행복하지 않은 듯하다. '모든 국민이 내년에는 꽃길을 걸었으면 좋겠다'라는 유명 연예인의 수상소감이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흙길을 걸으며 불행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2012년부터 유엔에서는 2년 주기로 세계행복순위를 발표하고 있다. 1인당 GDP, 건강 기대수명 등 6가지 항목으로 평가하는 세계행복순위에서 2016년 우리나라는 58위였다. 하지만 58위라는 순위보다는 해결 방안이 각자의 몫이라는 게 더 혼란스러운 일일 것이다.

행복경제학의 창시자인 존 F. 헬리웰 교수는 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사회적 지원'이라고 말한다. 어려울 때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힘들고 어려울 때 돈도, 가족도, 친구도 아닌 국가에 의지할 수 있는 나라가 가장 보편적이고 지속가능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복지국가라는 것이다.

2016년 세계행복지수에서 1위는 덴마크지만, 국민의 97%가 스스로 행복하다고 이야기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나라는 불교나라 부탄이다. 부탄 사람들이 행복한 수많은 이유 중에 인상 깊은 내용은 정신적인 행복과 물질적인 행복을 동등하게 여긴다는 것과 자신의 삶을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는 것, 사회지도층과 일반 국민들 사이의 삶의 격차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불교라는 종교를 통해 바르게 살면 깨달음을 얻게 되고 다음 생애에 더 좋은 존재로 태어날 수 있다고 믿는 데 있다는 것이다. 부탄 사람들은 가족, 친구, 공동체, 물질과 정신의 내적 균형을 유지하는 노력을 종교의 힘을 빌어 만들어가고 있다. 나는 그것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동포은이라고 부르고 싶다.

정산종사께서 공부하는 동지라야 영겁의 동지가 된다고 했는데, 같은 공부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영겁의 동지가 될 수 있을까? 정산종사가 말씀한 공부하는 동지란 서로 소통하고 나누며, 영겁의 길을 함께하며 신뢰를 쌓아가는 연대하는 동지이다. 언제라도 내 어깨를 내어 줄 수 있고, 때론 그 어깨를 빌릴 수 있는 그런 동지여야 한다.

일주일에 한 번 법회를 보러 가는 곳이 교당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늘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교당이어야 한다. 살아가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 제일 먼저 생각나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우리 법동지이고 우리 교당이고 우리 원불교라면 모두가 행복에 한 발 더 다가가지 않을까 생각된다.

내 마음의 자유를 얻어 나만 행복한 새해라면 조금 미뤄두고 싶다. 소위 연대가 끊어진 일상에서는 문제의 진단도 해결도 결국 개인의 차원에 갇혀버릴 것이고, 그만큼 우리는 행복에서 멀어질 것이다.

'사회적 지원'이라는 의미를 종교에 대입시켜 '어려울 때 의존할 대상이 있느냐'라는 물음에 우리 원불교가 명쾌히 답할 수 있다면 교도들이 행복하고, 국가가 행복하고, 세상이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와 희망으로 원기102년을 시작하려 한다.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행복은 여정이지 목적이 아니다.

힘겨운 흙길을 걷고 있는 누군가에게 먼저 따뜻한 손 내미는 내가 된다면 멀고먼 성불의 길에서 가장 행복한 한 해를 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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