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익선 교무/원광대학교
문명의 전환기에 탄생한 원불교는 전통적으로는 결사와 청규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으며, 시대적으로는 후천개벽사상과 미륵신앙의 재발견을 발판으로 삼고, 사회적으로는 자본주의에 대한 대응과 대동사상에 입각한 공동체 운동에 참가하고 있다. 먼저 결사정신과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소리없는 혁명인 결사는 구시대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자 하는 유지지사들의 뜻이 결집된 것이다. 불교의 결사는 구제에 대한 종교적 열망, 동지적 결연의식, 일상에 빠진 삶을 재구축하는 철학을 제시하고 있다.

대표적인 불교의 결사로는 4~5세기 여산 동림사의 혜원스님이 주도한 백련사(白蓮社)가 있다. 대중들은 선정수행, 염불삼매, 정토극락을 목표로, "석가의 법이 여기에서 부흥하는 듯하였다"고 할 정도로 새벽부터 저녁까지 정진했다. 일반인들은 평상시에 세속에 살면서 특정한 날에 모여 수행 정진하였다. 소의경전은 삼매 속에서 부처를 친견할 수 있다고 설하는 <반주삼매경>이다. 열반에 가까운 동지가 생기면 곁에 모여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아미타경>을 읽었다. 현세와 내세의 구제의 연대 속에서 신앙과 수행 체험을 공유했다. 스승, 제자, 동지의 친분으로 결속하고, 유교·도교의 속인들까지 결합했던 승속결사로써 후대의 모든 결사는 이러한 백련결사를 따르고 있다.

이후 중국에서는 남조스님의 화엄경사, 준식스님의 채사, 지례스님의 염불시계회, 성상스님의 정행사 등 신행을 깊게 하는 많은 결사가 있었다. 일본에서도 10세기에 승속을 망라한 동신동행의 염불결사인 25삼매회가 있었다. 고려 때에는 타락한 불교를 개혁으로 이끈 지눌스님의 정혜결사와 요세스님의 백련결사가 있었다. 결사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종교의 시대적 역할을 선도하고, 미래의 불법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원불교 또한 이러한 동아시아의 결사 정신에서 탄생한 것이다. 나아가 사회구제를 위한 실천을 적극적으로 이끌었다. 대종사의 깨달음, 구인제자 결성, 저축조합, 방언역사, 법인기도는 결사를 위한 기초공사라고 할 수 있다. 불법연구회기성조합과 불법연구회는 결사의 현대적 이름이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문은 열려있었고, 출신과 재산, 사회적 경험과 지위를 묻지 않았다. 결사의 주제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이며, 구체적 강령은 수신의 요법, 제가의 요법, 강자약자 진화상의 요법, 지도인으로서 준비할 요법인 최초법어이다. 그 목표는 제생의세 또는 성불제중이다. 이러한 결사정신은 원불교의 정신적 요람이다.

원불교는 이제 또 다른 결사를 주도해야 될 사명을 안고 있다. 물질문명의 독주를 견제할 정신문명결사, 욕망의 자본주의를 선도할 대안자본주의결사, 분노와 폭력에 의한 전쟁을 종식시킬 평화결사, 생태계 파괴와 환경오염으로부터 지구를 구하기 위한 생명결사, 고통과 절망 속에 처한 중생을 위한 희망결사 등등. 결사의 약속이 담긴 <불법연구회규약>의 표지에는 "불리자성왈공 응용무념왈덕(不離自性曰工 應用無念曰德)"이라고 쓰여 있다. 모든 복전의 근본이 되는 불리자성의 수행 정진으로 굳건해진 삶 속에서 무한 은혜를 낳는 무념의 공덕을 베풀어 세상을 평화의 낙원으로 이끌자는 결사의 정신을 표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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