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열차와 상인회의 시너지 국내 최대 5일장, 정선아리랑시장

전통시장이 다시 가까워졌다. 옛날 이야기나 추억 속 배경이던 전통시장은 주민들의 단합이나 청년들의 아이디어, 지자체와의 연대 등 다양한 방법으로 활로를 모색했고, 전국 곳곳에 부활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편리함보다는 인간적인 정을 팔고사는 곳, 지역 사투리로 특산품을 판매하며 지역경제를 살리는 곳. 상생과 협력으로 다시 활기를 띈 전통시장은 지역 공동체교화를 계획하거나 비어가는 면촌의 교당들에 대안이 될 수 있다. 살아나는 전통시장들을 '대안의 삶'을 통해 격월 소개한다.

"얼른 와요! 여가 장터래요~"
대형마트의 침략과 편의점의 범람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난 전통시장의 대명사, 정선5일장. 무뚝뚝한 듯 구수한 사투리로 환영하는 정선시장은 '전통시장의 부활'이라고 하면 누구나 먼저 꼽는 곳이다. 5일장의 명맥을 지키면서도 날로 덩치도 유명세도 커지는 시장. 처음에는 강원도 5일장 중 하나였지만, 어느새 전국에서 제일 큰 민속장으로 우뚝 선 정선5일장. 그 비결은 뭘까.

▲ 정선5일장은 강원도 무형문화재 1호 '정선아리랑'공연으로 손님들을 맞는다.
탄광 폐업으로 위기, 기회는 열차로부터

1966년 문을 연 정선5일장은 매달 2,7,12,17,22,27일에 열린다. 이를 '이칠일장'이라고도 부르는데, 1,6일에 문을 열면 일육일장, 3,8일에 문을 열면 삼팔일장인 맥락이다. 정선5일장은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인근 산골에서 캐온 산나물과 생필품 정도를 사고파는, 인근 영월이나 태백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위기가 온 것은 탄광의 폐업 때문이었다. 광부들이 빠져나가고 가족들이 떠났으며, 자연히 시장은 활기를 잃어갔다. 정선은 강원도지만 영서지방이라 바다에서 멀고, 그렇다할 만한 관광지가 떠오르지 않아 발길도 적었다.

기회는 열차로부터 왔다. 한적하다 못해 이용객이 없었던 청량리-정선 구간을 '정선아리랑열차(A-Train)'로 개명해 정선 관광상품으로 만든 것이다. 지금은 남부 내륙이나 동해안 등 관광열차 상품이 흔하지만, 1999년 당시에는 신선한 도전이었다. 열차 외부도 칠하고, 내부도 조금씩 개조했다. 좌석 위 짐칸을 없애 통창으로 만들고, 좌석마다 충전기 콘센트도 설치했다. 총 4량인 마지막 열차 끝에는 영화에서나 보던 전망칸도 있어 수려한 산세 속에 추억을 더듬기도 좋아졌다.

하루 한번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정선아리랑열차는 정선역을 거쳐 아우라지역까지 간다. 중간중간 제천과 영월, 민둥산, 선평, 나전 등을 지나는데, 구절리역에서는 철로를 활용한 레일바이크로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보통 당일치기인 이 코스의 하이라이트가 바로 정선5일장으로, 이 정선아리랑열차 자체가 2, 7일 장날에 맞춰 시작한 시장 맞춤형 관광상품이다.

▲ 정선5일장 가게마다 앞에 놓인 나물 시식대.
▲ 정선의 토속음식 콧등치기는 장터의 인기 먹거리다.

호객행위, 흥정, 바가지 없는 전통시장

관광열차가 앞서 달리자, 정선군은 버스를 출발시켰다. 장날마다 아리랑시장을 포함한 3개의 코스로 도는 관광버스를 운행하는 것이다. 열차와 버스는 정선의 다른 볼거리인 아우라지, 화암동굴, 정선소금강, 정선아리랑창극을 묶어 어르신들의 볼거리여행이 되기도 하고, 레일바이크나 스카이워크, 짚와이어 같은 레저로 젊은이들의 핫한 체험코스가 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나 드라마 '태양의 후예', '낭만닥터 김사부', 여전히 인기있는 영화 '웰컴투동막골' 촬영지를 다니는 출사 장소로 손꼽힌다.

국내 최초이자 최고의 관광마케팅 연계 사례로 꼽히는 정선5일장. 이제는 매년 60만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찾다보니 2,7일장만으로는 모자라 4월~12월 매주 토요장도 열고, 아리랑열차도 화,수만 제외하되 이때가 공휴일이나 장날이면 운행한다. 오죽하면 정선에 서 있는 두 개가 바로 산과 오일장이라고 할 정도다.


군과 상인회가 인증한 '신토불이증'

시장 탐방에 나서본다. 들어서기도 전에 이미 노랫가락으로 5일장의 활기가 느껴진다. 장날이면 오전 오후 두 차례 펼쳐지는 소리공연이다. 지역축제에서 흔하게 마주하는 트롯트나 성인가요가 아니다. 소박하지만 강원도스러운 복장과 지게, 바구니, 다듬이까지 제대로 갖춰 펼치는 '정선아리랑' 공연, 강원도 무형문화재 1호이자 밝혀진 노랫말이 3000여가지에 이르는 '정선아리랑'이라는 콘텐츠를 매 장날마다 펼치며 알리는 것이다.

구수한 연주와 노래에 한껏 흥이 오른 정선5일장. 첫 가게부터 제대로 된 시식에 눈길이 간다. 특산품인 산나물 더미 앞에 놓인 곤드레, 고사리, 새취, 질경이 접시의 나물들은 마늘과 깨, 참기름까지 넉넉히 넣어 무쳤다. 몇 번이고 집어먹어도 눈치 주지 않는 시장 상인들, "젊은 사람들은 풀떼기 보고 몰라요, 먹어봐야 맛을 알드래요~"란다.

전통시장의 불편함이라고 꼽는 들쭉날쭉한 가격 또한 정선5일장에서는 안될 말이다. 모든 봉지에는 가격 스티커가 붙어있고, 버섯이며 야채들도 오천원, 만원짜리 바가지에 차곡차곡 담겨있다. 정선5일장 상인들은 호객행위도 하지 않고, 흥정도 하지 않는다. 다만 나물이나 차, 유과같은 먹거리들은 시식 접시를 듬뿍듬뿍 채워둔다.

정선5일장의 매력은 강원도 깊은 산골 청정한 산나물 등의 이미지와 정선 주민들의 정직한 흙내음에 있다. 이를 조그만 명찰로 만들어낸 것이 바로 '신토불이증'. 얼굴과 이름까지 버젓이 담겨 정선군과 상인회가 인증한 믿음과 신뢰의 상징이다. 목 좋은 코너에 위치한 대촌농산 전상걸 대표는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중국산이 국산으로 둔갑하는 등의 문제가 있어 믿고 살 수 있는 인증이 필요했다"고 배경을 밝혔다. 한번 받으면 끝이 아니라, 수시로 점검을 받아 연장하는 식이라 더욱 믿음이 간다.

▲ 부천에서 온 배기수·김보래 부부는 "시장만 보는 여행은 처음인데, 세심한 배려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주기적으로 배우고 협의하는 상인들

정선5일장은 관광열차와 연계된 상품으로 시작했으나, 정선군과 상인회의 적극적인 아이디어와 노력으로 더욱 살아난 곳이다. 상인회는 주기적으로 수업을 진행, 손님 대응법이나 서비스정신, 다양한 대처방안 등을 교육하고, 어려움이나 고쳐나갈 것은 서로 협의한다. 그렇게 8년, 변신은 계속된다. 상인회를 협동조합으로 구성해 모든 가게 주인이 시장의 진짜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 내 가게, 내 수익이 아닌 정선5일장의 소득, 정선군 전체의 활기를 위한 국내 최초의 도전이다. 또한 올해는 매년 열리는 전국5일장 박람회를 정선에 유치하겠다는 당찬 포부다.

장날에 만난 배기수·김보래 부부는 정선5일장을 위해 부천에서 여행을 왔다. "전통시장만 보러 여행온 건 처음인데, 대형주차장이나 높은 천장, 정돈된 길 등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다"며 시장에서 먹은 올챙이국수, 콧등치기, 메밀전병이 맛있었다고 꼽았다. 그는 "전통시장의 단점으로 꼽는 불친절함이나 바가지, 산지의 정확도 같은 문제가 없어, 마트만 다니던 우리도 즐겁게 장을 봤다"고도 덧붙였다.

도심에서 온 30대 젊은 부부도 마음 편히 지갑을 열고 현지의 상인들과 웃을 수 있는 정선5일장. 국내 최대 민속장이자 모든 전통시장 롤모델의 비결은 관광열차와 상인들의 적극적인 노력의 합력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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