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경 공부

▲ 장오성 교무/송도교당
글을 못 배운 짚신장수 출신의 스승에게 제자가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도를 알게 되셨나요?" 스승이 말했다.

"어느날 부턴가 나는 내가 누구인지 무척 궁금해졌어. 도를 잘 안다는 스승을 찾아가 내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 왔다 하니, '짚신 세 벌이다' 하셨어. '내가 짚신 세 벌이라고?' 뭐 좀 이상하다 싶었지만 일단 믿기로 했지. 내가 곧 짚신 세 벌이라고 조금도 의심없이 믿으며 생각을 아주 골똘하게 몰입해서 궁글리기를 계속했지. 하루종일 짚신세벌을 눈앞에 두고 왜 내가 짚신세벌일까,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이상한 체험을 한 거야. "아, 짚신과 내가 하나구나, 내가 짚신이고 짚신이 나로구나, 일체가 다 형상없는 이 마음이로구나!" 그러다보니 일체 만물이 다 나로 보여지고 내가 곧 우주만물 전체임을 깨달았어. 사실 견성같이 쉬운 게 없어. 그냥 지금 훤히 눈앞 허공이 나임을 보면 되거든. 사실, 나중에 알고보니 짚신세벌이 아니라 '즉심시불'이더라고."

제자는 다시 고기 사러 갔다가 깨달았다는 수도승을 찾아가 물었다. "고기 사려다 도를 얻으셨다는데 어느 지점에서 알게 되신 겁니까?" 수도승이 답했다. "나의 스승님은 마음은 하나다, 더럽고 깨끗함이 따로 없다 하셨지. 더러운 것을 볼 때마다 왜 더러움이 따로 없다는지 속으로 묻고 또 물었지. 반야심경에서 불구부정(不垢不淨)을 배울 때도 그냥 듣지 않았어. 모든 말씀과 글들을 말씀 자체, 글자 자체가 되어 듣고 보았지. 왜 둘이 아닐까 계속해서 궁글리기를 놓지 않았지. 어느 날 고기를 사러 가서는 별 생각없이 '좋은 걸로 주세요' 했더니 정육점 주인이 칼을 고기에 탁 꽂으면서 '어디가 좋고 어디가 안 좋습니까' 하는데 그 말에 갑자기 그 모든 답이 확 풀리는 거야. '그렇구나. 온 우주에 나뿐이로구나' 나밖에 없어서, 정하고 추한 것이 다 나여서, 상대가 없어서 더럽다 하는 자도 더럽다는 그 대상도 언어도 다 사라져 일체가 나임을 턱 알아버린 거지. 그날 아마 고기도 안 사고 돌아왔을 거야. 그 후론 그 정육점 앞에만 가도 절을 하게 됐지."

오랫동안 머리만 키우는 공부를 해온 제자에게 비로소 공부길이 보였다. 도를 얻는 데 좋은 주문이나 왕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간절함이었다. 참 나를, 마음을 알고자 하는 간절함이 핵심이었다. 무엇을 온전히 믿는 신도 지극하지 않은 채 늘 하던대로 일상성에 빠져 살았다. 게다가 믿음을 가지고 '지금 보고 있는 자'를 생생히 느끼며 안으로 안으로 찾아들어가 비추고 관하는 것은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다. 이것 외에 다른 길이 없는데, 그러니 보일 리가 없었다.

이제 제자는 더 이상 제자로만 있지 않다. 알고자 하는 간절함과 믿음을 가지고 안으로 찾고 찾음이 지극하게 계속되니, 짚신세벌에도, 어느 곳이 정하냐는 주인장의 말에도, 돌 구르는 소리에도, 나뭇잎을 보다가도 문득 참 나가 탁 보여진다는 것을 스스로 체험했다. 알고 보니 참 나를 발견하는 일, 즉 견성보다 쉬운 일이 세상에 없었다. 견성이야 순간적으로 일어나지만 그건 단지 참 공부, 참 수행의 출발선에 선 것일 뿐! 이제부터가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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