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학연구〉 의 창간호 속표지와 목차.
교학(敎學) 즉 원불교학은 원기37년(1952) 원광초급대학을 거처, 이듬해 원광대학을 개설하면서 기반을 갖추게 된다. 당시 이름이 교학과(敎學科)이며 불교교육과를 거쳐 원기67년(1972) 종합대학으로 개편되면서 원불교학과(圓佛敎學科)로 자리잡는다. 이 학과의 교학연구회가 편집해 낸 학술지가 〈교학연구〉로, 현재의 〈원불교학연구〉이다.

창간호를 보면, 프린트본의 4×6배판 54쪽이다. 내용은 '서언'(학회장 이운철)을 머리에 싣고, '종교의 정의문제'(류병덕), '본래심과 대경계'(한기두), '제법무아(諸法無我)에 대한 고찰'(송천은), '공(空)'(박영식)의 교수논문 4편을 실었다.

이듬해 2집에 이르러 '서문'(장응철) 외에, '우리의 좌표'(류병덕), '사은사상의 고찰'(송천은)의 교수논문, '기도와 대화의 정신'(심도정)의 학생논문, 그리고 대학생종교제(원광대, 1966.5.23-25)의 제3부 좌담회를 '청년종교인의 선결 문제'라는 주제로 실었다. 참석자는 가톨릭신학대(가톨릭) 3명, 동국대(불교) 3명, 성균관대(유교) 3명, 천도교청년회(천도교) 3명, 한국신학대(개신교) 3명, 원광대(원불교) 5명이었다. 세부주제를 비교종인의 종교화 문제, 종교인 상호 이해 문제로 잡고, 종교·종교인 간의 이해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50년이 흐른 오늘에 보니 교계·학계 그리고 사회적 저명인사들이 많으니, 일찍이 창의적인 대화에 나선 인물들의 발전상이라 할 것이다.

〈교학연구〉는 이후 학생논문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원광대학에 교수들의 〈논문집〉(논문집의 창간호는 〈원광문화〉, 1965) 등이 편집되면서 교수논문을 발표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연구회 운영을 교리반·교화반·교사반으로 나누어 활동하고, 타종교연구반을 꾸려 현장조사에 임하기도 하였다. 원기55년(1970)대의 '원불교용어 조사'가 〈원불교사전〉(종교문제연구소, 1974)으로 거듭나는 등의 역할을 한다.

원기50년에 창간된 이 연구지가 개교100년대까지 반백년의 역사를 헤아리게 되었으므로, 그 내용을 훑어보면 교단사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교단 인물의 증언이나 자료발굴 등 교학연구사에서 주목할 논고도 있고 습작도 있지만, 이렇게 활동하면서 익힌 역량이 교화·교육·사회복지 등 교단현장에 투여되었으니, 이는 분명 예비교역자의 역량을 키워준 광장이다.

<원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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