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재훈 회장/원불교문인협회
나무는 종교가 없는데도 늘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만 같다. 풀잎은 풀잎인 채로, 구름은 구름인 채로, 바람은 바람인 채로 이미 자신이 되어 있다. 그러나 문학인은 협회가 있어야 하고 발표할 지면이 있어야 더욱더 활발하게 자신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우리 회상에는 전국적인 조직으로 원불교문인협회가 있고 그 산하에 원불교서울문인회를 비롯하여 교구 중심으로 지방문인들의 모임이 별도로 조직되어 있다. 허나 지역문인회는 대개 설립된 역사가 짧은 데다가 조직의 적극적인 활성화가 부족하여 역사적 통찰을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다소 무리가 따른다.

필자는 원불교문인협회 회원들이 빚는 문학작품들을 한마디로 '경건하고 청량하고 뜨거운 혼의 결정체'라고 규정짓고 싶다.

원기75년(1990) 3월3일, 〈원불교신문사〉 회의실에서 원불교문인협회 창립 총회가 개최됐다. 이날 총회에서는 회칙을 통과시키고 임원을 선출했다. 회장에는 시인이자 원광대 국문과 채규판 교수가 추대됐고, 부대표로 수필가이자 시인 한대석을 선임했다. 그런데 창립 후 4년 동안 채규판 대표 체제는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원기79년(1994) 4월 16일, 총부 법은관 회의실에서 이른바 재창립총회를 가지게 됐다. 이 날 총창에 부대표를 맡았던 한대석이 원불교문인협회 제1대 회장으로 추대됐다. 그리고 원기80년(1995) 4월28일을 발행일로 삼아 〈원불교문학〉 창간호가 발간됐다.

이후 원기82년(1997) 3월29일, 제2대 회장으로 수필가이자 원광보건대학교의 이규식 교수가 추대됐으며, 원기85년(2000) 6월 10일, 제3대 회장에 시인 김학인 교무가 선출되었다. 이어 박원현·설윤환·박달식 교무, 김덕권·이경식·장재훈 교도가 회장을 맡았다.

역대 회장단들은 각기 특색 있는 문학활동을 벌이기도 했지만 제8대 이경식 회장은 개인적인 저술활동을 활발히 전개했을뿐더러 〈원불교문학100년기념문선〉(시가편, 산문편)을 펴내 우리 회상에 기념비적인 금자탑을 쌓았다. 박수갈채를 보낼 일이다.

〈원불교문학〉, 누군가에게는 그것은 희망이었고, 치유였고, 또 누군가에게는 균열의 어질머리였고, 갈증과 기다림의 감각이었으며 깨달음의 세계를 향한 그리움으로 나타났다. 그 어떤 경우든지 법신불 사은을 향한 기도와 청량하면서도 경건하고, 경건하면서도 뜨거운 정신을 예민하게 벼리는 작업인지도 모를 일이다.

곧 〈원불교문학〉 제17집이 발간될 예정이다. 이번 호의 특집 중 하나는 '나의 등단작'이다. 여기에는 김홍선 교무의 신춘문예 당선동화 〈파랑새와 허수아비〉, 장재훈 회장의 신춘문예 당선동화 〈우리들의 씨름왕〉, 안윤환(도현) 시인의 신춘문예 당선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 〈낙동강〉, 박윤기 시인의 신춘문예 당선시 〈도천수관음가〉, 정영길 시인의 신춘문예 당선시 〈겨울산행〉 등을 비롯하여 다양한 등단작이 게재될 것이다.

그 많은 작품 중에서 안윤환(도현) 시인의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을 소개하겠다.

눈 내리는 만경들 건너가네 / 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가네 / 가는 길 그리운 이 아무도 없네 / 녹두꽃 자지러지게 피면 돌아올거나 / 울며 울지 않으며 가는 / 우리 봉준이 / 풀잎들이 북향하여 일제히 성긴 머리를 푸네 / 그 누가 알기나 하리 / 처음에는 우리 모두 이름 없는 들꽃이었더니 / 들꽃 중에서도 저 하늘 보기 두려워 / 그늘 깊은 땅 속으로 젖은 발 내리고 싶어하던 / 잔뿌리였더니 …… (중략) …… 들꽃들아 / 그날이 오면 닭 울 때 / 흰 무명띠 머리에 두르고 동진강 어귀에 모여 / 척왜척화 척왜척화 물결소리에 / 귀를 기울이라.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