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도광 교무/공군사관학교, 성무교당
새벽기도를 하러 대각전에 올라갈때면 밖이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기도시간이 마쳐질 즈음이면 기도하러 갈 때 보다는 아주 조금 밝아진다. 아침에 기도를 마치고 내려오는데 오늘은 왠지 예전보다 밖이 더 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설마 눈이 또 왔을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불길한 마음으로 문을 열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눈이 또 내렸다.

아뿔싸! 며칠 전에도 눈이 내려서 고생스럽게 그 눈을 치우며 "힘들게 눈을 치운 지가 얼마나 됐다고 또 눈이 내렸나" 하는 마음이었는데 오늘도 내린 이 눈이 결코 반갑지 않았다. 더구나 오늘은 기초군사훈련을 받는 공군사관학교 예비생도들의 종교행사가 있는 날이라서 빨리 치워야 했다. 추운 겨울에는 기도 마치고 따뜻한 방바닥에 등을 눕히고 있을 때가 정말 꿀맛인데, 그 시간을 줄이고 눈을 치워야 한다는 생각에 아침부터 불만이었다. 그렇게 제설도구를 챙겨 눈을 치우는데 매서운 바람이 나뭇가지에 쌓여있는 눈을 떨어뜨리며 나를 괴롭힌다.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고 계속 눈을 치웠다. 나뭇가지의 눈과 함께 천천히 떨어지는 단풍나무 씨앗이 눈에 띈다. 지난주에 내게 던져줬던 '눈송이에서 우주를 보았는가'라는 화두 때문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단풍나무 씨앗이 바람을 타고 뱅뱅 회전하면서 천천히 땅에 떨어지는 모습에 '눈송이는 땅에 떨어져 부서지고 없어지는데, 저 씨앗은 땅에 떨어져 또 다른 생명을 이어가는구나'하는 또 하나의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그 순리의 법칙에 마음이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식물이 씨앗을 통해 이루려는 가장 큰 목표는 '자손의 번성'이다. 씨앗의 모양과 크기, 맛과 향기 등은 모두 이 목표에 최적화되기 위해 진화해 왔다고 한다. 바람을 타고 회전하거나 움직이면서 날아가는 씨앗, 민들레씨나 목화씨처럼 바람에 최대한 멀리까지 날아갈 수 있는 구조를 가진 씨앗, 봉숭아씨나 참깨처럼 껍질이 톡하고 터지는 탄력으로 날아가는 씨앗, 도꼬마리나 도깨비바늘처럼 동물의 털에 붙어 이동하는 씨앗 등 그들은 번식을 위해 여러 가지 형태로 진화되어 왔다.

또한 모든 씨앗은 발아를 위해 스스로 영양분을 저장하게 되는데 이 영양분이 인류 문명의 젖줄이 됐고, 씨앗이 작물화 되면서 농경과 정주생활이 함께 문화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정말 세상 모든 것이 다양하게 각자의 모습대로 습성대로 살아가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의 질서정연한 움직임과 그 위치의 배열, 계절의 순서와 그 변화, 거기에 적응하여 살고 있는 생물들의 놀라운 모습. 이 세상의 모든 일이 잘 계획된 질서와 인과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를 보면, 아궁이에서 불을 때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모든 존재는 인과율(因果律)의 원칙에 따라 있는 것이다.

나는 어리석게도 눈을 치워 놓으면 예비생도들이 편하게 교당에 온다는 생각은 못하고 추운 날씨에 눈 치우며 힘들어하는 내 모습에만 한탄하고 있었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