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된 가족교화는 5주째 일요법회 활용해야
이단치교는 원불교 특색, 교화의 생명줄 삼아야

▲ 이문철 교도/청주교당
원불교는 인연교화라고 말한다. 그것은 이시적(異時的) 동시적(同時的) 법연이 우연자연으로 맞아떨어져 순연하게 맺어지는 경우다. 하지만 원불교는 아직 신생종교이기 때문에 법통을 널리 알려야 할 책임이 있다. 개교의 동기에도 '파란고해의 일체 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라'고 밝히고 있다. 목표가 세워지면 그에 따른 실행이 분명하게 뒤따라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교단 현실이다.

대종사의 일화를 보면 초창기 교화는 대범한 면이 있었다. <대종경> 전망품 14장에 조송광이 사뢰기를 "제가 오랫동안 직접 지도하여 주실 큰 스승님을 기다렸더니, 오늘 대종사를 뵈오니 마음이 흡연하여 곧 제자가 되고 싶나이다"고 한다. 이에 대종사는 "예수교에서도 예수의 심통 제자만 되면 나의 하는 일을 알게 될 것이요, 내게서도 나의 심통제자만 되면 예수의 한 일을 알게 되리라. 이름만 다를 뿐이요 다 한 집안으로 알게 되나니라"고 했다. 조송광은 이에 감복하고 제자가 됐다. 이처럼 교조의 대도량주의, 대도덕주의의 광대무량한 심량이 또 어디 있겠는가.

나는 어찌 다행 어릴 때 입교하여 총부에서 많은 스승을 뵙고 정산종사님도 알현했다. 그러나 직장관계로 청주에 이사하고, 최우선적으로 교당을 찾은 곳이 청주교당이었다. 당시 교당은 전셋집이었다. 그 후 방첩대 자리를 어렵게 불하 매입해 토대를 닦고 교화를 성장시켜 서청주·북청주교당을 동시에 연원 불사해 파죽지세의 교화를 선보였다. 당시 청주시민들에게 원불교의 교화법이 잘 맞았던 것이다. 그런데 얼마 후, 침체기에 들었다. 그 연유는 비단 청주지역에 한한 것이 아니라 교단의 교화실패 요인이라 생각해 몇 가지로 꼽아보았다.

첫째는 가족교화의 단절이다. 예전에는 5주째가 되면 가족법회를 시행했다. 하지만 이러한 법회문화를 발전적으로 정착하지 못했다. 그 원인 가운데 하나가 교무진이 교체되면서 흐지부지해진 탓이다. 둘째는 등급별 훈련이 미흡하여 교리를 설명 내지 설득하지 못했다. 복락의 원천을 찾아서 영생 길을 개척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지 못했다. 그 결과 가족이나 이웃교화를 이루지 못했다. 내 가족을 인도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일원세계 교화가 되겠는가. 이것이 교화의 맹점이라 생각한다.

셋째는 확인교화의 부재다. 무슨 문제든지 시책이 내려지면 그것이 정착되도록 방도를 마련하고 구체적인 지도가 수반해야 한다. 그래야 지속적으로 유지발전 된다. 그리고 바톤 터치를 놓치지 말고 해야 한다. 교도가 전출할 때 그곳 교당에 개인기록카드도 함께 인계해야 하는데 그 다리역할을 잘하지 못했다. 넷째는 이단치교의 문제다. 이단치교는 원불교의 특색이요, 교화의 생명줄이다. 그런데 남의 일 보듯 등한시하고 있다. 교화단 마음공부 책자가 매달 단회 지침서로 배달된다. 교도들은 이 좋은 교재를 두고도 관심이 없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만성적 태만의 자세라고 본다. 예전에 청주교당이 시내에 동시다발적으로 2개 교당을 연원할 수 있었던 요인에는 교화단법회가 있었다. 매주 법회 때마다 간단한 단 모임을 한 뒤 헤어졌다. 단회는 교당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교무님의 지도하에 이뤄졌고 훈사까지 곁들임으로써 더욱 활기를 띠었다.
다섯째는 의식의 실효성이다. 종교는 신앙과 수행이 함께 일관하는 것으로 영원한 복락을 추구한다. 그 종교마다의 특유하고 고결한 의식이 여러 분야를 통해 갖춰져야 한다. 의식을 통해 사회적 감화를 받고 실답고 생동적인 종교로 다가갈 수 있다. 혹자는 교화의 중요요인을 설교를 제일로 꼽는다. 그것도 그럴 만하다. 하지만 종교는 설교 중심이 아니라 의식 중심이어야 한다. 다만 의식이 형식으로 떨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여섯째는 '만유가 한 체성이요, 만법이 한 근원이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 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라고 한 소태산 대종사의 대각일성을 깨닫고 실생활에서 활용해야 한다. 그것은 만유가 죄복을 내려주는 사실적 권능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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