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워도 기도하고 괴로워도 기도해요"
남편 직장, 내 집 마련, 아들 출가까지 기도로 이뤄
28년 한결같은 기도, 인연 챙기는 따뜻한 기도문

"저는 환경에 고통스러울 일이 많사오나 법신불 전에 매일 심고 올리는 재미로 사나이다"라고 대종사께 사뢰었던 정석현 선진님이 반갑다고 덥석 손을 잡아줄 것 같은 분을 만났다. 대명교당 봉공회장 명타원 김명진(63·明陀圓 金命眞) 교도는 집으로 들어서는 기자 손을 이끌어 법신불 전에 기도부터 올렸다.

"오늘 만나게 된 소중한 인연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인데도 상대방이 어떤 마음인지, 무슨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를 정확하게 짚어내 올리는 설명기도는 감동이었다.

허술한 곳 하나 없이 정갈하게 정돈된 집안 구석구석을 보노라니 군더더기가 다 빠지고 오롯이 기도만 남은 그의 일상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방 중앙에 차려진 불단에는 36년 된 목탁에 차곡차곡 쌓인 그의 기도음성이 손때로 앉아 있었다.

"즐거운 일에는 감사를, 괴로운 일에는 사죄의 설명기도를 올리라는 말씀 그대로예요. 오늘에 제가 있기까지 지켜준 은혜는 오로지 기도입니다." 독실한 불교 집안에서 자란 그는 27세에 남편과 결혼하면서 입교했다. 원불교 가정인 시댁에서 손윗 동서인 경남교구 박영진 봉공회장 연원으로 원불교를 처음 만나게 됐다. 원불교에 대한 특별한 감흥 없이 의무적으로 교당에 들락거리던 그를 철주의 중심으로 딱 붙들어 준 사건은 사랑하는 어머니의 열반이었다. 막내딸을 애지중지한 어머니는 형편이 어려운 딸을 생각해 늘 무엇을 더 못줘 안타까워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이었죠. 그동안 어머니와 절에도 많이 다녔는데 막상 위기가 오니 교당을 찾게 되더군요. 그때 찾은 곳이 전포교당이었습니다." 당시 이회광 교무가 그를 위해 기도문을 적어주면서, 어머니가 딸에 대한 착심을 놓고 잘 떠날 수 있도록 기도하라고 인도했다. 그날부터 단칸방 작은 다락방에서 기도를 올리기 시작한 것이 28년 전, 그가 35세 때다. 신혼여행 때 남편이 해인사에서 느닷없이 사준 목탁이 이럴 때 쓰일 줄 몰랐다는 그는 이후로 하루도 기도를 빠진 적이 없어 목탁에는 그의 정성이 그대로 녹아들어 손때로 남았다.

이후 대구로 이사와 대명교당에 다니면서 200일 기도를 시작했다.

"어머니를 보내드리기 위한 기도로 시작했지만 오래 기도하다보니 저절로 참회가 되더군요. 그동안 알고도 짓고 모르고도 지은 죄가 많다는 것을 깨닫고 교무님께 기도문을 부탁드렸습니다."

그렇게 정성껏 기도를 드렸더니 딱 200일 되던 날, 남편이 출근을 하게 됐다. 그동안 남편 직장이 불규칙해 오랫동안 속에 담아뒀던 가장 큰 서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기도 마지막 날, 출근하는 남편 구두를 닦으며 꿈만 같은 이 상황이 감사해, 기도문을 스스로 적어서 100일 동안 감사기도를 올렸다. 이때부터 기도문을 직접 작성하기 시작했고 '법신불 전에 매일 심고 올리는 재미로 살았다'는 그다.

기도가 깊어지니 천일기도, 2천일기도에 도전했다. 당시 대명교당 신축불사 기도에 힌트를 얻어 그는 '내 집 마련'이라는 서원을 세웠다. 기도할 때마다 돼지저금통에 오백원씩 모아 소중한 곳에 보내는 일도 이때부터 시작했다. 당시 남편 월급 백만원에서 반을 떼 오십만원을 적금으로 넣고 나머지 오십만원으로 생활하느라 아들 둘 키우면서 학원 한 번 보내지 못했다.

"하루는 총부 행사에 다녀와 늦게 도착했는데 동전이 없었어요. 어디 가서 동전 바꿀 데도 없고 해서 그냥 기도하고 있는데 초등학교 다니던 아들이 살며시 동전을 올려놓더라고요. 그 늦은 밤에 동네를 돌아다녀 바꿔온 것입니다." 그 아들이 자라 출가해 현재 세종교당 구일승 교무다.

천일기도 900일쯤 될 때, 결혼 16년 동안 13번의 이사 끝에, 더 이상 이삿짐을 싸지 않아도 되게 작은 한옥을 구입하게 됐다. 교구장을 비롯한 재가출가 교도 7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안봉불식을 하는데 설명기도문을 작성하면서 보은을 생각했다. 가진 것은 없고 마음만 가득하니 생각해낸 것이 몸이다. 그렇게 원불교 은혜심기운동본부 장기기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둔 것이 벌써 20년 전이다.

그를 설명할 때 뺄 수 없는 단어는 '공부'다. 그는 직장 다니면서 두 번의 대학을 졸업했다. 2008년에 사회복지사 자격을 위해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고, 이번에 원광디지털대학교 원불교학과를 졸업한다.

"교리를 배우고 싶어 입학했지만 즐거움이 더 컸습니다. 교리, 인물사, 교사 등 원불교를 알아가는 재미가 커 원각가를 부르며 혼자 춤을 추기도 여러 번이었어요." 원음합창단, 봉공회 등 공중사에도 소홀하지 않았던 그는 기도할 때 챙기는 이름이 기도문보다 더 길다.

"앉아서 목탁 칠 때가 극락입니다. 다음 생에는 꼭 전무출신 하는 게 서원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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