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산 이공전 종사의 작시로 멋드러진 시어와 운곡 자랑
문장마다 법형제의 정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절절하다
듣노라면 은은한 음이 내면으로 파고드는 기분이 든다


115장) 우리 일찍 영산회상(雲水의 情)
이공전 작사 / 김동진 작곡

우리 일찍 영산회상 운형수제 아니던가
오래 두고 그리던 이를 만난 듯함
무슨 일고
말없이 마주 앉은 정이 삼천년을 더듬네

▲ 〈성가〉 115장 운수의 정은 이공전 교무가 병약하여 병을 다스리던 시절에 위로와 힘을 주었던 훈타원 양도신 교무에게 바친 헌시다.
삼천년을 이어온 운형수제

〈성가〉 115장 운수의 정은 범산(凡山) 이공전 교무의 작시이다. 이 노래는 그 멋드러진 시어와 운곡으로, 모임의 마무리 곡으로 애창되는 노래이기도 하다. 범산 이공전 교무의 문집인 〈범범록〉의 병창산고초(病窓散稿鈔)에 '운수(雲水)'라는 제목의 시가 실려 있다.

"(내 몸이 한참 야윌 때 내 혼을 살찌워 주던 운수가 있어…) 어느 회상 운형(雲兄)이요 어느 문하 수제(水弟)던가 / 오래 두고 그리던 이를 만난 듯 함 무슨 일고 / 말 없이 마주 않은 정(情)이 삼천년을 더듬네."

이 내용은 원기49년(1964) 〈원광〉 45호에 발표된 글이다. 〈성가〉 115장 운수의 정은 〈원광〉에 발표되었던 병창산고초의 글을 조금 윤문한 것으로, "어느 회상 운형이요 어느 문하 수제던가"를 "우리 일찍 영산회상 운형수제 아니던가"로 고쳐서 뒷 문장의 "삼천년을 더듬네"와 연결시켜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한 것이다.

〈성가〉 115장 운수의 정은 이공전 교무가 병약하여 병을 다스리던 시절(養病)에 위로와 힘을 주었던 훈타원 양도신 교무에게 바친 헌시이며, 훈타원 종사의 열반을 맞아 생전에 훈타원 종사에게 헌시한 〈성가〉 115장 운수의 정에 관한 내용을 회고하며 "그 옛날 마주 앉았던 삼천년 운수의 정이 오늘날 유명의 길로 또 한 생을 더하오나 두고두고 운형수제로 월인천강 하오리"라 다시 헌시하는 아름다운 드라마를 펼치신다.

훈타원 양도신 교무는 "옛날에 사조(四祖) 도신(道信) 대사처럼 큰 도인되어 동정 간 삼학공부를 놓지 않아서 대중에게 항상 유익 주는 사람이 되어라"는 대종사의 당부를 한시도 잊지 않고 한결같이 동정 간 삼학수행에 정진한다.

그래서인지 동정 간에 일심 드리는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된다. 원기23년(1938) 여름에 훈타원 양도신 교무는 바느질과 약 달이기를 동시에 하게 되는 상황에 접하게 된다. 평소 대종사께서 이 일을 할 때 저 일에 끌리지 아니하며, 저 일을 할 때 이 일에 끌리지 아니하고, 언제든지 하는 그 일에 마음이 편안하고 온전해야 된다 하였는데, 바느질과 약 달이는 두 일을 책임질 때 이 일을 하면 저 일에 끌리고 저 일을 하면 이 일에 일심을 못하게 되는 상황에 부딪치게 된 것이다.

이 공부 고민을 온축하고 있다 초겨울이 되어 대종사님께 여쭈어 감정을 받게 된다. 이에 대종사님은 크게 칭찬을 하시며 대중이 다 알아야할 공부다 하시며 "책임범위 내에서 순서 있게 책임을 다하는 것이 온전한 일심"이라는 법문을 하신다. 이 에피소드는 〈대종경〉 수행품 17장에 약술되어 있다.

이처럼 훈타원 종사는 〈대종경〉 수행품 17장에 나오는 바느질과 약 달이기는 '복합일심' '동시삼학'의 주인공으로 일생을 삼학공부에 전념하였으며, 젊은 시절부터 이미 생 사리를 나툴 만큼 정진적공의 힘을 얻게 되는 공부인 이었다.

〈성가〉 115장 운수의 정은 이러한 법정(法情)이 도도히 흐르고 있다. 삼천년의 시간이 넘나들고 있으며 오만 년의 미래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영산회상의 삼천년은 오만 년의 일원회상으로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깨달음의 길을 같이 가는(把手共行) 운형수제(雲兄水弟)의 교감을 느낄 수 있다. 동정 간에 삼학으로 공부하는 자신감과 함께 이 법으로 교류하고 권장하고 위로하며 챙겨주는 법동지의 정이 밑바닥에 도도히 흐르고 있는 것이다.


빚져가며 약을 대던 운형수제

범산 이공전 교무는 또 다른 버전의 운수의 정을 나투고 있다. 문산 김정용 교무와의 아름다운 법형제의 정을 아름다운 시어로 정다운 마음으로 품어내고 있는 것이다. 원기70년(1985) 10월 문산화갑문집에 발표된 '우리의 운수지교'의 이 멋드러진 시의 골짜기를 거닐어 보자.

"우리의 운수지교(雲水之交) 몇 해던가 사십육년 / 경진(庚辰)년에 만났었지 열여섯 살 열네 살에 / 야야 너 하던 인사로 늙은 줄을 몰랐네 // 주산(主山) 스승 모신 선방 졸립기도 하던 좌선 / 철썩! 경책소리에 토끼눈이 되던 우리 / 그 어른 선풍아래서 공부틀을 잡았지 // 그 해 동선 끝에 곡마단에 한눈팔다 / 후려치신 회초리에 종아리가 터졌었지 / 얼싸안고 울던 시절이 복된 세월이었지 // 신불출 (무식한 부부) 만담편지 숭내다가 / 대종사님 모신 자리에 한 마당을 벌였었지 / 우리는 깔깔대소회 주연짝이 아닌가 // 죽쑤던 초임교당 자주 가도 반겨주고 / 금강원 각혈시절 빚져가며 약을 대던 / 당시가 관포지교지 불가망(不可忘)이지 무언가 //마한 백제 얼을 일궈 날로 학덕 깊어가고 /의료원 거느리어 활인지방(活人之方) 도를 펴니 / 그윽히 바라보는 눈 송무백열(松茂柏悅) 뿐이네 // 어허 어느 덧에 화갑맞이 문총인가 / 애써 쓴 정경(正經)연구는 따로 쓰자 접어두고 / 모자란 시조 몇 수를 책머리에 부치네."

문장마다에서 법형제의 정이 뚝뚝 떨어지는 법정(法情)을 느낄 수 있다. 어린시절의 범산과 문산이 곡마단 나팔소리에 하라는 심부름은 잊고 구경에 팔려 주산종사의 회초리에 피멍든 종아리를 부여잡고 울던 철부지 행동과 대종사께서 공회당에서 소창으로 대중과 함께 축음기 틀고 들었던 신불출이 '무식한 부부' 만담을 대종사님 앞에서 재현한 깔깔대소회, 대종사님께서 축음기 소리보다 훨씬 낫다며 칭찬해 주신 모습, 이 속에서 대중과 함께하신 대종사님의 흥과 주산종사의 엄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빚져가며 약을 대어 수발하는 동지애는 가슴이 시리도록 마음깊이 영접하고 싶은 기운이다. 그런 간고했던 초창의 어려움 속에서도 눈푸름을 잊지 않고 정진하며 보은했던 운수의 정은 법형제가 원광대학을 성장시킴과 마한백제 연구의 성과를 보면서 더욱 감회가 새로웠을 것이다.

범산 이공전 교무의 '우리의 운수지교'에서 수행자의 법정과 법열이 정감 넘치는 시어로 넘실거리고 있다.

원음산책

〈성가〉 115장 운수의 정의 반주(伴奏)를 듣노라면 은은한 음이 내면으로 파고드는 기분이 든다. 안으로 안으로 안개가 깔리듯, 심장 속으로 밀고 들어오듯, 마음속으로 진한 메아리가 울리듯, 아쉬움 넘어 더 끈끈히 이어짐으로, 비장함을 넘어 맹세가 되는, 웅장함을 넘어 크나큰 잔잔함으로 그래서 마음의 간격이 무너지고 넘어서버리는 심정이다.

악보에 "정을 담아서" 부르라 하듯 마음에서 마음으로,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지는 정이 진하게 퍼져나간다.
〈성가〉 115장 운수의 정은 김동진 작곡으로 원기52년(1967) 정화사에 의해 성가로 제정된다. 작곡가 김동진은 범패의 운곡을 멋들어지게 펼치고 있다. 물결이 넘실거리듯 계곡사이를 이리저리 흘러가듯 음들의 운곡이 춤을 추고 있으며, 마음에도 정감이 잔잔한 파도로 움직이며 깊숙이 깊숙이 진한 매듭을 묵어가는 파노라마를 펼쳐지고 있다.
▲ 방길튼 교무/나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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