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의 의미〉의 표지와 목차.
종교의 교리는 구세이념(救世理念)이다. 이에는 교조가 경험한 절대체험이 있고, 이를 체계화하는 철학이 있다. 따라서 이 교리가 사회적인 힘을 얻는 데는 문화·예술로 승화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문학·미술·음악 등 시의에 맞는 콘텐츠가 이루어진다면 대중이 이를 부담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원불교 초창기에 있어서 소태산 대종사의 가사(歌詞)나 선진들의 시·수필 등의 문학작품이 갖는 의미가 그러하다. 이들이 성가(聖歌)로, 연극대본으로 엮어지면서 문화·예술분야를 풍성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시인 교무 이종원(現山 李鍾圓, 1930-2015) 종사는 일찍이 독자적인 길을 개척해 원기50년(1965) 시집 〈생명의 의미〉를 출간했다. 원불교원광사 출판으로 국판 256쪽에 130편의 시를 수록했다.

구성은 머리에 박항식(壺雲 朴沆植, 1917-1989) 시인의 '서문'을 싣고, 전권을 4부로 나누어 제1부에 '정적(靜寂)' 등 34편, 제2부에 '회심곡(回心曲)' 등 35편, 제3부에 '비는 내린다' 등 33편, 제4부에 '진공(眞空) 시간' 등 28편을 싣고, 말미에 저자의 '후기'를 담았다.

박 시인은 "오탁악세(五濁惡世)라기보다 불편해서 살아갈 맛이 나는 세상! 재미난 세상에 처해서 돈도 모르고 시만 꾸준히 써나가고 있는 시인 중 시인 이종원! 행세도 않고 시만 꾸준히 써나오고 있는 시인 중 시인 이종원! 1955년 3월17일 '동아일보'의 동아시단에 '안개 속에서' 발표 이후 침묵"이라 적고 있다.

시 한편을 들어보자. '오늘/ 너와 나는/ 이렇듯 공존만이 아니 것이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거미줄처럼 얽힌 그 숫한 회색의 대화들을 깨끗이/ 쓸어 버리고-. 그리고 우리들은/ 여기 생사를 건/ 거룩한/ 거룩한 투기장에 서자.'('면벽' 전문) '당신의 자비! 날빛 같이 거룩한/ 활인검(活人劍)을 휘둘러 나의 목숨을/ 베어주십시오. 그의 목숨을/ 베어주십시오. 당신의 눈물겨운 보살의 품안으로/ 지금 바늘처럼 떨고 있는 허전한/ 그의 육신을 다스려 주십시시오.'('기도' 부분) 과연 저자의 치열한 수행 모습이 드러난다.

'후기'에서 그는 '달을 가리킨 손가락이 참 달이 아니라는 범속적(凡俗的)인 교의를 나는 거짓된 시를 통하여 그이 참인 것을 비로소 자증(自證)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원기37년(1952)부터 써온 작품 가운데서 이들을 골랐다고 하니, 절제된 표현으로 시어를 다듬어 나가는 정성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원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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