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세진 교도/한양대학교 경제금융대학 교수
세계주의는 개벽되고 열린 새 시대 정신

반세계주의 확산 경계하고 불평등 줄여나가야



세계주의는 원불교의 주의이다. 정산종사 유촉하시기를 "우리의 주의는 세계주의니, 이 주의를 세상에 반드시 실현하자"고 했고, 대산종사 게송하시기를 "진리는 하나 세계도 하나 인류는 한 가족 세상은 한 일터 개척하자 하나의 세계"라고 했다. 나 자신, 내 가족, 내가 속한 사회나 단체, 내 나라만을 위하는 개인주의, 가족주의, 단체주의, 국가주의는 미개하고 편협한 시대의 정신이요, 이 세상 모든 생령을 한 집안 한 권속 삼는 세계주의가 개벽되고 국한이 확장된 새 시대의 정신이다.

20세기에 세계주의는 시대정신으로 자리를 잡는 것으로 보였다. 사회와 국가 간에 경제적, 문화적 교류는 활발해졌고 그 전까지 노골적으로 행해졌던 인종과 종교 차별은 점점 줄어들었다.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던 우리나라의 발전도 세계주의의 확산에 힘입은 바 컸다. 수출과 무역이 아니었다면 우리나라가 이렇게 성장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 세계주의가 위협받고 있다. 미국의 새 대통령 트럼프는 취임 직후 멕시코에서 국경을 넘어 들어오는 불법이민자를 막겠다고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 3,200km에 걸쳐 20조 원 이상의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되는 벽을 쌓도록 하고, 테러리스트를 막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시리아, 이란과 같은 7개 회교국가 출신 국민들의 입국을 금지하는 등의 이민자와 회교도에 대한 차별 정책을 시행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2015년말에 타결된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rans-Pacific Strategic Economic Partnership, TPP)에서 탈퇴하고 '미국 우선(America First)'이라는 국가주의 이념을 공공연히 천명하고 있다. 미국 밖에서도 세계주의는 공격을 받고 있다. 영국에서는 유럽연합에 머물러 있는 한 이민자의 유입을 제한할 수 없다는 이유로 국민투표에서 52%가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는 이른바 '브렉싯(Brexit)'에 찬성하였고 각국에서는 국제무역, 이민, 회교도에 반대하는 정치세력들이 힘을 얻고 있다.

반세계주의의 결과는 심각할 것이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무역장벽으로 인한 수출 감소, 미국의 경제적 압박,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에 따른 정치적 어려움 때문에 상당한 곤란을 겪을 것이 분명하다. 나아가 무역이 줄어들면 우리나라처럼 가난했던 나라가 수출을 통해 가난을 벗어나는 성공담은 다시 나오기 어렵고, 이민이 심하게 제한되면 빈곤과 핍박을 벗어나 새로운 나라로 이주하여 인류에 기여한 수많은 과학자, 예술가, 기업가의 이야기는 다시 듣기 어려울 것이다. 인종, 종교의 차별이 계속되면 정치적 불안과 테러의 위협은 커질 것이다.

많은 이들이 우려함에도 불구하고 반세계주의가 확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근본적으로는 미개하고 편벽된 선천시대의 정신이 아직 깨지 않아서이지만 가까이는 지난 30여 년 동안 각국, 특히 선진국에서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선진국이 대부분인 경제협력개발기구의 보고서를 보면 1985년 이후 상위 10%의 가구소득은 50% 정도 오른 반면에 하위 10%의 가구 소득은 10% 정도밖에 오르지 않았다. 경제 성장의 과실 수확에서 소외된 이들은 수입품과 이민자가 자신의 일자리를 뺏어가므로 그들을 막는 것이 자신에게 이익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가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졌고, 작년 영국의 브렉싯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처럼 이제는 실제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나라도 1990년대 중반 이후로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이 커졌는데 이런 경향이 계속된다면 외국과 같은 반세계주의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원불교인에게 세계주의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이다. 우리는 어떤 형태의 인종 차별, 종교 차별에도 단호히 반대하고 민족, 국가 간 개방과 소통과 교류를 넓히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반세계주의의 확산을 경계하고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을 줄이는 데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개벽의 새 시대, 하나의 세계를 앞장 서 열어가는 우리의 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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