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익선 교무/원광대학교
근현대 한반도에서는 민중을 구제하고자 하는 종교들과 이를 뒷받침한 사상들이 탄생했다. 대표적으로 동학·천도교, 증산교, 대종교, 원불교 등이며, 이들 종교의 기반에는 후천개벽사상이 있다. 후천개벽은 우주자연의 순환법칙과 운도에 의해 선천의 끝이 오고 후천이 시작되면 후천선경, 용화회상, 무극대운의 극락과 낙원이 도래할 것이라는 민중의 희망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출현하기 전 고대의 팔레스타인 지역의 민중이 지녔던 메시아 출현의 희망과 맥이 통한다. 전 세계 어느 곳이든 인간은 고난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개벽사상의 근저에는 독자적인 역학사상으로 선후천의 새로운 우주교역의 원리를 제시한 김항의 정역사상이 있다. 중국 중심의 역사관에서 탈피해 한민족이 새로운 시대를 열고 지구촌의 주역이 된다는 사관이다. 최제우는 '다시 개벽'을 위해 심학(心學, 마음공부)에 공을 쏟아야 한다고 말한다. 즉, 성경신의 도와 도덕을 확립해야만 무위이화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한다. 최시형의 인내천과 사인여천사상, 손병희에 의한 유·무형의 육신과 정신개벽을 기반으로 한 문명개벽사상, 그리고 이돈화의 정신·사회·민족의 3대 개벽운동을 통한 신문물운동은 개벽사상을 한국사회에 전면 등장시켰다. 또한 한국의 예수라고 부르는 강일순에 의해 해원상생의 개벽을 위한 삼계의 천지공사가 등장했다. 하늘의 운도를 바꾸는 운도공사, 각지의 문명권을 통합하고 그 진액을 모으는 문명개조공사, 신명에 대해 인간의 존엄을 높이는 사람개조공사이다. 거교단적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한 대종교의 천신의 강림, 신인융합, 인간 성화(聖化)의 중광사상 또한 개천 및 개벽사상이다.

이처럼 후천개벽은 원시반본, 신인합일, 정신과 물질문명의 조화, 공명정대한 도덕세상의 도래를 밝히고 있다. 실제 현 사회는 수천 년 동안 지속되어 온 왕조가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확립되어 가는 중이다. 그리고 오랜 농경사회로부터 벗어나 1차에서 3차 산업혁명을 거쳐 이제는 정보통신기술 위에 생명공학, 인공지능, 로봇기술이 합쳐져 4차 산업혁명이 이뤄지고 있는 중이다. 머지않아 인간의 육감기능과 별반 차이 없는 인공지능로봇이 모든 노동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킬 날이 올 것이다.

후천개벽의 핵심은 외부의 문명과 내부의 마음이 조화를 이룰 때 완결된다는 것이다. 소태산은 이 점을 통찰하고,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고 하며, 삼학수행의 마음공부를 통해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대의가 드러나는 미륵용화회상이 이루어질 때 완성된다고 보았다. 물질의 노예가 되느냐 주인이 되느냐는 인간 자신에게 달려 있다. 또한 그것은 인간의 분별심에 의해 현존하는 모든 차별을 철폐하고, 전 존재가 불성을 드러내는 부처로서 서로 존중하는 삶을 말한다. 사회개벽의 저변에서는 일상의 개벽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동학에서 행하는 한울님 조화의 도리를 자각하는 수심정기와 천지합일을 위한 시천주, 대종교의 홍인인간 및 이화세계 구현을 위한 삼진귀일의 성통공완, 세계개벽 및 지상선경을 위한 증산교의 태을주 주송은 이러한 일상의 개벽을 위한 수행이다. 원불교의 솔성요론, 무시선, 30계문, 그리고 일상수행의 요법이야말로 이러한 일상개벽을 위한 구체적 실천덕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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