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일터인 택시, 수행처이자 공부방
신앙의 도반인 아내와 쉼 없는 기도생활

온화하고 따듯한 미소를 담고 있는 얼굴. 세월이 주는 시간 속에, 얼굴에 깃든 미소가 편안하게 닿아오는 이들의 아름다움이 있다. 이내 보는 이의 마음까지 편안하게 만드는 사람, 도산 신도길(68·道山 辛道吉) 교도. 나란히 교당에 들어서는 그의 아내 전명일 교도 또한 그와 미소가 닮아있다.

원기58년, 그의 나이 25살 때 원불교를 알게 됐다. 중학교 때까지 줄곧 우등상을 놓치지 않았던 명석한 그였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상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했던 시절. 혈기 넘치는 스무 살 청년의 방황이 시작된 것도 그 해다.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방황했던 시절이었어요. 하루는 '원불교에 탁구 치러 가자'는 친구들과 함께 '원불교'에 가서 탁구를 치면서 쉬고 있는데, '쪽진 머리에 하얀 저고리 검은 치마를 입은 어떤 분'이 음료수를 건네주셨어요." 그 시절, 그의 기억 속 '원불교'는 제원교당이었고, '쪽진 머리 하얀 저고리 검은 치마를 입은 어떤 분'은 당시 제원교당 부교무였던 박영창 원로교무다.

박 교무를 만난 다음 날, 그는 집에서 8km 남짓 떨어진 제원교당까지 다시 달려갔다. "교무님 말씀이 꼭 저한테 하는 말씀 같았어요. '내가 방황하고 타락할 때가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요. 원불교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싶었어요." 그는 그렇게 제원교당 청년회 활동을 시작했고, 교전 공부 6개월 만에 원불교 독경을 모두 암송했다. 당시 청년회원들이 적게는 20명, 많게는 30명까지 활동했던 중심에 그가 있었다. 이후 금산교당에도 청년회가 창립되면서, 그는 새벽에 일어나 회원들 집을 일일이 방문해 축구를 함께 하면서 청년교화를 활성화시켰다.

청년회 활동 2년째 되던 해, 그는 맞선을 봤다. 맞선 자리에서 그가 했던 질문은 '원불교를 같이 믿을 수 있겠습니까' 였다고. 원불교 신앙을 전제로, 지금의 아내 전명일 교도와 만난 지 27일 만에 결혼했다. 이후, 전 교도의 알뜰한 내조와 신앙의 뒷받침은 든든했다. 그의 신심이 두 배로 쌓여가는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여느 삶이 그렇듯, 인생의 굴곡과 어려움도 감싸 안고 살아가야 하는 법. 어려운 가정형편에 부모님을 모시는 장남으로, 4형제의 맏이 역할을 하며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 그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한 순간도 잊어본 적이 없는 그, 그런 아내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고마움과 그보다 더한 미안함이 곁들어있다.

"유교사상이 철저했던 가정에 자손을 못 두고 돌아가신 큰아버지의 양자로 입양돼, 저희 부모님과 양모님까지 모셔야 했어요. 또 시동생들을 교육시키고, 결혼해 분가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했지요. 넉넉지 못한 살림을 쪼개 막내 시동생은 대학까지 졸업시켰습니다. 이분이 없었으면 가능했겠어요?" 그는 아내를 '이분'이라 호칭했다. 부부는 서로 주고받는 대화에 존대를 잊지 않았다. 생활의 동반자이자, 신앙의 도반으로 서로가 서로를 살피고 존중해주는 마음 그대로가 서로의 대화에 담겨있는 것이다.

올해로 48년째 모범 개인택시를 운전하고 있는 그의 효행과 친절은 지역에서 이미 소문이 자자하다. 충남도가 도내 모범 대중교통운전자를 대상으로 선발하는 '대중교통 친절 서비스왕'에 뽑힐 만큼 그의 친절봉사와 숨은 선행 실천은 돋보였다. 이에 앞서 원기81년에는 교단에서 시행하는 제6회 특별미행상 시상식에 '인도정의실천상'을 수상한 바 있다.

새벽 좌선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그의 집에서 제일 중요한 공간은 불단을 조성해 놓은 방이다. 좌선과 절 수행, 기도로 하루를 여는 공간이니, 작은 법당이나 마찬가지다. 그에게는 자신의 일터이자 수행처이며, 공부방인 공간이 또 있다. 바로 자신이 운전하는 영업용 택시. 아침에 차 시동을 걸고 엔진이 워밍업 될 때까지 행선을 하면서 일원상서원문을 10번 완독할 수 있는 시간, 이 시간도 그에게는 수행의 시간이 된다. 운전을 하다 잠시 대기하는 시간 또한 그는 허투루 사용하지 않는다. 노트북을 차에 싣고 다니면서 인터넷 법문사경을 하는 그는 지난해까지 법문사경 10번을 마무리했다. '원기100년까지 법문사경 10번 완결하기'가 그의 다짐이었고, 이를 실천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신앙인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기도생활이라고 생각해요. 일년 내내 새벽 기도를 다니는 이웃 종교인들처럼 기도생활을 쉬지 않고 해야 합니다. 교당에 나가서 기도하기 어려우면 집에서라도 꼭 기도생활을 해야지요. 지극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전하는 이의 간절함 만큼 상대방에 와 닿는 것일까. '지극히 기도하고 있다'는 그의 말이 묵직하게 와닿는다. "저희 교당이 남자 교도수가 적어요. 여러 방면으로 남자교도 늘리기에 유념하고 있지만, 교도회장 9년 동안 교도수를 늘리지 못한 점이 많이 아쉬워요." 남자교도를 꼭 늘려보겠다고 다짐하는 그다.

그가 마음에 담고 있는 법문은 <정산종사법어> 법훈편 46장. '잘 참기가 어렵나니, 참고 또 참으면 영단(靈丹)이 모이고, 꾸준히 하기가 어렵나니, 하고 또 하면 심력(心力)이 쌓이어 매사에 자재함을 얻나니라.'원불교인이라는 자부심으로, '원불교' 알리는 일을 하고 또 하겠다는 그의 다짐으로 새겨진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