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인철 교무/원불교사진협회
▲ 원기56년 원불교반백년기념대회 정문 사진은 당시 원불교신보 이성은 교무가 찍었다.
사진은 본질적으로 아름다움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사진은 변화무쌍한 미의 순간을 잡아서 보존하고 재현해 내는 기술이다. 그러나 사진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예술적이었다. 초기 사진의 표현성은 심각하게 낮았으나, 형상을 그대로 옮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면서부터 사진은 특별해지기 시작했다.

원기50년대에 교단에 들어와서 마주한 사진 중에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다. 원기28년 6월 소태산 대종사가 열반한 모습을 촬영한 흑백사진이다. 묵산 박창기 대봉도가 찍은 소태산 대종사의 열반모습이었다.

묵산 대봉도는 소태산 대종사와 은부자(恩父子)를 맺고 10여 년간 시봉했다. 묵산 대봉도는 사진 촬영하기를 좋아해서 소태산 대종사의 사진을 많이 찍었고, 열반 당시에도 촬영했다. 모든 사람들이 하늘이 무너지는 애통함에 땅을 치며 울부짖는 가운데 아마도 '미쳤느냐'는 핀잔을 들어가며 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 열반 후에는 영산, 변산, 성주 등 성적지를 촬영하여 뒷날 교단사의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개교반백년기념대회가 원기56년 10월에 거행됐다. 원불교신보 기자로 활동하던 이성은 교무가 촬영한 사진 한 장. 새롭게 확장된 익산총부의 정문에 개교반백년기념대회 주제표어 아치와 대회에 참여한 교도들의 모습을 담아냈다.

이 한 장의 사진은 소태산 대종사가 새 회상을 개교하고 교단의 장래를 '사오십 년 결실이요, 사오백년 결복'이라고 한 말에 근거하여 반세기 동안의 교단 발전 역사를 정리하고 결복의 역사를 향해 나아가자는 다짐의 대회를 웅변하고 있다.

원기76년 5월, 원광대학교 대운동장에서 대종사탄생백주년기념대회가 열리던 날, 애드벌룬에 전 세계의 어린이회원들이 그린 조각그림을 합하여 소태산 대종사의 초상화 걸개그림을 띄웠는데, 그날 하늘에는 햇무리가 나타났다. 상서로운 기운이라고 재가출가 교도들의 마음은 들떴다. 마치 소태산 대종사가 나타난 것 같은 감동이었다. 햇무리가 나타나는 과학적인 이유야 있겠지만, 꼭 그날 그 시간에 나타난 것은 전 교도의 정성이 하늘에 사무쳐 나타난 것으로 생각했고, 그 광경을 사진으로 남겨 놓음으로써 그 순간이 지속되는 것이다.

'순간포착'된 사진은 현실성, 고립성, 우연성이란 특성이 나타난 영상들이다. 그리고 그 순간은 영원이 됐다. 이런 사진들이 순간을 상징한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한 장의 사진이 가진 힘은 사라지지 않는다.

세상은 많이 변했다. 이제 스마트폰 카메라 기능이 놀랍게 발전했고, 딱히 예술성이 없어도 수많은 영상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런데, 사진은 '만드는 예술'이 아니라 현실의 한 부분을 발견하여 찍는 것이다. 아니, 현실의 한 부분이 내 마음의 창에 들어 온 모습을 그려낸 것이다. 현실에서 떠나 심상(心象)이 되어야 감동이 있다. 사진은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만드는 솜씨보다는 현실을 올바로 파악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사진은 '발견의 예술'이라고도 한다.

사진으로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은 현실을 통해 내 심상을 표현하는 일, 곧 생각하는 바를 주장하고 느낀 바를 표현하는 것이다. 기술과 플랫폼의 발전으로 사진이 더 쉽게 찍히고, 더 가볍게 향유되면서 사진이 차지하는 위치는 가히 절대적이다.

사진이 전문가 예술의 범주를 뛰어넘어 일상이 되었다. 사진의 일반적인 역할에 더하여 종교에서는 사진을 통하여 진리의 한 끝을 표현해내고, 사진으로 신앙과 수행의 길잡이 역할을 감당하게 할 수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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